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3일 강릉지역엔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이날 아침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추운 날씨에도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떠오르고 주문진우체국 이완수 집배원의 하루도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아침 8시 우편물 구분 작업이 끝난 후 동료 집배원 몫까지 도와주는 그는 주문진우체국의 맏형님이다. 이륜차에
우편물을 싣고 부연마을까지 가려면 장거리 주행이 필요하다. 주문진우체국에서 진고개 쪽으로 향하는 6번 국도에서 강릉시 연곡면 부연마을 입구까지는 20km, 이륜차로 1시간 거리다. 오전 11시 부연마을 입구다.
부연마을은 첩첩산중 천연의 요새같이 숨은 마을이다. 맑은 물에 가마솥처럼 생긴 넓은 소가 많아서 가마소마을이라 불렸다. 여기서부터 6km 정도에 걸쳐있는 전후재를 통과해야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후재는 앞뒤 거리가 같다는 뜻에서 유래한 명칭인데 입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가파르다. 이 재는 가파른데다가 구불구불한 급경사로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집배원 경력 30년의 이완수 집배원도 긴장하는 눈치다.
전후재 오르는 길에 그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1984년 10월 연곡우체국 근무 시절에는 이곳을 걸어서 넘었다고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전보’가 오는 날이면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배달하던 시절도 있었다. 겨울 산속 마을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어느 겨울날에는 배달 도중 폭설로 마을에 고립되기도 했다.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 이륜차로 배달할 수 있게 된 걸 웃으면서 얘기한다.
부연마을 사람들은 6·25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한다. 70~80년대 무장공비가 자주 출몰하던 시절 사람이 못 살 곳이라며 떠나간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무장공비 덕분에 군인들이 길을 닦게 되었으니
세상만사 새옹지마다.
한겨울 산속 마을은 고요했다. 이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울에 집을 비웠다가 봄이 되면 약초농사와 산촌체험마을 운영을 위해 돌아온다고 했다. 북적대던 마을은 겨울이 되면 사람 발길이 뚝 끊어진다. 처음 도착한 집에 문을 두드렸지만 문이 잠겨있다. 그는 집이 많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문을 꼭 두드려본다. 배달 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마을을 지키는 적송은 제왕솔이다. 제왕솔은 수령 500년 이상 된 마을의 수호목이자 국내 최대의 금강송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고 하여 호랑이 솔이라고도 불렸다. 마을의
수호목은 제왕솔이고 부연마을 지킴이는 이완수 집배원이다. 그는 우편물을 배달하기 전 반드시 문을 두드린다. 이 겨울 오지마을 주민들에게는 안녕의 두드림이다.
도회지에 사는 자녀들이 시골집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는 집배원의 보살핌 아래 전달된다. 시골마을로 편지를 보내면 부모님의 안부도 확인해 줄 수 있다.
한겨울 가마소 계곡은 두꺼운 얼음 속에 그 모습을 감췄다. KBS TV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널리 알려진 부연분교는 현재 산촌마을 체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눈 덮인 부연분교를 바라보며 이완수 집배원이 말했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버렸는지 모르겠네요. 지난 시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아쉬움 속에 남겨두었다.”고. 그는 세 살 된 손자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배달을 마치고 그는 다시 주문진우체국으로 향했다. 곧바로 퇴근해도 되지만 아직 배달 중인 동료 집배원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배달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는 건 마을 주민들이 모두 안녕하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