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와 굴렁쇠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행사 가운데 어린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스타디움을 달려 가는 게 있었잖아요? 내가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도랑 테를 굴려야 한다고 했을 겁니다. 굴렁쇠 전의 것이 도랑 테거든요. 또 굴렁쇠는 쇠로 만든 것이고 도랑 테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자연에서 놀잇감을 구했던 우리 어린이들의 놀이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도랑 테고!”
동틀 녘부터 저물녘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들과 산을 누비며 지치도록 놀았던 장난꾸러기가 전래놀이연구가가 되었다. 팽이치기, 연날리기, 썰매 타기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놀이로부터 죽마 타기, 달집 태우기 같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좀 낯설게 들릴 놀이 에이르기까지 무려 100가지의 전래놀이를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바 있는 이철수(59세) 씨. 30년 동안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99년 퇴직과 함께 전래놀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뭘 만드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한번 만들기 시작하면 야무지게 만들어서 주위로부터‘머리카락에 홈 파는 성격’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글 쓰는 것도 즐겼고요. 퇴직을 하고 나서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까 좋아하는 두 가지 일을 자연스럽게 엮어서 일을 하게 된 겁니다.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놀잇감을 만들고 그 만드는 과정을 요즘 아이들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정리했죠.”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에만 들면 만들수록 소년 시절의 맑은 영혼과 따뜻한 추억을 되살리게 되면서 그는 놀잇감을 진화시켰다. 나무를 깎아 썰매를 만들고 팽이를 만들듯 박의 덩굴손, 도토리, 호두껍질, 조롱박, 옥수수 대등 자연의 산물을 이용해 작은 자동차, 연 날리는 인형, 조롱박 가면 등을 만들었고 주위의 어린이들에게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이철수 씨가 나고 자라 교편을 잡았던 어머니 품 같은 땅,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호강가에 자리 잡은 공방에는 전래 놀잇감과 함께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더해진 ‘이철 수표 놀잇감’ 도 가득하다. 수수깡 안경, 바람개비, 대나무 물총 등 옛 장난감들이 즐비하다. 나무를 깎아 만든 고무줄 동력선과 소나무 껍질 돛 배등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웃의 아이들은 방과 후면종종이 곳에 들러 놀잇감 만드는 것을 배우는 특권을 누린다. “전래놀이에는‘우리’가 있어요.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더불어 함께 하면 더욱 즐거운 것이 전래놀이예요. 놀이에 빠지다 보면 ‘너’와‘나’를 넘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돼요. 자연히 사회성도 길러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배우게 됩니다. 또 잘 노는 아이들은‘사람향기’가 나는 어른으로 성장하죠. 예전에는 놀잇감도아이들 이직 접 만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연 필하나 제대로 깎는 아이들이 드물어요. 놀잇감은 거의 다 만들어진 상태로 문방구에서 팔아요. 만드는 즐거움을 돈에 빼앗기 다니…. 예로부터 손재주가 빼어났던 한민족의 후예들이‘손 기능 제로화’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더 큰 ‘우리’가 되어 흥과 신명을 나누었던 우리 민족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전래놀이는 이즈음 그 생명력이 위태롭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주류의 놀이문화가 되었다. 이철수 씨는 오랜 교직생활에서 이런 놀이문화가 아이들을 폐쇄적이며 비사교적이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경쟁시대에 내몰려 즐겁게 놀아보지 못하고 성장한 아이들의 가슴은 척박하게 메마릅니다. 그런 가슴에서 아름다운 감성의 꽃을 피우기는 힘듭니다. 저는 전래놀이에서 희망을 찾았어요. 오늘도 저는 썰매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썰매 하나를 만드는 데도 참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죠. 다음엔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볼 생각으로 신이 났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맑은 동심이 묻어나는 웃음을 짓는 이순의 전래놀이연구가. 그의 꿈 은성 큼 다가와 있다. 그간 노력의 결과물을 모두 모은 ‘전래놀이 체험관’이 고향 땅에서 내년 초 문을 열고 많은 아이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부디 많은 어린이들이 우리 전래놀이의 재미에 푹 빠져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