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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염원이 함께 하는 곳, 임진각
올해는 우리나라가 서로 다른 이념의 차이로 둘로 나뉜 지 74년, 그리고 6.25 전쟁이 발발한지 69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날의 총성으로 어떤 분은 고향을 잃고, 또 다른 어떤 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가장 가슴 아픈 역사 중 하나인데요, 69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날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또 한 번의 6.25 전쟁 기념일이 지나갔는데요,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 책에서 만나는 사건 중 하나로 희미해져 가고 있는 그날의 흔적을 찾아 임진각을 찾았습니다.
임진각은 지난 1972년 실향민들을 위해 세워진 곳인데요, 마침 지난 3월부터 DMZ 홍보관에서 KBS 이산가족 특별전인 <만남의 강은 흐른다>전이 개최되고 있어 임진각을 찾은 많은 방문객들이 전시관을 찾아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당시의 아픔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4일까지 138일간 계속되었던 생방송으로 100,952건의 사연이 접수되어 10,189명이 혈육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렸는데요,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가족 상봉의 현장을 함께 보면서 같이 울고 같이 웃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바닥과 벽면에 전시된 당시의 사연들을 보면서 헤어진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들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전시관 1층과 2층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당시부터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진행될 때까지의 이야기들을 사진과 영상 자료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잠시 헤어졌다가 이내 곧 다시 만날 줄 알았던 가족들은 6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가슴속 한편에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언젠가는 이 사연 속 모두가 분단된 나라가 아닌 하나 된 나라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생방송 당시 이산가족 찾기 접수를 받던 접수대장과 방송 카메라도 볼 수 있었는데요, KBS의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단일 TV프로그램으로 138일, 453시간 45분 동안 특별 생방송 되면서 인류의 평화와 인권에 기여한 가장 적극적인 사례로 평가되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2015년 10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임진각 앞에 세워진 망향의 노래비에서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 당시 온 국민의 가슴을 눈물로 적셨던 '잃어버린 30년'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방송 당시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DMZ 넘어 그곳으로!
임진각 앞쪽에서는 자유의 다리와 독개다리,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등을 만날 수 있는데요, 임진강의 남과 북을 이어주던 유일한 철로였던 경의선 침목 위에는 지금은 우리가 가지 못하는 북한의 지명들과 그곳까지의 거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운행되던 증기 기관차로 전세가 악화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장단역에서 피폭되어 탈선하면서 반세기가 넘게 붉게 녹슨 모습으로 비무장지대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남북 분 단의 아픈 역사적 상징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는데요, 1020여 개의 총탄 자국이 그날의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짐작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장단역 증기 기관차 옆으로는 작은 뽕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요, 폭격으로 제 길도 잃고 부서진 증기 기관차 위에 홀로 자라고 있던 나무였다고 합니다. 때로는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로, 때로는 눈, 비를 막아주는 가리개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DMZ 안에서 긴 시간 동안 증기 기관차의 유일한 벗이었을 뽕나무는 증기 기관차 공개 전시와 함께 이곳으로 옮겨져 지금도 증기 기관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임진강을 건너는 경의선 철교는 원래 상하행선 두 개의 교량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었고, 그중 하행선 철교를 복구해 휴전 후 전쟁 포로들이 이 다리를 통해 돌아왔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후 이 다리 또한 철거되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재의 임진강 철교가 복원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유의 다리'라 부르는 곳은 이 철교 아래 새롭게 세워진 다리이며, 아직 끊어진 채 그대로 남아있는 상행선 교량 쪽이 독개다리입니다. 아직도 복구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상행선 교량이 기차가 힘차게 달린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임진각을 사이에 두고 개성과 서울이 있는데요, 개성까지의 거리는 22km, 서울까지의 53km. 서울에 가는 거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곳을 7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독개다리 입구의 노란 선이 민간인 통제선인데요, 지금은 입장료를 내고 일부 구간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리를 건너오며 언젠가는 기차를 타고 이 길 끝까지 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독개다리 옆으로 6.25 전쟁 당시에 실제로 사용하던 군사시설 지하벙커를 개조한 전시관인 < BEAT 131 벙커>가 있습니다.
BEAT 131 벙커 입구엔 실제 M15 대전차 지뢰와 빈 총탄이 전시되어 있고, 벙커 내부엔 전쟁 당시에 사용하던 군사 용품과 상황실이 재현되어 있어 전쟁 당시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었는데요, 영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며 지금의 평화에 대해 감사함을 가지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한 간절함을 담는 곳, 임진각 통일기원 느린우체통
임진각에서 만드는 특별한 추억 하나, 바로 느린우체통인데요, 임진각에서의 행복한 추억이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임진각 통일 기원 느린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주소지로 편지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느린우체통 바로 옆에 나란히 위치한 이산가족 우체통에 담긴 편지들은 전시회 때 일반인들에게 보여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각자 가슴속에 품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편지가 느린우체통에 가득 채워지는 날 우리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통일기원 느린우체통과 이산가족 우체통이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지는 그날이 꼭 오리라 믿어 봅니다.
평화의 바람이 불다, 평화누리공원
평화누리공원은 야외공연장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 언덕이 펼쳐져 있고, 언덕 주변으로는 여러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공원 자체가 하나의 큰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형형색색의 연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 여유로워 보이고 좋았는데요, 평화누리공원의 이 평화로운 기운이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임진강 너머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봅니다.
남북 간의 평화의 분위기가 더 무르익어 임진각에서 바라보는 북쪽 하늘이 아니라 경의선 열차를 타고 신의주까지 달려가 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앞으로 다시는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분단의 아픔이 언젠가는 과거형이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임진각을 떠나왔습니다. 이제 곧 아이들의 여름방학과 여름휴가가 시작될 텐데요, 가족이 다 함께 임진각을 찾아 과거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새로운 미래에 대해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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