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는 지금부터 7년 전,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만났다.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 나는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다. 헐렁헐렁한 새파란 청바지에 꽉 끼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M자형 대 머리에 빗질도 하지 않은 그 초라한 모습은 막 시골에서 올라온 삼돌이 같아서 도저히 학교 교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뜨거운 커피 한잔을 숭늉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다짜고짜 '커피숍은 답답하고, 스릴 넘치는 좋은 장소가 있다.'며 함께 나가자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일방적이고 엉뚱한 것 같아 속으로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하고 황당해했지만, 초등학생처럼 솔직 담백해 보이는 모습이 왠지 마음에 들어 서 그냥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서울랜드. 놀이공원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정신이 없던 차에 남편은 갑자기 '바이킹을 타자' 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한 번 타보고 워낙 오랜만에 타보는 것이라 겁도 났지만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아, 으윽~' 소리를 지르며 한편으로는 겁도 났지만 스릴 만점인 것 같아 바이킹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탔다.
남편은 내가 조금이라도 무서워하는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지르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내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면 꽤 오랫동안 교제해온 커플로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는 남편의 실력이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거부감이 없고 첫 만남이지만 천생연분인지 이 남자에게 정이 가고, 좀 꾀죄죄한 모습을 세련되고 멋지게 만들어 주고 싶은 동정심이 생겼다. 8남매의 막내로 자란 남편은 형님, 누님들에게 보호만 받고 자란 탓인지, 장녀인 나에게 모성애를 발휘하고 싶은 충동을 자극하기게 충분한 대상이었다. 만남의 횟수가 더해 가면서 '내가 왜 진작 이러한 남자를 못 만났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우리는 다정한 연인이 되었다.
남편은 역시 아이들하고만 생활해서인지 '순진무구' 그 자체였다. '어쩌면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도 이렇게 순수하고 세상물정을 모를까?' 할 정도로 어디 한 구석 나물랄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후 청송대에서의 모기 미팅, 달리는 버스 뒤에서의 영화 촬영(?), 엘리베이터에서의 키스, 학교 사택에서의 미스터리 사건 등 등 주변에 무성한 소문을 퍼뜨리며 열정적으로 교제한 끝에 우리는 만난 지 몇 달도 안 되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그로부터 꼭 1년 후 결혼을 했다. 그때의 일들은 아름다운 추억거리였으며, 남편은 시인이었고 나는 그 시를 감상해 주는 독자였었다.
사람은 수많은 만남의 과정을 거쳐 사회화가 된다. 올해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청춘남녀들이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좋은 배우자도 만나고 행복한 인생을 영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