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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주 본부장이 집배 체험을 함께한 시골 마을 작은 우체국
반려견 인구 천만 시대에 황금개띠해를 맞은 올해, 전북 임실군 오수면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 이른바 ‘오수의견(義犬)’ 전설이 깃든 충견과 명견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강성주 우정사업본부장이 새해를 맞아 1월 4일, 집배원 근무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집배 체험을 진행한 곳도 임실오수우체국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조직을 이끄는 대표와 현장 집배원들이 함께한 시간은 과연 어땠을까? “작년 11월에 신임 본부장의 취임 소식을 듣고 궁금했는데 얼마 전 집배 체험을 통해 처음 뵀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 2시간 가까이 저희 집배원들과 집집마다 다니시는 걸 보고 ‘이 분이 각오 단단히 하고 오셨구나’ 싶었지요. 집배원들의 현장 목소리를 들으러 오셨다는 게 느껴지니 좋더라고요. 사람 첫인상이라는 게 참 중요한데 이런저런 말씀 전하며 솔직한 소통을 이어가시는 모습 보니 믿음직스럽고 앞으로 잘 하실 거라 기대하게 됐습니다.”
임실오수우체국에서 수장 역할을 다하고 있는 김인석 국장이 밝은 얼굴로 그날의 소감을 전했다. 공공 서비스를 비롯하여 시설과 환경이 다소 열악한 시골 마을에서 우체국 집배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한데, 본부장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집배 체험할 지역을 선정한 것 같다는 통찰을 전하기도 했다.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32년차 베테랑 우정인이자 우체국을 이끌며 오수면 주민들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우체국장답다.
“시골 마을 작은 동네에서는 집배원들이 우편물만 전하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 안부도 확인하곤 해요. 저 같은 창구 직원도 다를 바 없지요. 여기 앉아 있는 저한테 크고 작은 민원을 하소연 하시는 주민이 많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일단 들어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간혹 제 응대를 오해하고 역정을 내시는 분도 있는 반면 특별히 해드린 게 없는데도 거듭 고마워하시는 분이 있는 걸 보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한다는 게 어렵지만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여긴 이렇게 매일 사람끼리의 정이 오가고 즐거움이 있는 우체국이에요.”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던 김시선 주무관은 남녀차별이 적고 근로자 인권이 보장되는 직종으로 전직을 꿈꾸다 우체국에 들어왔다. 생활밀착형 공공 기관에서 일하며 사람을 돕는 보람도 찾고 싶었던 그가 입사한 지 어느덧 9년. 어딜 가나 힘든 건 마찬가지겠지만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며 우정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 만족스럽다는 그의 미소가 자랑스러워 보인다.
마음이 정화되는 자연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
원래 장수우체국 소속이지만 오수면으로 파견을 나와 있는 엄금재 주무관(집배팀장)은 매일같이 주민들을 상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 보니 할 말이 더욱 많았다.
“저 역시 사회 초년생 땐 다른 일을 하다 채용 공고를 보고 도전하여 입사했습니다. 처음부터 집배원 업무만 해왔는데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했지만 일부 주민들의 집배원을 하대하는 시선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지요. 저희가 개인 심부름꾼은 아닌데 직접 드려야 할 등기우편을 사람이 없어 못 전하고 오면 이해를 못 하시고 당장 가져오라는 주문도 다반사입니다. 한번은 연하장이동봉된 택배를 수취인 이름도 안 적고 보낸 발신인이 있어 연락했더니 막말을 하며 ‘집배원 XX가 이런 것도 처리를 못 한다’ 고 계속 민원을 넣으셨어요. 나중에 상황을 안 수취인께서 직접 발신인에게 민원 취하를 요청하여 해결되긴 했지만 이럴 때 우리 집배원들은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털어놓는 엄 주무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안타까운 뉴스를 떠올렸다. 연말 소통 물량이 많아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일부 고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오라거나 쓰레기봉투를 버려달라는 몰상식한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황당한 사연을 다시 한 번 접하니 새삼 집배원들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집배원 생활을 하며 마을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엄 주무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래도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하루를 버티고 일주일, 한 달을 이겨낼 수 있었지요. 그렇게 쌓인 세월이 15년 9개월에 접어드네요. 주민 대부분은 아들처럼, 조카처럼 예뻐하며 챙겨주십니다. 마을회관 어르신들은 혹시나 제가 끼니도 거르고 배달을 다닐까봐 걱정해주시는 분이 많답니다.”
주민들의 인심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자랑하는 엄 주무관의 말을 이어받아 김인석 국장도 한마디 거든다. “이 지역 토박이분들은 집배원을 가족처럼 여기고 반겨주시는데 간혹 외지인들이 함부로 대하실 때가 있어요. 저희도 빠르고 정확한 배송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으니 주민들께서도 이 점을 양지하시고 편견 없이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빽빽한 삼림과 기암기석을 품고 있는 섬진강 상류의 전북 임실군은 일교차가 크고 토질이 좋아 예부터 ‘열매의 고장’으로 불리고 있다. 빼어난 경관의 인공호수 ‘옥정호’, 선녀 넷과 신선 넷이 어울려 놀았다는 ‘사선대’ 등 지역 명소를 자랑하는 김인석 국장은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순화시키는 자연의 혜택”이라고 강조한다. 작년 7월에 이곳으로 발령이 난 김시선 주무관도 크게 공감했다.
“직원 11명 중 여자는 창구 담당으로 저를 포함하여 단둘인데 행여나 사고라도 날까봐 집배원 선생님들이 수시로 나와서 확인해주세요. 무게가 20~30kg은 거뜬히 나가는 우편물도 항상 대신 들고 옮겨주셔서 저희는 들을 일이 없지요. 가끔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가 있는데 저희는 항상 먹기나 하라며 배려해주실 때면 1년도 채 안 됐지만 직원들끼리 많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낍니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매일 볼 수 있는 곳이라 우리 마음도 온화해지는 것 아닐까요?”
마사지를 잘 해서 동료들의 피로를 손수 풀어주는 직원이 있고,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복권 당첨금 전액으로 생필품을 구입하여 양로원에 기증한 집배원도 있다는 임실오수우체국. 이곳을 다녀가는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김인석 국장의 바람처럼 올 한 해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우체국이 될 것만 같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심형근 주무관, 양병웅 주무관, 구자원 주무관, 엄금재 주무관, 하재인 주무관, 김인석 국장, 정정란 주무관, 김시선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