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요리사가 되다
점차 물러가는 이 겨울의 추위를 아쉬워하듯 하늘이 눈발을 흩뿌리던 어느 날, 신사동에 위치한 ‘엘본 더 테이블’에서 최현석 셰프를 만났다. 본업에 더해 후진 양성을 위한 강의와 방송 활동까지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도 마음은 늘 감사함과 행복함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그는 방송에서의 모습과 별반 차이 없는, 특유의 호탕함으로 어느 새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올해로 요리를 시작한지 21년째, 그는 의외로 요리사가 꿈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리고 노래와 기타를 더 좋아했던 그였지만 요리사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에 어릴 적부터 그에게 주방은 낯선 공간이 아니었고 친형 역시 요리를 시작하게 되자 자신도 자연스레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루 종일 주방에서 불과 식재료를 가지고 씨름하며 살아가는 요리사라는 고된 삶을 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일부인 식생활에 있어 단순히 배를 불리는 것만이 아닌, 식욕을 채우는 과정에 가치를 더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요리를 하면 할수록 셰프로서의 자긍심이 생겨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늘 고맙고 미안한 나의 가족들
방송 활동을 시작하며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통해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이 많아진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최 셰프. 반대로 이후 찾아온 유명세, 화려하기만 할 것 같은 유명인으로서의 삶이 자신에게 여전히 영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아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한 그는 자신을 좋아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만큼, 가족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교외나 맛집을 찾아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하는 것이 큰 행복이었지만 방송활동 이후 밖에서 식구들과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요즘 딸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한다.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중들의 관심에 아내와 사춘기 소녀들인 딸들이 상처를 입을까 염려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아버지, 남편으로써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냉장고를 들여다보다 문득 셰프들의 집 냉장고는 어떠할까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 셰프 최현석의 집 냉장고가 가진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그 냉장고는 내 것이 아니다.(웃음)” 라며 손사레를 쳤다. 셰프 최현석의 네 식구 식사를 책임지는 셰프는 자신이 아닌 아내이고, 아내가 사용하는 냉장고 역시 평범한 가정의 냉장고와 다를 바 없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식사를 만들어주는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셰프는 접시에 얼굴을 담는다
최 셰프는 작년 말, 사진작가 조선희와 타인과 친구가 되는 삶의 레시피라는 주제로 푸드 에세이를 발간했다. 사진과 요리라는 안 어울리는 듯하다가도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두 소재가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에서 최 셰프는 ‘셰프는 접시에 얼굴을 담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 짧지만 인상적인 표현에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좀 더 물었다.
그가 요리를 처음 배우던 수련생 시절, 수업시간에 주어진 요리를 서둘러 접시에 담아낸 뒤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공을 울렸는데 스승님께서 그의 요리 접시를 보시며 ‘얼굴에 흙 묻힌 채로 선보러 나갈거냐.’ 며 접시에 튄 양념방울을 지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접시에 요리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얼굴도 함께 담아내는 것이 셰프’ 라며 끝까지 신중하고 정성들여 요리할 것을 당부하셨다고. 그 날 스승님이 남긴 그 한 마디는 그에게 큰 울림이 되었고 몇 해 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 셰프 역시 제자들이 자신의 요리에 정성을 다하여 각자의 신념과 자존심도 함께 담아낼 것을 주문한다고 했다.
기술이 아닌 경험을 가르치는 요리사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정말 많다.”
요리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묻는 조금은 어려운 질문에 그가 가장 먼저 자신 있게 던진 한 마디이다. 오히려 그는 음식만큼 인간에게 행복이란 감정을 직접적, 직관적으로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또 있느냐며 반문해왔다. 최 셰프의 호기 넘치는 질문에 필자는 마땅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요리를 통해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셰프로써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는 최현석 셰프. 2016년, 셰프 최현석이 이루고자하는 꿈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그에겐 늘 꿈꿔오던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전 세계에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이 체득한 요리사로서의 경험과 습관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올 해 그는 막연히 꿈꾸기만 하던 이 두 가지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고 한다. 이를 위해 좀 더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요리를 만들기 위한 요리연구실을 만들고자 준비 중이며, 해외 진출에 대비해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과 동료 셰프들이 현장에서 활동하며 얻은 요리에 대한 지식을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직접 전수하는 요리학교를 세워 단순한 기술뿐이 아닌 경험을 가르치는 요리사가 되고자 내년 중으로 요리전문교육학교 개교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저녁시간 손님맞이를 위해 앞치마를 다시 둘러맨 최 셰프는 끝으로 우정가족들에게 전하고픈 한 마디를 손수 적어주며 여러분의 식탁에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말을 함께 남겼다. 그의 말처럼, 오늘 하루도 수고한 자신, 가족들을 위해 평소와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저녁밥상을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