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살아온 지난날
칼럼니스트, 작가를 넘어 최근 방송에도 얼굴을 비추며 박식하고 소신 있는 발언으로 이목을 얻고 있는 서민 교수. 하지만 그의 정체성은 언제나 기생충과 함께한다.
“본업을 벗어난 다양한 외도(?)로 제 직업을 헷갈리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기생충학자 서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글 쓰는 것도 방송도 즐거운 일이지만 제가 가장 행복하고 기쁜 순간은 기생충을 연구할 때거든요.”
호기심 많고 성실한 의대생이었던 서민 교수는 왜 사람의 몸이 아닌 인체에 기생하는 기생충에 빠지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기생충이 반드시 없애야만 하는 밉고 해로운 존재로만 여겼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기생충은 인간에게 큰 해를 주지 않아요. 또, 의학이든 기생충학이든 어차피 모든 기초과학, 의학의 목표는 인류의 건강 증진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인체를 직접 다루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학과는 조금 다르게 기생충이라는 매개에서 그 유용함을 찾아보고자 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지금도 제 연구의 초점은 기생충 자체보다 그를 이용해 어떡하면 인류에게 더 효율적이고 유익한 치료법과 약물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데 있죠.”
글을 쓰기 시작한 독자(讀者)
서 교수는 학자답게 평소 다독(多讀)하기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겼다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네다섯 권의 책은 반드시 읽는다고.
“어느 정도 책을 읽다 보니 나도 책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다 문득 나도 은반의 주인공이 되어 스케이팅하는 모습을 상상하듯이 말이죠. 그때부터 집필 활동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첫 도전은 당시 제가 봐도 너무나 부족함이 많았죠.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남에게 내보였을 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좋은 문장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더 들더군요. 책 읽기에 더 매진하며 여러 글을 눈에 심고 나니스스로도 느낄 만큼 새로운 글을 만들 수 있게 됐죠.”
이처럼 글과 책을 사랑하는 서 교수가 집어 드는 책은 어떤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저는 소설, 수필, 에세이 뭐든 가리지 않고 읽는데 특히 소설에 좀 더 강하게 끌리곤 합니다. 소설이란 건 작가가 상상해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해답을 써놓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가치 있는 해답들이 오래도록 전해진 것이 고전이고요. 언젠가 저도 누군가에게 전할 만한 중요한 인생의 해답을 찾게 된다면 그것을 담아 소설 한 편을 쓰고 싶은 게 꿈이에요.”
우체국을 통해서 더해지는 편지의 가치
우체국 하면 떠오르는 편지 또한 글쓰기의 한 종류인데 서 교수에게 편지란 어떤 존재일까?
“본래 말주변이 없어 말보다는 글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했어요. 오죽하면 대학 조교시절 담당 교수님께 휴가 달라는 말을 못 해 장문의 편지를 써 교수님께 드린 적도 있지요. 내가 왜 휴가를 가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돌아와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상세하게 적어서 드렸고 덕분에 달콤한 휴가를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가끔 아내에게 편지를 써요. 하지만 저는 다 쓴 편지를 집에 있는 아내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아요. 반드시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여 집으로 보내죠. 왜냐하면 편지란 수단에는 솔직함의 표현 외에도 기대감이라는 정서가 녹아있거든요. 기대하지 못한 때에 우편함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편지 한 장을 뜯어보는 순간만큼 기다려지고 설레는 순간도 없거든요. 저는 단순히 제가 쓴 글과 마음뿐이 아닌 편지와 함께 전달되는 설렘까지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이처럼 편지란 꼭 우표가 붙은 채로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만 그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기대하지 못한 때에 우편함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편지 한 장을 뜯어보는 순간만큼 기다려지고 설레는 순간도 없거든요. 저는 단순히 제가 쓴 글과 마음뿐이 아닌 편지와 함께 전달되는 설렘까지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이처럼 편지란 꼭 우표가 붙은 채로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만 그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위한 글쓰기가 필요한 우리
하루 한 글씨도 안 쓰는 날이 있을 정도로 글쓰기와 멀어지고 있는 오늘날, 서 교수는 글쓰기가 가진 힘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글이란 내 생각의 자세한 표현입니다. 글자로 문장을 쓰는 동안 되새기는 과정을 거치는 문장은 말보다 더 정제되어 있거든요. 그만큼 자신을 겸허하게도 만들고요. 사실, 요즘 같은 시대가 더 글쓰기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워낙 빠르고 바쁜 하루를 살다 보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잖아요. 하얀 종이를 마주하고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일상에 지친 나를 위로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글은 곧 인격이라며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글을 쓰겠다는 서민 교수. 가을의 초입에 선 이때, 내 마음의 창이 될 한 문장을 찾아 책 속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Profile
서민
1967년 生 서울대학교 대학원 기생충학 박사
1992 ~ 1996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1999 ~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
저서 《서민적 글쓰기》, 《서민의 기생충 열전》, 《집 나간 책》 외 다수
방송 EBS <까칠 남녀>, SBS <뉴스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