데뷔 앨범부터 반향을 일으킨 집시기타의 개척자
2009년 11월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1집 <집시의 시간>을 내놨을 때 세상은 크게 반응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에 이름을 올리더니 이듬해에는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상’을 차지했다. 연주 음반 특성상 실제 구매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데도 당시 앨범 판매 사이트에서 꾸준히 10위권을 유지하며 1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주문이 들어오는 스테디셀러다. “다른 뮤지션의 공연에 참여하며 직업 연주자로 데뷔는 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저만의 음악을 하고픈 마음에 1집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국내에선 낯설게 느껴지는 ‘집시 스타일’을 꼭 해보고 싶었기에 프랑스 집시재즈와 스페인·헝가리의 집시음악을 한 장에 전부 담아냈던 앨범이에요. 요즘엔 제 음악이 스패니시 스타일과 어울리는 것 같아 그쪽 음악을 좀 더 차용하려 합니다.” 떠들썩했던 세상의 반응을 끄집어냈는데도 박주원은 쑥스러운지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에둘러 대답한다. 담백한 그의 답변이 어딘지 모르게 데뷔 앨범 분위기와 닮은 듯하다. 늦가을을 장식했던 <집시의 시간>은 속도감과 화려함을 기타 선율에 얹어 세월의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시간 참 빠르다며 동요하기보다는 짧지만 소중한 이 가을을 만끽하자고 손을 잡아 이끌었던 그의 1집을 떠올리며 뮤지션은 결국 음악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무던한 그에게 보다 직설적인 물음을 던져봤다. 어느 날 하늘의 별 하나가 뚝 떨어진 듯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제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그는 정말 ‘기타 신동’은 아니었을까? 날 때부터 기타를 잘 쳤던 ‘내추럴 본 기타리스트’였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아니”라고 즉답하며 ‘다섯 살 꼬마 박주원’을 데려왔다.
“유치원 가기 전에 친구들과 한번 어울려보라는 어머니의 뜻으로 제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학원에 다녔어요. 아들을 피아니스트로 키워보겠다는 꿈이 있어 보내신 건 절대 아니었죠. 저 역시 그냥 친구들 만나고 놀러 다니는 셈으로 다녔는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많아지니 점점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다른 악기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기타학원까지 등록해주셨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때였는데 주변에 기타 치는 친구가 없어서 누군가와 비교도 못했고 제 실력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반을 제대로 칠 수나 있었을까 싶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한 박주원은 초등학교 내내 피아노와 기타를 병행하며 음감을 터득했다. 그가 ‘기타 신동’은 아니었을지라도 ‘될 성 부른 나무’였던 건 틀림없어 보인다. 기타를 갓 시작했을 무렵 클래식기타 콩쿠르에 나갔던 그는 입상을 못했는데도 ‘내가너무 잘 쳐서 떨어졌다’라고만 생각했다고. 이처럼 타고난 실력 그 이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자신감인가 보다.
성실한 일상이 모여 어느덧 거장이 되다
박주원은 ‘집시기타’를 연주하여 국내 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클래식, 어쿠스틱, 일렉트릭 등 여러 장르가 있는 기타에서 집시기타란 무엇일까?
“인도, 이집트 등지에서 발상한 집시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각국의 전통음악을 뿌리내리기 시작했죠. 이게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으로 넘어가서 클래식을 기본으로 한 집시음악이 됐고 프랑스에서는 집시재즈, 스페인 남부지방에서는 플라멩코로 자리 잡은 거예요.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할 때 시간이 갈수록 취향은 바뀔 수 있어요. 재즈를 즐겨 듣는다면 처음엔 경쾌한 스윙을 좋아하다가 가볍고 따뜻한 느낌의 라틴 정서가 가미된 보사노바를 좋아할 수도 있고, 격렬한 사운드의 하드밥으로 바뀔 수도 있죠. 저 역시 처음엔 ‘집시음악’이라는 장르가 좋아서 하다 보니 집시재즈 등 그 안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저 혼자 이해하기엔 부족함을 느껴서 좀 더 파고들게 된 것이 스페인 집시음악 ‘플라멩코’ 장르입니다. 리듬 악기를 많이 쓰고 ‘깐떼’라는 노래가 들어가면서 기타 반주가 더해지는 형식이죠. 이 중에서 특징적인 요소들을 가져와서 보다 풍성한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은 거예요.”
집시음악의 불모지를 일군 개척자답게 깊이 있게 설명을 이어가는 그 모습에서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20대의 젊은 뮤지션으로서도 노련하고 영민한 속주가 돋보였던 그는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박주원의 지난 시간은 참 한결같았다. 임재범, 이소라, 조규찬, 성시경 등 내로라하는 유명 가수들의 세션으로 이름을 떨쳤고 데뷔 앨범부터 4집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10여 년의 세월. 외형적인 모습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그의 이름 앞에 자주 붙던 ‘신성’ 이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거장’으로 바뀌어 있다.
“초등학교 때 시작한 기타를 무기 삼아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바로 입학했고, 군 전역 전부터 임재범밴드에 합류하는 등 어찌 보면 탄탄대로만 걸은 것처럼 보이겠네요. 하지만 제 안에서는 조울증처럼 수없이 많은 고민과 슬럼프가 반복되곤 하죠. 좀 더 완벽한 연주와 알찬 공연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너무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찾은 탈출구가 운동입니다. 작업실이 있는 남산 주변을 한 바퀴씩 돌고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를 해요. 특별히 자기 관리랄 건 없지만 이렇게 운동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음악에 빠져 사는 뮤지션이라면 술과 담배를 즐기고 불규칙적으로 살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예상을 빗나가는 대답이다. 술은 기분 전환 정도로만 가볍게 들고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며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박주원. 그래서일까? 그는 2시간이 넘게 공연이 이어지고 앙코르가 쏟아져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절대로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단다. 박주원의 열정적인 집시기타 연주가 앞으로도 순조롭게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그의 성실한 일상이 새삼 고맙다. 기타를 같이 쳤던 친형과 함께 ‘박주원기타스쿨학원’을 운영 중인 그는 자신을 따르며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도 진심 어린 한마디를 전했다.
“제가 한창 기타를 배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 그거 해서 대체 뭐 할래?’였는데 막상 그때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기타가 좋고 빠져 있었죠. 지금 기타를 붙잡고 있는 분들도 아마 그럴 거예요. 오직 기타만 보이고 연주 생각만 하실 텐데 지나고 보니 무턱대고 이상만 좇는 것도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유튜브 같은 미디어가 발달해서 마음만 먹으면 초등학생도 기타를 독학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너무 기타에만 ‘올인’하지 말고 적당히 즐기면서 당장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느 순간 원하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겁니다.”
올 가을 정규 5집을 선보이고 내년에는 10주년 기념 공연과 앨범 발매도 계획하고 있다는 기타리스트 박주원. 그는 유독 손이 참 곱고 예쁘다. 그의 손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이 당분간 더욱 자주 들려올 것만 같아서 기쁘다.
Profile
2015년
스페셜 앨범 ‘Gypsy Cinema’ 발표
2013년
3집 앨범 ‘캡틴’ 발표, 싱가폴 뮤직매터스 쇼케이스 참가
2012년
스페셜 앨범 ‘Gypsy Christmas’ 발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부문 수상
2011년
네이버뮤직 ‘올해의 음반’ 선정
2집 앨범 ‘슬픔의 피에스타’ 발표
재즈전문지 ‘재즈 피플’ 리더스폴 2년 연속 베스트 기타리스트 선정
2010년
재즈전문지 ‘재즈 피플’ 리더스폴 베스트 기타리스트 선정
음악무크지 ‘사운드’ 선정 ‘루키 오브 더 이어’ 종합 1위, 연주부문 1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부문 수상
2009년
네이버뮤직 ‘올해의 음반’ 선정
데뷔 앨범 ‘집시의 시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