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힘을 주는 연기자
TV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부모님 전상서>, <사랑을 믿어요>의 국민 대표 아버지 배우 송재호 씨는 원칙과 소신이 있는 아버지, 한결같이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묵묵히 믿어주는 아버지였다. 그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따뜻했고 부드러웠으며 자상했다. 그래서 꼭 내 아버지가 아니어도 그의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으며 때론 울기도 때론 웃기도 했다.
현대사회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가족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아버지들은 위축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위로받으며 몸을 쉬이고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따뜻했던 지난날의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그런 점에서 연기자 송재호 씨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아버지’라는 역할 연기를 통해 위로와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늘 많은 생각을 해요. 우리 때만 해도 아버지가 가족의 중심이었는데, 뭐랄까 이제는 한걸음 물러서 있는 존재 같아요. 그래서 하면서도 좀 쓸쓸한 생각이 들지요. 그래도 묵묵히 가족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주니, 또 자식들의 본보기가 되는 아버지이어서 마음이 따뜻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내 집에서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어떤 아버지, 어떤 남편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지요. 생각해보면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1959년 성우로 데뷔해 부산에서 성우로 일했던 그는 이를테면 큰물에서 놀아보자며 처자식을 두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충무로에서 어느 배우의 도움으로 감독 한명을 만났는데, 그 감독이 바로 김기영 감독이었다. 다짜고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김기영 감독은 쌍꺼풀 있는 배우만 쓴다고, 해서 ‘당신은 안된다’라며 잘라 말했다고. 그 길로 그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붓기도 빠지지 않은채 다시 김기영 감독을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그는 두려울 것 없는, 어떻게든 처자식 위해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1965년 그는 그렇게 열정 하나로 배우가 되었고 이후 <영자의 전성시대>,
<깃발없는 기수> 등에 출연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으나 사업실패로 연속되는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처한 어려움은 그를 단단하게 하기보다는 정신과 내면을 더 흔들었다. 딛고 일어서려는 순간, 번번이 몇 차례의 좌절을 더 겪어야 했고 그 마지막엔 막내아들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견딜 수 없었던 순간, 그래서 그는 자살이라는 나쁜 생각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때 그를 잡아준 것이 그의 아내요, 자식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것은 뒤늦게 깨달은 신앙심이라고 했다.
마치 자식 배웅해주는 아버지처럼
어려움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지금의 연기도 자연 그대로의 그의 모습도 이해가 되었다. 모진 풍파를 한 차례 한 차례 이겨내면서 그의 마음은 견고해졌고 마침내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품을 수 있는 어떤 삶의 혜안이 그도 모르는 사이 생겼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드라마 속의 모습일지라도 그를 통해 삶의 지혜를 느끼고 배우기도 할 터다. 송재호라는 배우는 철저하게 삶의 결을 반영한 연기를 하기에 말이다.
“아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해요.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 즐거운 일만 이야기하면서 살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그래요. 내가 철이 늦게 나고 너무 늦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지요. 나 때문에 우리 안식구하고 먼저 간 막내아들까지 다섯 아이들이 크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에요. 많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요.”
몇 년 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시절 너무 방탕한 생활을 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때마다 모든 일을 알아서 해결해준 아내와 자식들에게 고맙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아내 덕분에 송재호라는 사람이 다시 설 수 있었고 자식들도 제 몫을 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어떤 말로 고마움을 대신해야할 지… 라며 고개를 숙였다. 숨 쉬는 동안에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 그동안 가족들에게 잘하지 못했던 것을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나마 갚고 싶다는 송재호 씨다. 해서 그는 연기뿐만 아니라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로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코스타(해외 유학생 선교모임) 활동 등 신앙생활을 통한 사회활동도 열심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주었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 악수를 청하며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치 자식 배웅해주는 아버지처럼.
송재호 1939년
부인, 4남 1녀
1959년 부산KBS 성우 데뷔
TV <보통 사람들>, <사랑이 꽃피는 나무>, <부모님 전상서>, <사랑을 믿어요>, <싸인> 등
영화 <겨울 여자>, <화려한 휴가>, <해운대>,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