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1월 초 어느 날, 인터뷰 날짜를 잡고 보니 그의 생일 하루 전이었다. 그가 라디오 DJ를 하고 있는 EBS의 서울 우면동 사옥에서, 사인을 받기 위해 준비한 그의 음반 2장과 작은 케이크를 들고서 그를 만났다. 마냥 어려 보이기만 했는데 어느덧 만 서른 살이 코앞. 하지만 풋사과처럼 예의 수줍은 그 미소는 어디 가지 않았다.
“어? 내 음반이다. 센스있으시네요. 하하.” 어느새 데뷔 3년 차이건만 생일 축하 케이크보다는 자신의 음반을 발견한 뒤 더 달떠 하는 모습은 영락 없이 풋풋한 신인가수다.
케이블 TV의 역사를 새로 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의 시즌 3에서 4위에 오르며 세상에 등장한지도 벌써 3년. 그 사이 홍대광은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는 가수이자 라디오 DJ로 자신만의 길을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다져오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매년 마다 큰 틀의 목표가 하나씩 생기게 되더라고요. 제 작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라는 타이틀에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다면, 지난해에는 이제 가수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가수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한 한 해였다고 봐요. 그래서 댄스도… 하하하. 여러 가지 도전하고 공부하는 그런 한 해였어요.”
솔직히 ‘슈스케’ 같은 종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도전자들의 분투를 보고 있자면 루쉰이 <고향>에서 한 말이 떠오르곤 한다. “희망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젊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다. 꿈을 향한 그들의 무모한 도전은 수많은 이들의 같은 도전과 응원 속에 현실이 되어간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간접적이나마 쾌감을 만끽한다. 잔인한 현실은,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엔 꿈을 이룬 것으로 보였던 수많은 입상자들이 방송이 끝남과 동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줌’의 도전자들이 방송 후에도 살아남는 성공을 이룬다. 그렇게 볼 때 홍대광은 운이 좋은 편이다. 방송 중에 이미 팬덤까지 형성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던 만큼 그 후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열며 라디오 DJ까지 거머쥔 그는 정말이지 대단한 행운아다. 특히 지난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ost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팬덤은 여전히 공고하다.
무엇보다 지난 연말 개최한 콘서트에서 팬들이 마련해준 이벤트는 두고두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작은 쪽지에 저마다 메시지를 적어서 그 종이를 큰 나무에 걸어놨어요. 그걸 다 걷어가지고 집에 가서 전부 읽었어요. 그 때 좀 새로웠던 게 그간 적극적으로 편지를 보내준 팬들에 비해 그날 쪽지들엔 솔직 담백한 ‘돌직구’ 멘트들이 많았다는 거에요(웃음).”
‘가보로 간직해야겠다’고 말하니, ‘사실 가보로 삼을 게 너무나 많다’고 한다. 손으로 직접 그린 그의 그림을 판화로 제작해 준 팬, 슈스케 시절부터 현재까지 홍대광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이를 시간대별로 나열해 시간과 장소, 에피소드까지 메모한 앨범을 만들어서 선물한 팬도 있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고, 이런 내 모습이 낯설다’고 고백하지만, 홍대광은 이제 제법 신인티를 벗고 가수와 연예인의 삶에 적응해가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하고는 눈도 못 마주쳤을 만큼 수줍음 많았고, 정말 친한 친구들이 아니면 그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면 엄청난 반전이다. 홍대광은 이런 사실이 여전히 얼떨떨하다.
“사실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 8년 정도 있었어요.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던 시절에도 솔직히 지금 같은 가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꿈이 가수라기보다는 어떻게든 노래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많은 고민이 뒤따른 끝에 내가 잘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이 노래라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일’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특히 홍대 앞 버스킹 시절의 한 에피소드는 아직 어린 소년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당시에 친구들을 포함해 부모님을 빼고는 친척 어른들, 이모들 모두 다 오셔서 공연을 보고 가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오셨어요.” 잠시 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아 이런말 해도 되나…’ 혼잣말을 한다.
얄궂게 그날따라 관객은 유난히 많았고 뜨거운 호응에 평소보다 노래도 잘 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싸늘했다. ‘거리에서 구걸이나 할거면 기술이나 배워라’
홍대광은 어머니를 이해한다.
“아버지도 음악을 했거든요. 그런 남편을 평생 보고 살아 온 어머니는 아들마저 그 길을 걷겠다고 나서는 현실이 얼마나 힘겨우셨겠어요. 다행히 지금은 평생 노래하라고 응원해주세요.”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
홍대광의 2015년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다. 지난 2년, 홍대광은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열면서 가수로 자리를 잡는데 집중해 왔다. 올해는 그 다져 놓은 땅을 공고히 하고 싶다. “라디오와 음악에 집중하려고요. 라디오 DJ 일이 정말 즐거워요. 특히 시간대가 오후 4시에서 6시이다 보니 방송을 마치고 나면 뭔가 하루 일과를 보람차게 끝냈다는 성취감이 들어요.” 특유의 선한 미소를 날리며 들려주는 그만의 낙천적인 소감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적잖은 인생공부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정작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주제가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일과 사랑, 성공… 저 역시 저를 돌아보게 되니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세속적인 성공의 잣대, 누군가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어린 친구들이 ‘무엇을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잘 살수 있을까?’ 물어보면 그는 이제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하고 싶은 것 해!”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는 속담처럼, 남몰래 간직하던 꿈을 세상 앞에 펼쳐 보였던 슈스케의 도전과 성공으로 홍대광은 큰 산 하나를 넘으며 가수의 꿈을 이뤘다. 여전히 처음 만난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기 힘들만큼 수줍은 성격, 아직 성공이라는 말을 꺼내기엔 이른 나이. 하지만 홍대광은 특유의 진득한 고집으로 자신만의 길을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조용히 그만의 박자와 스텝을 밟으며.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행운아니까. 이제 서른 살의 청년 홍대광은 잘 하는 일, 즐거운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인생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