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토끼해가 밝았다. 십이지지(十二地支) 순서에 따르면 호랑이 뒤에 토끼인데 설화에서는 양상이 좀 다르다. ‘호랑이 위에 토끼’다. 설화는 흔히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된다. 긴 곰방대를 물고 있는 호랑이. 그 곰방대 위에 누군가 올라 있으니, 바로 토끼다. 민화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글.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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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의 호랑이와 토끼
그림 속의 토끼는 호랑이를 구슬려서 조종하는 중이다. 현실에서 토끼는 절대적 약자지만, 이야기에서는 다르다. 토끼는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 대신 남다른 꾀와 언변이 있다. 지략을 이용해서 자기를 공격하는 호랑이를 보기 좋게 물리친다. “나를 먹어봐야 간에 기별도 안 갈 텐데! 맛있는 거 실컷 먹게 해드릴게요.” 이렇게 호랑이를 구슬려서 강물에 꼬리를 집어넣게 하거나 대숲에서 눈을 감고 입을 벌리게 한다. 그러면 물고기 또는 새들을 많이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토끼를 의심하다가 달변에 넘어간 호랑이는 밑져야 본전이라면서 그 말을 따른다. 그 결과는 밤 추위에 강물이 얼어붙어 꼼짝 못 하고 덜덜 떠는 일이며, 대숲에서 옮겨붙은 불길에 몸이 온통 타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호랑이는 토끼의 ‘밥’이 된다.
민중적 지혜의 표상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물리적 힘보다 강력한 것이 정신적 힘이다. 약자라고 함부로 얕보다가는 큰코다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약자라고 해서 지레 주눅들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는 숨은 지혜와 기개가 있다. 이를 보란 듯이 발휘해서 길을 찾아 나갈 일이다. 설화 속 토끼 이야기는 세상의 약자에게 보내는 힘찬 격려이자 응원이라 할 수 있다. 토끼의 지혜는 세상의 법도를 공정하게 세우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토끼의 재판>이 이를 잘 보여준다.한 스님이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건져주자 호랑이는적반하장으로 스님을 잡아먹으려 한다. 이 사안의 판정을 맡은 토끼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며 호랑이를 원래대로 함정에 들게 한다. 그리고는 호랑이를 놔둔 채 스님과 함께 사라진다. 은혜를 모르고 제야욕을 채우려는 강자에 대한 응분의 조처였다. 나는이 이야기 속 토끼의 모습에서 역리(逆理)를 물리치고 순리를 세우는 민중의 힘을 본다. 계묘년 토끼해는 모든 역리가 사라지고 공정한 법도가 오롯이 서는아름다운 한 해가 되기를!
달 토끼와 우정 서비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저절로 흥얼거림이 나오는, ‘국민동요’의 한 소절이다.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 모습 또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예전부터 달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내가 여기에서 달을 보고 네가 거기에서 달을 보면 서로의 시선이 닿고 마음이 이어진다. 내가 달 토끼가 되어 방아를 찧고, 네가 또한 방아를 찧으면 우리는 함께다. 늘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우정 서비스가 오래도록 이러한 구실을 해온 터다.우체국이 마치 달과 같다는 뜻이다.
우체국은 2023년 계묘년을 맞이해서 연하 우표를 발행했다. 계묘년은 내가 태어난 특별한 해! 토끼가 들어 있는 우표를 구입해서 오랜만에 손편지를 써봐야겠다. 추억 속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잊고 있었던 고마운 이들에게. 우정 서비스가 가로지르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시간을 넘어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시켜 준다. 우체국,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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