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춤을 한 30년쯤 추니 옷자락이 움직이는 듯하더구나. 50년쯤 춤을 추니 살이 움직이는 듯했고, 이제 70년쯤 되니 내 뼈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송파산대놀이와 송파 다리밟기의 명맥을 이어온 지 어언 34년, 이즈음 함완식(52세) 씨는 그를 가르친 인간문화재 스승들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들이 사무치게 느껴진다고 한다. 서울 토박이 인함 완식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선배의 소개로 송파산대놀이와 송파 다리밟기를 접했고, 그 신명의 힘에 이끌려 오늘날까지 투신하게 되었다.
“당시 인간문화재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는 정말이지 눈물 쏙 빠지도록 엄하게 배웠습니다. 가르치실 때는 추상같던 선생님들이 개인적으로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어요. 그분들의 뜨거운 예술혼과 세상을 호령하는 호연지기는 또한 제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선생님들은 기교보다 사람됨을 강조하셨습니다. 결국 예술은 사람의 반영입니다. 제가 추는 춤사위는 저를 드러내는 것이죠. 꾸민 춤사위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완식 씨는 서울특별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송파 다리밟기의 전수조교이자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의 인간문화재이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송파 보존회(http://songpasandaenori.or.kr)를 이끌며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있던 송파 다리밟기와 송파산대놀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성과를 이루었으며 더욱 발전적인 전승을 위해 힘쓰고 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자리한 서울놀이마당 등지에서 송파산대놀이는 연 30회 정도 공연을 펼치고 다리밟기 놀이는 대보름날과 추석 전후에 공연한다.
“다리밟기는 고려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나이 때 로다리(橋梁)를 밟으면 그 해에는 다리(脚)에 병이 나지 않고 모든 재앙을 물리칠 뿐 아니라 복도 불러들인다는 기복신앙적 풍속에서 나온 것이죠.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3일 간밤 중에 놀았다고 하는데, 이 날에는 사대문을 닫지 않았던 기록으로 보아 이 놀이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데 어우러져 신명 나게 놀았죠. 한바탕 카타르시스의 장이 펼쳐지는 겁니다. 청계천이 복개될 때 수표교·광통교 등지서 다리밟기 놀이를 했는데, 많은 시민들이 예전의 신명을 찾은 듯 하나 되어 놀았어요. 우리 핏속에 흐르는 신명은 그렇게 되살아났죠.”
송파 다리밟기는 5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밟기를 하기 위해 다리가 놓인 곳으로 갈 때 노는 ‘길놀이’에는 용두기( 頭旗)와 영기( 旗)를앞세우고곤나쟁이, 등롱, 악사, 집사, 별감, 상좌 무동, 양반, 노장, 왜장녀 등이 열을 지어 행진 춤을 춘다. 길군악에 이어 놀아마다에 들어오면 ‘마당놀이’가 이어진다. 굿거리장단, 타령장단, 자진모리장단 순으로 장단이 바뀌며 열대형 춤과 원형 춤이 흥겹게 펼쳐진다. 이어‘다리밟기’가 시작된다. 일 년 동안 다리 무병을 기원하며 나이수대로 다리를 왕복하는데, 다리 중간에 멈춰서 절을 하며 고시래를 하고 보름달에 소원을 빈다. 옛날에는 처녀총각이 다리를 오가며 만남의 순간을 만끽했다고도 한다. 이어‘선소리’ 마당이다. 선소리 패가 마당춤의 절정을 이끌며 상좌 무동, 소무 무동, 집사, 별 감등이 차례로 춤을 추며 물러난다. 마지막으로‘뒤풀이’가 펼쳐진다. 모닥불이 마련된 마당으로 연희꾼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바탕 춤의 바다에 빠져 흥에 젖는다. 이때 타다 남은 횃불과 짚불을 모닥불에 태우고 각자 집안에서 쓰던 낡은 빗자루 나연 등 액풀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들고 나와 태우면서 다리밟기의 끝맺음을 한다.
과거가 없는 사람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고 했던가. 함완식 씨는‘오래된 미래’로서 전통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사명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가 송파 민속보존회의 회원들과 함께 한 달에 한두 차례씩 복지시설, 경로당, 학교 등에서 공연봉사를 펼치는 까닭이다. 전통놀이 공연의 소외지역에는‘찾아가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또한 보건학 박사로서 한국산업안전공단산업안전교육원에 근무하는 그는 강의를 통해 산업 일선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허리 강화 운동으로 산대놀이를 전파하고 있다.
“전통예술은 미래의 거울입니다. 해마다 시간을 내어 세계의 문화 강국을 찾아 그 저력을 찾아보고 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전통예술에 대한 그들의 깊은 애정과 복원에 기울이는 노력이었어요. 전통예술은 박제된 표본이 아니라 민중들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이어야 합니다.”
생활 속의 전통놀이를 뿌리내리기 위해 함완식 씨는 2007년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고 있다. 송파 민속보존회의 회원들과 함께 각근로사업장을 돌며 전통놀이와 함께 하는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을펼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