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글니글>? ‘부글부글’하다가 ‘생글생글’ 웃게 되는 개그!
지난 5월 KBS 2TV ‘개그콘서트’에 희한한 남자들이 나타났다. 후덕한 몸매가 아낌없이 드러나는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두꺼운 아이라인까지 그린 두 남자다. 이들이 서로의 얼굴과 몸매를 칭찬하며 파격적인 댄스를 추면 객석엔 그야말로 웃음 파도가 넘실댄다. <니글니글>의 주인공은 바로 개그맨 이상훈과 송영길. KBS 신관 내 카페에서 만난 개그맨 이상훈은 ‘송영길 선배와 정말 쿵짝이 잘 맞는다’ 며 <니글니글>이 순항하는 비결을 전한다.
“<니글니글>의 시작은 송영길 선배였어요. 선배가 복싱을 배우러 갔는데 갑자기 거기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꽂혔대요. 그 노래가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의 노래 ‘위글(Wiggle)’이었는데, 마침 느끼한 무언가를 찾던 터라 제격이다 싶었던 거죠. 그렇게 선배와 함께 음악에 맞춰서 느끼하면서도 꿀렁꿀렁한 춤을 만들었어요.”
<니글니글>을 처음 본 방청객의 반응은 경악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상훈은 ‘첫 무대 반응이, 관객들의 뜨거운 함성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5년간 개그콘서트에서 오른 무대를 통 틀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반응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아마 <니글니글>을 처음 보시면 속이 정말 니글니글하실 거예요. 누가 봐도 못생긴 두 남자가 나와서 ‘원빈’을 들먹이며 서로의 얼굴과 몸매를 칭찬하거든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대를 내려올 때쯤 관객 얼굴을 보면 미소가 생글생글 어려 있어요. 사실 두 명의 못난이가 섹시한 척 하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겠어요? 코너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감입니다. 전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마인드컨트롤을 해요. ‘난 잘생겼다. 난 인기도 많다’하면서 스스로 최면을 걸고 무대에 올라갑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 오른 개그맨 이상훈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아이라인에 잔뜩 힘을 주고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자아도취형 멘트를 날린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전 그는 홀로 거울을 보며 ‘난 잘생겼다’고 끊임없이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이상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그맨’의 꿈을 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에 ‘코미디언’이라고 썼고, 존경하는 인물엔 ‘심형래 아저씨’라 적었을 정도다. 실제로 친구들은 이상훈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웃음을 터트렸고, 이상훈 역시 ‘내가 진짜 웃긴 사람인가 보다’라고 여겼다.
“제 고향이 경북 영주예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땐 개그전공 학과가 없을 때라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 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낙방, 물리치료과를 갔어요. 하지만 개그맨이란 꿈을 접은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장남이다 보니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해서 개그맨 시험을 보고 만약 떨어지면 물리치료사로 취업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KBS 공채 17기 시험을 봤는데 경쟁자가 정형돈, 이정수였죠. 결국 시험에 떨어졌고 물리치료사로 2년 6개월 간 일했습니다.”
물리치료사란 직업은 만족스러웠다. 안정적이었고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훈은 TV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피가 끓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주위 친구들도 ‘너 왜 개그맨 안 하냐’며 어릴 적 꿈을 상기시켜 줬다. 결국 그는 물리치료사를 그만두고 다시 개그맨에 도전한다. MBC까지 합치면 총 8번의 시험에서 낙방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결국 이상훈은 4년 전, 만 서른을 앞두고 KBS 26기 공채 개그맨의 꿈을 이룬다.
“전 시험은 실력에 약간의 운이 더해져야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유독 운이 안 따라줘서 떨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면 기회는 영영 사라지잖아요. 조금 실력이 모자라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언젠가 기회는 옵니다.”
이상훈은 말한다. ‘포기하지 않는 한 크던 작던 확률이 있다’고. 그러니 정말 간절한 꿈이라면 포기하지 말고 한 번 더 도전하라고.
무대공포증은 무대에서 이겨낸다
8번의 불합격 끝에 마침내 이뤄낸 개그맨의 꿈. KBS 공채 17기 시험을 봤을 때부터 헤아려도 무려 9년 동안 바라던 꿈을 이뤘지만 개그맨의 길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토록 소원하던 ‘개그콘서트’의 무대에 섰지만 그는 존재감이 없었고 늘 누군가를 받쳐주는 역할만 했다. 데뷔 2년차엔 무대공포증까지 생겼다.
“당시 영화 ‘도둑들’을 패러디한 코너 <좀도둑들>에서 김혜수 씨 역할을 했어요. 분장한 제 자신이 창피해서 웃음의 요소를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늘 정장을 입는 역을 했는데 갑자기 망가지니까 거울 보기도 싫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무대에 올랐는데 어느 관객이 ‘이상훈 머리 정말 크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순간적으로 멘탈이 흔들려서 NG를 냈고 나중엔 무대공포증까지 왔어요. 그저 도망가고만 싶었죠.”
오랫동안 무대를 꿈꿔왔지만 어느새 무대는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이상훈은 그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는 ‘박성광 선배에게 정말 고맙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성광 선배와 <시청률의 제왕>이란 코너를 함께하며 2년차 징크스도, 무대 공포증도 떨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청률의 제왕>은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예요. 1년이 넘게 <시청률의 제왕>을 하면서 범죄자부터 호위무사까지 정말 다양한 역을 했습니다. 유행어도 없고, 매주 캐릭터가 바뀌는 덕에 기억해 주는 시청자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값진 시간이었어요. 어느 날은 코너 내내 곰탈을 쓰고 있느라 얼굴은커녕 목소리도 나가지 않았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 그때 제가 타이트한 바지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방청객들의 반응이 꽤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핵존심>이란 코너를 할 때 타이트한 의상을 입었어요. 그런 식으로 여러 역할을 연기하며 제게 맞는 캐릭터를 찾아나갔죠.”
무대공포증을 이기는 길은 결국 무대에 있었을 터, 그렇기에 이상훈은 오늘도 무대를 고민한다. 데뷔 5년 만에 찾아온 스포트라이트에 감사하면서도, 자신이 있을 곳은 ‘무대’임을 잊지 않는다.
“물리치료사를 할 때는 개그콘서트 무대에 딱 한 번이라도 서는 게 꿈이었어요. 그 다음엔 공채 개그맨이 꿈이었으니 전 이미 꿈을 초과 달성한 거라 생각해요. 이제 저의 꿈은 ‘개그콘서트’ 무대에 쉬지 않고 매주 오르는 겁니다. 또 지금은 ‘더티 섹시’ 콘셉트의 <니글니글>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로맨스 개그 코너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니글니글’에서 ‘생글생글’까지, 끊임없이 무대를 고민하는 개그맨 이상훈. 앞으로 그가 보여줄 포복절도 웃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