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실패는 함께 가는 전우
물러가는 여름의 아쉬움만큼 햇살이 가득한 어느 날, 방배동에 위치한 이건만 대표의 사옥서 그와 마주했다. 사무실 한 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품 몇 점이 놓인 쇼룸에 자리한 이 대표는 그간 걸어온 삶의 키워드로 ‘실패’를 꼽았다. 오늘의 자리에 있기까지 20년 가까이 디자이너로 살아온 자신에게 실패는 늘 함께하는 길동무였다고.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부터 실패를 거듭해왔지만 제가 말하는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보단 성장의 과정을 설명하는 단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경우 실패는 전장을 함께하는 ‘전우’ 같은 것이죠. 계속 넘어지고 틀리기를 반복하다보니 언젠가는 무언가를 이루게 되더군요. 종이 위에 그려진 2차원적인 그림만이 디자인이라고 여겨지던 시절, 제 상상 속에만 있던 이미지를 그대로 담은 넥타이를 처음 만들어 냈을 때의 그 기쁨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꿈 많던 미술가의 새로운 도전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가 본래 선택한 길은 순수미술이었다. 섬유의 질감과 용도에 특색을 더하는 섬유 공예(크라프트,Craft)를 공부하며 미술가를 꿈꾸던 이 대표가 디자인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미술계는 크게 세 가지로 순수예술인 아트(art), 공예를 뜻하는 크라프트, 그리고 디자인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이 세 가지를 고루 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셋 중 어느 하나도 먹고 살기 쉬운 것이 없었죠. 그러나 저는 당시부터 ‘21세기엔 디자인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 것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날이 올 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어요. 모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강단에 서서도 학생들에게 늘 이 점을 강조하곤 했죠. 그러던 중 제 이야기를 들은 의대생과 공대생이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되었어요. 그들의 과감한 선택에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가 가진 생각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먼저 들더군요.”
얼마 후 그는 자신이 공언하고 가르치던 내용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2001년, 디자인 회사를 차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의 소재로 ‘한글’을 선택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한글의 세계화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화
그가 한글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단 하나, 문화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청년 시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이 대표는 당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수천 년이 지난 로마의 거리와 건축물들이 여전히 도시의 시민들과 함께 공존하는 모습에서 문화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깨달았다고.
“언어만큼 강한 힘을 가진 문화적 소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언어의 힘을 이용해 우리 한글이 가진 멋을 널리 알리는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글의 대중화가 아닐까 싶어요. 한 예로, 알파벳이 쓰여 있는 셔츠를 보고는 우리는 그리 놀라거나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한글이 새겨진 옷은 신기해하고 조금은 낯설어 하기도 하죠. 바로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에요. 언제 봐도,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 것, 그게 바로 대중화라고 생각해요.”
양에서 질이 나온다
이건만 대표가 사내 디자인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지침이 있다. 디자인은 양에서 질이 나온다는 점이 바로 그것. 이 대표는 지금껏 많은 후배, 동료 디자이너들을 보아온 결과 많이 시도하고 그려보는 자가 결국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냈으며 실패를 참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저는 직원들에게 실패하라고 얘기합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반복해서 작업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작품을 얻어 낼 수 있거든요. 입버릇처럼 많이 그려보라 독려하지만, 결코 그 결과물의 양까지 재촉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를 내더라도 제대로 내기 위함이라면 충분히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니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와 능률이 높아지더군요.”
출세가 아닌 성공을 목표로
그의 브랜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인사동에 위치한 직영점에는 일본, 중국 등지의 관광객들에게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명소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1년 일본 도쿄의 한 백화점에 입점하였고 현재는 중국 진출 또한 모색하고 있다. 디자이너 이건만의 꿈을 묻는 질문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디자인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제 꿈은 세계에 이름난 도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건만’ 세 글자가 박힌 브랜드샵 하나씩은 만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외국의 명품 브랜드를 우리가 선망하고 좋아하듯 우리 한글을 소재로 만든 가방, 지갑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하는 것이 꿈이에요. 그 꿈을 이룬다면 저는 비로소 저 자신이 성공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들이 보고 부러워하는 ‘출세’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성공’을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우리 문화와 한글의 자부심으로 가득 찬 한글 디자이너 이건만 대표.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Profile
이건만
1963년生, 홍익대학교 섬유미술 학사
美 크랜브룩미술대학원 섬유디자인 석사
2005년 제7회 대한민국디자인대상 공로부문 장관표창
現 (주)이건만AnF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