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아름다운 시가 생각난다. 또 어떤 시인은 이렇게도 썼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수표를 사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바닷가 언덕 위에, 그것도 우체국 창문 밖으로 흰색의 등대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우체국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그림 같은 우체국에 근무하는 직원 들은 어려서부터 필자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봄에는 화사한 꽃들로 둘러싸이고, 여름에는 울창한 떡갈나무가 우체국을 한층 더 여유롭게 만들고 있었다.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화단 가득 심어져 끝없는 아쉬움과 정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리고 겨울이면... 아아, 그랬다. 겨울 우체국은 더없는 행복과 평화가 깃든 마술의 집 같았다.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추운 바깥과는 달리 우체국 안에는 검정색 주먹탄이 난로 가득 담겨져 붉은색의 아늑한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난로 연통에서 나오는, 건강에 해로운 주먹탄의 매캐한 냄새조차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얼마쯤 전에 직원들의 알루미늄 도시락들이 서너 개 그 난로 위에 사이좋게 포개어졌고, 잠시 후에는 난롯가에서 직원들이 웃으며 점심밥을 먹었다. 침을 삼키며 그 아련한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꿈속인 듯 마음이 편안해져 오곤 했었다.
홀린 듯 바라보다가 하릴없이 엽서 한 장을 달랑 사서 들고 우체국 문을 나서면 뒤따라 편지를 담은 누런 색 집배가방과 곤색의 멋진 모자를 쓴 후덕한 집배원 아저씨가 우체국 옆문을 열고 나왔다. 이집 저집 기쁜 소식을 전해주러 한적한 시골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걸어가던 집배원 아저씨는 누구보다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동경했던 우체국에 근무한 지도 이십년이 넘었다. 물론 밖에서 피상적으로 바라보던 우체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역시 우체국은 멋진 곳이라는 생각에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렇듯 낭만적인 아름다움과 情이 어우러져 있던 지난날의 우체국은 많이도 변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종합정보화센터로서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첫 단계로 이제 우체국에도 위성수신 안테나와 광통신망에 연결된 최첨단의 통신 시스템을 지닌 컴퓨터를 갖추어 놓은 '인터넷 플라자'를 열어 놓고 주민 들이 최신 정보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으며,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우편주문판매 상품을 거래하는 전자상거래'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우체국에 가면 최첨단의 정보화기기를 이용하여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들을 마음껏, 그것도 무료로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태여 시장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의 많은 상품을 전자상거래를 통하여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정부가 운영하는 유일한 금융기관으로서 여느 보험회사보다 더 미덥고 안전한 보험 상품을 취급함은 물론 예금업무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물건을 판매하는 '포스트 숍', '꽃배달 서비스', '각종 상품권 판매'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상품을 취급하는 우체국은 이제 꽃 그림이 새겨진 종이에 밤을 새워가며 깨알같이 정성들여 쓴 정다운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멀리 떨어진 그리운 사람에게 한참을 기다려 시외전화만을 걸던 예전의 우체국은 아니다. E-mail이 어느 새인가 보편화된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의 추이에 발맞추어 현대인들이 정보화 시스템을 이용하여 가상공간에서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우체국도 예외 없이 추구하게 되었다.
이제 그러한 초고속 정보통신시대를 맞는 우리는 지난날의 재래적인 업무 방식에 머물러 있을 겨를이 없게 되었다. 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아낌없는 친절과, 적극적인 마케팅 자세와 더불어 우체국을 종합정보화 센터로 육성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체국을 찾는 고객에 앞서 우리 자신부터 먼저 첨단 정보화기기들을 능숙하게 운용할 줄 알아야 하며, 그 기기들을 통한 새로운 경영방식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해서 주춤거리고만 있다면 이 변화의 시대는 그런 사람을 인생의 패배자로, 낙오자로 낙인찍어 두고 저 멀리 달아나 버릴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우체국 창구에 무수히 온다. 어느 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 기쁜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은 기쁨으로 아름답다. 우체국을 향해 오는 그들의 가슴은 또 다른 기대와 흥분(새로운 첨단 정보기기들을 써서 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보는 한편, 새로운 정보에 접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흥분)으로 설렌다. 그들의 마음 언저리에는 색다른 낭만(사이버 낭만?)도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 종이로 된 편지를 가지고 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편지 겉봉에 손으로 주소를 써주고, 소포를 정성들여 묶어 주는 한편, 인터넷 플라자에 와서 전자우편 송신 방법이나 전자상거래에 관한 것을 물으면 재빨리 마우스를 잡고 능숙하게 클릭해 주기도 해야 한다.
혹자는 우체국이 완벽한 전자동 사이버 공간화를 이루면 사람들의 손이 필요 없어져서, 그 옛날 우체국 2 층 전화교환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시끌벅적 전화선 코드를 연결해 주던 전화교환원들이 어느 날인가 자동전화로 바뀌면서 전부 철수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체국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져서 전부 우체국을 그만둬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섣부른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통장자동 정리기와 텔레뱅킹 등의 자동화기기 같은 것들은 그런 걱정을 하게 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말 하면 앞날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자동화가 이루어져도 사람의 손길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므로 미리부터 낙심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은 우체국이 완벽한 사이버 공간으로 변하기 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있는 곳에서 현재의 맡은 바 직책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아낌없는 친절'과 적극적인 '마케팅 자세'와 더불어 각자가 새로운 각오로 '정보화의 수준 향상'에 앞장서야 하겠다. 그렇게 노력한다면 변화·발전하면서도 여전히 신바람 나는 직장인, 우체국에서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승리자로서 영원히 우체국에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