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돌의 반란
최요한, 그는 유독 장벽이 높은 국내 미술계에서 소위 ‘굴러온 돌’로 불린다. 사회체육학을 전공하며 체육학 교수를 꿈꾸던 젊은 시절 그는 우연히 국내에 내한한 해외 유명 아이돌 그룹의 공연장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공연기획 쪽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1999년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 운영팀장을 거치면서 좀 더 창의성 가득한 일에 도전하고 싶어진 그는 공연기획·연출, 홍보대행사 등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미술품 전시로 노선을 변경한 그는 국내외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미술계에까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며 현재는 종로에 위치한 한 미술관의 예술 총감독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술계의 견고한 진입장벽 앞에서 비전공자인 그가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비전공자인 탓에 선·후배들의 시선을 떠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또 학습하지 않았기에 전공자라는 틀에 생각이 갇혀있지 않았고, 언제나 관객의 입장에서 먼저생각할 수 있었어요.”
기획자는 중도(中道)를 향해 가는 항해사
최 감독에게 전시기획자로서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기획자란 거센 파도와 싸우며 나아가는 항해사처럼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의 성향과 입맛은 수도 없이 다양한데, 편견에 사로잡혀 본인만의 잣대로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풀어낸다면 작가의 창작 의도와는 전혀 다른 관객의 반응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죠. 단순히 작가의작품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자리를 구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접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전시기획자·아트디렉터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시도가 관심을 얻는다
최 감독이 기획하는 전시는 매번 새로운 시도들로 구성되어 많은 관객의 관심과 화제를 모은다. 이번 ‘미스터 브레인워시展’ 역시 마찬가지인데 작품명과 그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표, 관객들의 접촉을 막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쇼케이스나 바리케이드 등 여느 전시장, 미술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이곳엔 없다. 그는 ‘독특성’이라는 단어로 그것의 해답을 내린다.
“틀에 갇히기 싫어하기에 저는 늘 뭔가 색다른 것,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편이에요. 이번 전시에서작품설명을 과감히 없앤 이유도 작품의 설명을 적어둔다는 것이 ‘이작품은 이러이러한 의도이니 너희 모두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해.’ 라는 일종의 강압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관객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작품을 느끼고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열린 결말’ 인 채로작품을 놓아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아직 살아있기에
오늘날 아트디렉터로서 당당히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광고대행사 등을 거쳐 한국관광공사의 한류 프로젝트 디렉터로 일하던 당시, 그는 국내에 소개할 만한 해외 콘텐츠들을 직접 가져와 기획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그를 위해 직접 외국 유명 작가들과 접촉을 시도하며 노력했지만, 그의 사업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사업이 완전히 망하면서 단돈 천 원이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까지 겪게 되었어요. 당시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팝아트 작가인 미국의 데이비드 라샤펠과 국내 전시 개최를 진행 중이었는데, 어느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언제쯤 한국에 건너가면 좋겠냐는 물음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는 당신과 일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했죠. 그 말을 들은 라샤펠은 너무도 의연하게 ‘당신회사가 망한 거지, 요한 네가 오늘 죽은 것은 아니잖아?’라고 하더군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저는 이제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든 게 다 타서 재만 남은 줄 알았는데 그게 재가 아니라 숯이되어 불씨가 남았던 것 같아요. 그의 말이 최요한이라는 숯에 다시불을 댕기는 한 마디가 되었죠. 무척이나 고마웠어요. 그 덕에 용기를 얻고 온갖 역경들과 부딪히며 그의 작품을 전시장에 걸었죠. 결과는 물론 대성공이었습니다. 그의 한 마디가 늪에 빠진 절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이후로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그는 당시 라샤펠의 한 마디를 늘 상기하곤 한단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기에’ 못할 것은 없다고.
지금의 나를 놓지 않기
아트디렉터 최요한의 궁극적인 꿈은 무엇일까.
“아직은 외국처럼 친근하고 자유로운 전시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기업들의 기부를 통한 전시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것또한 전시문화 성장에 어려움이 되고 있죠. 수익 창출을 기대한 전시산업 지원은 단기적으론 도움이 되지만 본질적인 성장을 이끌어내진 못한다고 보거든요. 전시기획자로서 제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도 제 꿈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를 놓지않는 것이에요. 전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일을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즐기는 최요한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싶어요.”
자신에게 만족하고 사는 삶만큼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 한여름의 태양만큼 열정으로 가득 찬 최요한 감독의 가슴 속 전시실에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