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즐거움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집필실에서 만난 조승연 작가는 함께하는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로 살며 책으로만 대중들과 마주하다 방송을 통해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세상과 소통하는 요즘의 일상이 무척 새롭다고.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방송활동에 재미를 느끼며 사석에서의 제 모습 그대로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유명인들과 함께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매 순간을 즐기면서 임하는 요즘엔 문득 예전 유학 시절 생각이 많이 나요. 처음 접하는 새로운 문화와 지식들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있던 그때도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즐거웠거든요. 그 시절 피부로 느낀 문화가 주는 즐거움은 저술, 강연, 번역 등 소위 ‘문화로 먹고 사는’ 지금의 저에겐 큰 원동력이자 경험의 원천이죠.”
인문학이 가져온 훌륭한 성장통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인류의 사상, 역사 등으로 대변되는 ‘인문학’이란 개념이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빠르고 간편한 것이 주를 이루는 요즘과는 쉬이 어울리지 않는 이 단어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조 작가는 그러한 대중들의 관심을 우리세대가 맞은 훌륭한 성장통이라 칭하고 싶단다.
“고민 많은 사회에서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요즘 대중들에게 인문학이 품고 있는 ‘스토리’는 제법 신선한 여유로 다가올 것 같아요.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끼리끼리 모여 있는 집단 속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서로 늘 비슷한 경험만을 공유하게 되죠. 하지만 책 속에는 다양한 시공간과 그 속에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존재해요. 그것이 주는 스토리와 독자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들은 일상에서 오는 피로감과 무료함을 달래주고 읽는 이에게 새로운 가능성 또한 제시해주죠. 이런 점에서 인문학 열풍은 과정과 그 속의 노력보다는 결과가 우선시 되어 온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작은 존중이 오늘을 만들다
해외 각지에서의 경험으로 4개 국어 이상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언어천재라 불리는 조승연 작가. 워낙 사람들과 말하기를 좋아해 사교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조 작가지만, 어린 시절엔 무척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따라 상경한 뒤, 지금과는 달리 말수가 적고 친구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던 시골출신 소년을 살갑게 맞아주는 친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 채 소외되어만 가던 그의 유년시절은 외로움으로 가득했다고.
“어린 시절엔 소심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그런 저를 다그치거나 몰아세우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제 의사를 존중해주셨죠. 학교공부는 뒷전인 채 책에서 본 글을 흉내내며 무언갈 끊임없이 종이에 끄적이던 제게 글을 써보라며 독려해주시고 그 글을 출판사 이곳저곳에 보내 난생 처음 ‘상’이란 것도 받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제게도 자신감, 자부심이라는 단어가 찾아 왔던 것 같아요. 용기가 없던 시절 부모님이 제게 보여주신 작은 관심과 존중, 그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미래 인재들의 교류
반평생 가까이를 서양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조 작가는 올해 초 중국 현대사를 다룬 예능프로그램 <차이나는 도올>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도올 김용옥 교수와 인연을 맺었고 그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동양사학에 심취해 있단다. 그는 아시아 국가 간의 정신적 교류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느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한, 중, 일 세 나라는 서로 밀접한 역사적 사실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보통 ‘외국’하면 주변국인 중국, 일본보다 미국, 유럽 같은 서양 국가들을 쉽게 떠올리곤 하죠. 유학 시절 느꼈던 놀라운 점 중 하나가 유럽학생들의 술자리 대화였는데 그들은 역사를 논하며 국가 간의 잘잘못을 따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각자가 국가대표처럼 저마다의 논리를 펼치며 토론을 벌이더군요. 제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그들 각자의 역사적 지식과 신념에도 놀랐지만 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제게는 너무나 생소했거든요. 유럽이나 미국 못지않게 우리 아시아 역시 뛰어난 인재들이 정말 많음에도 저마다가 각자의 국적과 영역에만 국한되어 교류가 적은 것이 사실이에요. 역사를 함께 해온 한, 중, 일 세 나라의 인재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이들의 만남에서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성과가 만들어질지 생각만 해도 흥미롭지 않나요?”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와 서로가 받은 느낌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는 조승연 작가. 깊어가는 이 가을, 책 한 권이 품은 이야기로 감성을 채우는 저녁을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Profile
조승연
1981년 강원도 원주 출생
美 뉴욕대학교 경영학사, 佛 루브르대학 미술사학, 박물학 중퇴
2012년 <그물망 공부법> 출간
2015년 <비즈니스 인문학> 출간
現 tvN<비밀독서단> 등 다수 예능프로그램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