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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 등이 크게 놀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으나, 김옥균은 대꾸도 하지 않고 편전이 있는 합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윤경완이 병사 50여 명을 거느리고 지키고 서 있었다. 김옥균은 윤경완에게 군사를 단속하여 명령을 기다리라고 지시하고 편전으로 들어갔다. 편전에 있던 변수가 다가와 주상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궁중에서는 아직 어떤 낌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속삭였다.
잠시 뒤 내시들이 대청 밖으로 나오며, 무슨 일로 이 밤중에 평복으로 들어왔느냐며 따졌다. 김옥균이 환관 유재현에게 고종을 깨워 달라고 하자, 유재현은 이유가 뭐냐며 계속 캐물었다. 유재현은 고종과 민비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어 웬만한 관원은 우습게 아는 자였다. 그 역시 개화파의 제거 대상으로 점 찍혀 있었다.
“지금 나라에 위태로운 일이 생겨 시급히 상을 뵈어야 하는데, 너희 환관 무리가 어찌 그리 말이 많은가?”
김옥균이 큰 소리로 꾸짖자 유재현은 입을 다물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지금 김옥균이 참내하였는가? 무슨 일이 생겼는가?”
고종이 김옥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김옥균은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침실로 들어가 우정총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잠시 창덕궁을 피해 다른 궁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중전 민비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보며 캐물었다.
“경 등이 말하는 변란이 청국 측에서 일으킨 것이오, 일본 측에서 일으킨 것이오?”
김옥균이 미처 입을 열어 대답하기도 전에 지축을 뒤흔드는, 강력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통명전에 매설한 폭탄이 터졌던 것이다. 느닷없는 폭탄 소리에 얼이 빠진 고종과 민비는 김옥균의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침전을 빠져나갔다. 김옥균은 급히 서재필을 불러 고종을 호위하도록 지시했다.
“현 상황에서는 일본공사관에 요청하여 일본 군사로 하여금 호위토록 한다면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고종을 뒤따르던 김옥균이 각본대로 일본공사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고종은 별생각 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만약 일본 군사를 불러 호위케 된다면, 장차 청국 군사는 어찌할 것이오?”
민비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청국 군사 또한 와서 호위케 해도 됩니다.”
김옥균은 임기응변으로 둘러댔다. 김옥균은 즉시 유재현을 불러 일본공사관에 가서 호위장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또한 뒤따르는 수하에게 청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별영으로 가서 청국군의 지원을 요청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그는 이미 수하에게 가는 척만 하라고 지시해 놓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변수를 불러 일본공사관에 가서 모든 계획이 뜻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도록 했다.
일본공사는 와서 짐을 호위하라
폭탄 터지는 소리 한 방에 행궁을 옮기는 문제는 예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궁전을 무너뜨릴 듯한 굉음에 넋을 잃은 고종과 민비, 그리고 궁인들은 묵묵히 경우궁을 향해 창덕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케조에 공사에게 호위를 부탁하긴 하였습니다만, 친필 칙서를 보내지 않아 하명하신 대로 움직일지 걱정입니다.”
김옥균이 그처럼 다케조에에게 부탁한 호위 요청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친필 칙서를 보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옥균은 그렇게 말하고 품 안에서 연필을 꺼내 고종에게 올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영효가 품 안에서 백지를 꺼냈다. 고종은 요금문으로 향하는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日本公使來護朕’이라는 일곱 글자를 연필로 썼다. “일본공사는 와서 짐을 호위하라”는 뜻이었다. 김옥균은 그 종이를 박영효에게 건네며 급히 다케조에 공사에게 가서 전하라고 지시했다. 고종 일행이 목표 지점인 경우궁 후문에 도착하자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김옥균은 윤경완으로 하여금 담을 넘어가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열게 했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대문이 닫혀 있어 여섯 차례나 자물쇠를 부수고 대문을 열어야 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이어서 평일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때 전영사 윤태준과 경기감사 심상훈이 야간근무를 하다 고종과 중전이 궁을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연회장을 빠져나와 병사의 옷으로 바꿔 입고 도망쳤던 한규직도 대궐을 거쳐 그곳으로 왔다. 일본공사관으로 심부름 갔던 유재현도 돌아왔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바깥에는 아무런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눈치 빠른 중전 민비가 김옥균을 불러 따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바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왜 이렇게 행궁을 옮기며 소란을 피우는 거요?”
그때 마침 창덕궁 쪽에서 세상을 뒤흔들 듯한 폭발음이 두 차례나 연이어 울렸다. 물실호기(勿失好機)라,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김옥균은 민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한규직을 향해 호되게 꾸짖었다.
“군사를 통솔하는 장수의 소임을 맡고 있는 자가 이처럼 위급한 변란을 당했다면 마땅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주상을 호위해야 하거늘, 당신은 어찌하여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그처럼 불경스러운 복장을 하고 단신으로 와서 주상의 심기를 어지럽히는가? 지금 이 같은 변란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당신은 본디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는 다시 환관 유재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 쥐새끼 같은 무리들이 대세를 알지도 못하면서 국기를 뒤흔드는 변란 중에 아녀자의 짓을 하고 있으니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후로는 말을 많이 하여 인심을 어지럽히는 자는 그대로 참할 것이다.”
이어 그는 윤경완을 불러 자신의 명령대로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사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한규직은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일행이 경우궁 뜰에 이르자 박영효와 함께 일본공사 다케조에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왔다. 그때 비로소 고종과 민비, 비빈들은 안심하고 정전에 자리를 잡아 앉았고, 김옥균과 다케조에는 좌우에 시립했다. 일본 병사들은 대문 안팎을 경호하며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고종의 주위는 개화파 행동대원들이 경호했다. 전영사 소대장 윤경완은 당직 병사들을 거느리고 정전 안팎에 늘어서 있고, 서재필은 사관생도 신중모, 이규완 등 13명을 거느리고 고종 뒤에 시립했다. 이인종, 이창규, 이규정은 수 명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정전 밖에 시립해 있었다. 그처럼 개화파 행동대원들이 정전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때 청국군의 한 부대가 경우궁 근처에 와서 멀찌감치 살펴보다 돌아갔다.
좌영사 이조연이 뒤늦게 경우궁으로 들어왔다. 그는 우정총국 연회장에서 몸을 숨긴 뒤 창덕궁으로 갔다 대가가 경우궁으로 옮겨 갔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왔는데, 오던 길에 홍영식을 만나 같이 들어왔다.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의 주인공인 홍영식은 빈사 상태에 빠져 있는 민영익을 묄렌도르프의 집으로 호송한 뒤 뒤늦게 달려오는 길이었다.경우궁 정문은 특별히 선발된 무관 10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변고를 듣고 달려오는 대신이 있으면 먼저 명함을 들여보내 허락을 받은 자만을 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뒤늦게 도착한 이조연은 한규직, 윤태준, 유재현 등과 모여 뭔가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박영효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지금 나라가 변란을 당해 일본공사는 벌써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호위하고 있거늘, 어찌하여 영사의 중임을 맡고 있는 자들이 군사를 데리고 와서 호위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곳에 모여 수군거리고만 있는가? 도대체 이유가 뭐요?”
“알겠습니다. 곧 밖에 나가 군사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윤태준이 밖으로 나가겠다며 서둘렀다. 박영효가 장사들에게 눈짓해 뒤따르도록 했다.
친청사대파 두목들을 처치하다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켰음을 눈치챈 윤태준은 한 시라도 바삐 청군 장수 원세개(袁世凱)에게 달려가 구원을 청하겠다는 생각에 잰걸음으로 소중문을 빠져 나갔다. 그러나 그곳이 사지임을 누가 알았으리오. 소중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경순이 칼을 휘두르자 윤태준은 그대로 쓰러졌다. 개화파의 처리 대상 1호였던 윤태준은 그렇게 4영사 중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윤태준이 떠나고 나자 이조연과 한규직이 김옥균에게 뭔가 이야기하려 했다. 김옥균 역시 박영효가 했던 대로 빨리 막사로 돌아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호위의 임무를 다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조연이 큰 소리로 주상을 뵙고자 하니 들어가게 해달라고 외치며 정전으로 들어가려 했다. 서재필이 칼을 빼어들고 앞을 가로막았다.
“나에게 이 문을 지키라는 명령이 내려진 이상 어떤 사람도 문 안으로 들어 보낼 수 없소.”
서재필이 칼을 들고 버티고 서 있는 데다 장사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쳐다보자 이조연은 힘없이 돌아섰다. 이조연과 한규직은 막사로 돌아가기로 하고 경우궁 후문으로 향했다.
각 문에는 장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이조연과 한규직 두 영사가 후문을 나서자 지키고 있던 장사들이 달려들어 단칼에 처치했다. 그렇게 해서 개화파의 제거 대상 네 영사 중 세 영사가 일시에 처치되었고, 우영사 민영익은 칼침을 맞아 중태에 빠져 있었다.
한편 김옥균은 어명을 빙자하여 민영목, 민태호, 조영하 등 친청사대파 중신들을 급히 입궁시켰다. 민영목은 사관생도가 전하는 왕명을 받고 입궐하기 위해 경우궁 정문으로 갔다. 사관생도가 그를 후문으로 안내하려 했으나 그는 그 말을 무시하고 앞문으로 들어갔다. 정문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규완과 고영석이 그를 간단히 처치했다.
조영하는 강화회담을 할 때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한 인물로 일본을 잘 이해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조대비의 조카로 왕가의 척신이어서 박영효는 살려 주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사대당이 분명하며 그 역시 제거해야 한다는 김옥균의 주장에 따라 처치되었다. 민씨 일파의 두목이며 친청사대파의 영수격인 민태호는 민영익의 친부인 데다 세자빈의 아버지여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으나, 그도 경우궁으로 들어서자 장사들이 휘두르는 칼에 맥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해서 친청사대파의 두목 6명이 경우궁에서 한꺼번에 처치되었다. 개화파의 제거 대상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로지 민영익 하나였다. 민영익 역시 칼침을 맞아 빈사 상태에 빠져 있어 아직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시체나 다름없는 민영익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정적인 친청사대파 수괴들을 제거했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개화파 내각을 구성하여 개혁정치를 펼치는 것이었다. 고종은 이미 개화파가 마음대로 끌고 다니는 포로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남별영에 주둔하고 있는 원세개 중심의 청국군의 반격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 일만큼은 몇 명 안 되는 혁명군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일본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숫자로 보면 청국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나, 일본군은 훈련이 잘되어 있는 데다 사기가 살아 있어 믿을 만했다. 게다가 한 달 전에 임지로 돌아온 주한일본공사 다케조에가 줄곧 큰소리치고 있어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각국 사신들을 위무하는 것도 게을리 할 수 없는 과제였다. 고종은 각국 공사 내지 영사에게 내시를 보내 위로했다. 먼저 새벽 4시에 미국공사 푸트에게 내시를 보내 위로하고, 얼마 뒤 다시 변수를 보내 미국공사로 하여금 행궁에 와서 같이 변을 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영국과 독일 영사에게도 내시를 보내 똑같이 위무하고 행동을 같이하자고 제의했다. 고종의 외로움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행궁에서 같이 피난하자는 고종의 제의에 대해 미국공사의 통역 윤치호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날씨는 차고 행궁에는 거처할 방도 많지 않은데, 외국 사절의 가족까지 합류하여 법석대면 그 모양이 우습지 않겠느냐는 것이 반대하는 이유였다. 차라리 병사들을 보내 외국 공사관을 보호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영국영사 애스턴이 미국공사 푸트를 찾아가, 경우궁으로 가서 고종과 함께 머물러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상의했다. 논의 끝에 그들은 행궁에 가지 않기로 하고, 윤치호를 보내 그 사실을 통보했다.
윤치호는 고종을 알현하기 위해 해군소위 버나도우(John B. Bernadou)와 함께 경우궁으로 갔다. 미국공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버나도우는 스미소니언박물관을 위해 조선 골동품을 수집하기도 하는 인텔리 청년이었다. 두 사람이 행궁에 도착하자 일본군 병사들이 총을 들고 궁문을 지키고 있었다. 윤치호가 찾아온 뜻을 밝히자 궁문이 열렸다. 임금이 있는 정전으로 들어가자 홍영식을 비롯하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모여 있었다. 병조판서 이재원, 경기감사 심상훈의 얼굴도 보였고, 사관장 서재필과 그밖에 여러 장사들이 칼을 뽑아들고 지키고 있었다. 유재현 등 환관들은 왕을 시립하고 있었다. 관원들은 모두 평복 차림이었다. 한쪽 방에는 다케조에와 시마무라가 앉아 있었다. 윤치호는 왕이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고종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문안 인사를 올리고 바라보니 고종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중전 민비는 시녀의 옷으로 갈아입고 시녀들 틈에 앉아 있었다. 동궁은 탕건과 두루마기 차림으로 시녀들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온 방에 근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치호를 위로하려 했다.
“요즘 날씨도 차가운데 잘 지내고 있으며, 미국 공사도 강녕하더냐?”
“네. 염려해 주신 성의(聖意)에 힘입어 잘 지내고 있사오며, 미국공사 역시 강녕하십니다. 아뢰올 말씀은, 미국공사가 만약 호위병이 있으면 궁으로 찾아와서 알현하겠다고 하는데, 전하의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윤치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공사가 오겠다면 오도록 해야지. 염려하지 말거라. 짐이 즉시 병사를 보내 미국공사와 영국영사를 호위해 오도록 하겠다.”
고종은 반기는 얼굴로 호위 병사를 보내겠다고 쾌히 약속했다.
한편, 홍영식과 김옥균는 버나도우에게 그날의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미국의 호의와 성원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러자 버나도우는 만일 공사의 답이 있으면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미국공사 푸트가 보낸 답변은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오직 내정을 잘 개혁하라”는 것이었다.
아무튼 윤치호와 버나도우는 고종의 배려로 좌영과 우영 병사 20여 명을 거느리고 미국공사관으로 돌아갔다. 보부상도 20여 명 따라갔다. 그 사이 일본공사관에서 보낸 일본 병사 4명이 미국공사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윤치호는 공사에게 건의하여 보부상들을 돌려보내도록 했다. 시끄럽기만 할 뿐 별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민영익은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미국인 의사 알렌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의술이 빼어난 알렌은 깊은 칼자국이 나 있는 상처 부위를 명주실로 일일이 꿰매 지혈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워낙 상처가 깊어 치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민비가 행궁을 옮겨 달라고 계속 주장하다
홍영식과 김옥균 등 정변의 주역들은 한 시라도 바삐 새로운 정령(政令)을 발표하고 실시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자면 먼저 고종에게 아뢰어 재가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각국 공사에게 변수를 보내 정변에 대한 보고를 하고 분위기를 탐지케 한 것도 새로운 정령을 실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개화파의 움직임이 수상쩍음을 눈치 챈 중전 민비가 꾀를 부려 개화파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민비가 내놓은 카드는 창덕궁으로의 이어(移御)였다. 민비는 김옥균 등에게 몇 번이고 사건의 본말을 추궁하며 창덕궁으로 돌아가자고 보챘다. 경우궁이 너무 비좁고 추움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경우궁은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으로 오랫동안 비어 있어 난방에 어려움이 있고 궁도 좁았다. 궁녀와 내시만 해도 수백 명이나 되었으니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민비가 선창하자 궁녀와 내시들이 입을 모아 이어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번뜩이는 창검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떠들어댔다. 영리한 민비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궁녀들 틈에 끼여 그들을 부추겼다. 그처럼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자, 고종을 설득하여 새로운 정령을 발표하려던 개화파의 계획이 자꾸만 지연되었다.
그러나 행궁을 옮겨 달라는 민비의 요구는 개화파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왕의 행궁을 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옮긴 것은 창덕궁이 너무 넓어 청국 군대가 쳐들어올 경우 방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경우궁은 조그만 궁궐이어서 일본군 100여 명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중전 민비는 환궁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그 내막을 꿰뚫고 있어 그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아무튼 민비의 사주를 받은 궁녀와 내시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자 김옥균은 불평분자 가운데 우두머리인 환관 유재현을 처치함으로써 국면 전환을 꾀하기로 했다. 그는 고종을 호위하고 있는 서재필을 불러 환관 유재현을 잡아내 목을 베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곤전마마와 세자궁에서 지체 없이 환궁하자 하시고, 환관배와 궁녀들이 곤전마마의 계교를 받아 떠들어대는 것은 인심을 선동하여 상감마마의 성의(聖意)를 현란케 함이니 그대로 둘 수 없다. 당장 환관 유재현을 잡아다 목을 베도록 하라.”
김옥균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재필은 장사 윤경순, 황용택 등을 지휘하여 환관 유재현을 포박했다. 그리고 정전 대청 앞에 꿇어앉히고 그의 죄목을 낱낱이 고한 뒤 내시와 궁녀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설 소개
우리나라 근대 우정(郵政)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개화파였던 금석 홍영식 선생의 눈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개화의 바람이 몰아치던 19세기 말의 조선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저자 이기열
30년 가까이 월간 《정보와 통신》 (現 《우체국과 사람들》)지 편집장으로 일하며 도약 연대의 정보통신 발전상을 지켜보았다. 1980년대 정보통신 발전 비사인 <소리 없는 혁명>을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