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세통째의 이력서
매서운 바람이 일고 있었다. 창유리는 쉼없이니 덜커덩댔고 가로수는 거대한 악마의 손처럼 무수한 회초리를 들고 허공을 난타하고 있었다.
강정길은 벌써 30분도 넘게 난로불기조차 미치지 않는 다방 창가의 한적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차탁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유리 재털이에는 꽁초가 가득했다.
그가 창가에 자리를 잡은 것은 이미 난로 가까운 곳이 거의 다 차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춥더라도 조용한 곳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리를 잡기가 바쁘게 바지 뒷주머니에 찔려있던 신문을 뽑아 우선 광고판부터 샅샅이 살폈다. 오늘 제출할 열세통째의 이력서가 묵살 될 경우 다시 이력서를 낼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병역을 필한 건장한 대졸 실업자를 구제 하겠다는 곳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실망은 고목의 수피처럼 한층 더 두텁고 견고해졌다.
그는 기사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1967년 1월 27일, 그 날의 석간 1면의 머릿기사는 야당 통합을 위한 제1차 4자회담이 열렸으며 대통령 후보에 윤보선, 당수에는 유진오로 결정되었다는 것 이었으나 그 머릿기사조차도 그의 실망을 희석시키지 못했다.
그는 펼쳐 들었던 신문을 차곡차곡 접어 차탁자 한 쪽에 밀어 놓았다. 그리고는 양복 저고리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이력서 봉투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제발 너만은 잡아 먹히지 말거라. 이력서 전문 두꺼비한테 벌써 열두놈이나 잡아 먹혔으니 제발 너만은 ··· ’
그는 훅, 트럼펫 주자처럼 봉투 아가리를 입에 대고 센 입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는 배가 잔뜩 불러진 봉투 속에서 꺼낸 이력서를 꼼꼼한 교정원처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입대 날짜인 1964년 7월 18일과 제대 날짜인 1967년 1월 24일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는 31개월 동안 병영에 갇혀 있다가 28세에 풀려난 것이었다.
“군대 3년 동안에 상전이 벽해가 된 거야.”
강정길은 누구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듯 소리내어 말했다. 그는 서울 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의 서울 인구는 250만이 채 못되었으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두 배가 된 것이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1962년에도 서울의 인구는 기껏해야 270만에 불과했으나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었다. 그때, 졸업도 하기 전에 모두들 취직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강정길은 휴전 직후 어떤 사진작가의 렌즈에 포착된 암울한 사진 한 장을 늘 머릿속에 넣고 지냈었다. ‘求職’이라는 큼직한 표찰을 가슴에 붙인, 벙거지를 눌러 쓴 고개가 푹 꺾여져 있는 젊은이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이 생각날 때마다 늘 암담하고 불안했었지만 군대만 갔다오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은 있었다. 그야말로 ‘상전이 벽해가 돼도 비켜 설 곳은 있다’는 속담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대한 지금, 그는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제대복장으로 부대를 떠날 때의 그 걸음걸이가 얼마나 가벼웠었던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씁쓸할 따름이었다.
그는 그 날, 부대 정문의 경비병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선망의 눈으로 제대병 일행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축하한다고 외치던 소리도 아직 귀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일행 중 누군가 이상한 답례를 했었다.
“어이, 김일병! 내가 너라면 콱 자살해 버릴 거다! ”
모두들 그 말끝에 비슷비슷한 야유를 보내며 경비병의 야코를 죽였다. 그러면서 날아오르는 새떼처럼 서둘러 정문을 빠져나왔다.
물론 강정길의 마음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 날의 기억들은 계속해 펼쳐졌다.
행정반에서 전역신고를 마치고 나오는데 작전관 이중위가 뒤따라 나오며 그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강병장, 진심으로 축하하네.”
강정길이 의례적인 답변으로 감사하다고 말한 뒤 걸음을 옮기려 하자 작전관은 마치 강력한 자력에 이끌린 쇠토막 꼴로 그에게 달라붙으며 말을 이었다.
“요전번 그 일은 잊어버리라구. 잘 가게.”
작전관이 불쑥 손을 내밀었으므로 그는 어정쩡 한 상태로 악수에 응했다. 그러나 그는 작전관에게 잡힌 자신의 손에게 화를 냈다. ‘요전번의 그 일’을 잊어버리겠다고 협상을 한 꼴이 됐기 때문 이었다. 악수란 원래 친밀이라든지 협상 따위가 밑바닥에 깔린 쌍방의 신체적 접촉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작전관과 친밀해지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협상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치 ‘요 전번의 그 일’이 그에게 준 상처가 심했던 것이다.
‘요전번의 그 일’은 1월 1일에 일어났다. 그 날, 그는 작전관의 전화를 받고 비오큐로 달려갔다. 세명의 다른 행정반 장교들과 화투를 치고 있던 작전관이 그를 부른 것은 닭을 잡으라는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벗어 놓은 워카들 옆에 과연 토종닭 한 마리가 묶여져 있었다. 아무리 계급사회라지만 제대 날짜가 1주일밖에 남지 않은 고참병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는 것에 가리사니가 서질 않았다. 더구나 다른 날도 아닌,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살생을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전 닭을 잡아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 잘됐군. 한번 잡아봐. 강병장 솜씨로 닭도리탕 한번 먹어보자구.”
“닭 잡을 줄 아는 다른 사병을 보내겠습니다.”
“거 짜식 되게 말이 많네! 임마! 좆으로 밤송일 까라면 까는 게 군대라는 걸 몰라? '
“못하겠습니다.”
“못하겠다구? '
작전관이 부채처럼 펼쳐 든 화투장들을 집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부동자세를 취하게 한 후 따귀를 쳐댔다.
사실 그때 그렇게 구타까지 당하며 끝내 살생을 않은 까닭은, 마지막 휴가 때 써 맡기고 온 이력서들이 몇몇 출판사와 잡지사에 제출되어 있던 상태이고 한 곳으로부터는 취직이 가능할 것 같다는 서신 연락까지 받고 있었으므로 그 날의 살생으로 받을지도 모를 어떤 웅보를 염려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타까지 당하며 살생을 않은데 대한 응보는 여태까지 나타날 기미조차 없었다.
강정길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과거를 날려보내며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선배로부터 소개받아 만나려는 종합교양지 「o」誌의 주간이 귀사하기로 돼 있다는 시간이 되려면 아직도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 커피를 한 잔 더 시켰다. 근 한 시간이나 죽치고 앉아 있었으며 앞으로도 20분이나 더 앉아 있어야 하니 그 정도의 자리 값은 해야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방 아가씨는 강정길의 그런 속마음을 꿰뚫었는지 조그마한 입으로 새처럼 빠르게 지껄여댔다.
“추운 자리에 오래 계셨는데 빈 자리가 나야 옮겨 드리죠. 바깥 날씨는 춥지, 누구 한사람 자리를 뜰 생각도 않네요. 누굴 기다리시는데 이렇게 담밸 많이 피우셨어요? 애인인가요?'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가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이 오는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시간이 가는 걸 기다린다는 얘깁니다.”
“어머, 말씀도 재미있으셔라! ”
얼마 뒤 깨끗하게 비운 재떨이와 커피를 가져 온 아가씨가 그의 앞자리에 앉으며 다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좀 앉아도 되겠어요? 시간 가기를 기다리시기 지루하실 텐데 말동무나 해드릴까 해서요. 군인, 장교시죠? 소위는 아닌 것 같구, 중위?'
그녀는 강정길의 짧은 머리칼에 한번 더 눈을 주고 나서 말했다.
“일주일 전까진 병장이었습니다.”
“어머, 거짓부렁! 병장이라면 왜 그렇게 나이가 많아요? 차 사달랄까봐 그러세요?'
“쫄병으로 제대를 했어도 아가씨한테 차 한잔 살 돈은 있으니까 아무거나 한 잔 드십쇼. 그렇지만 나이가 많다는 말은 서운합니다.”
“어머머, 서운해 하실 얘기가 아닌데 그러시네. 미쓰리! 여기! ”
아가씨는 마치 손님인 양 동료 아가씨를 호기 있게 불러 오른쪽 볼을 혀로 동그랗게 부풀려 보이고 왼손 검지를 세워 보였다.
“그렇게 주문하면 뭐가 나옵니까? '
“우리끼리 통하는 싸인이에요.”
그녀는 다시 한 번 아까처럼 오른쪽 볼을 동그랗게 부풀렸다간 풀고 말을 이었다.
“어때요? 계란반숙처럼 동그랗잖아요? '
강정길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해 보이며 소리없이 웃었다. 군대생활 3년 동안에 듣고 보고 겪지 못했던 여러가지가 깜짝깜짝 놀라게 했는데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때는 ‘그래 그런 말이 있었지’ 하고 놀라게도 되고 ‘아 그 동안에 이런 말이 새로 생겼구나’ 싶어 놀랄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3년 동안 슨 머리의 녹을 어떻게 벗기나’ 싶어 은근히 두려워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로빈손 크루소를 생각했다. 남태평양의 한 무인도에서 28년 2개월 19일을 살다 온 뒤 그 사회생활의 공백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세요?'
“로빈손 크루소”
“왜 하필 그런 불행한 사람 얘길 생각하시죠? 하긴 저도 가끔 그 소설 생각을 하곤 해요.'
“왜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람이 불쑥 나타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실례지만 결혼은 하셨나요?'
강정길은 말없이 고개만 저어 보였다.
“여자깨나 울렸겠어요 그렇죠?'
“무슨 소립니까?'
“아랑드롱 닮았단 소리 많이 듣죠? 내 애인하고 많이 닮았거든요.”
“아가씨 애인이 아랑드롱이란 얘깁니까?'
“어머머, 아까부터 말씀 정말 재밌게 하시드라. 내 얘긴요, 내 애인도 아랑드롱처럼 생겼단 얘기예요. 내 애인이랑 댁하고 같이 있으면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형제간으로 알 꺼예요. 눈이랑..'
강정길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렇다니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이제 이 세상 사람 아녜요.”
“네?'
“월남에서 전사했걸랑요. 바보 같은 · · ”
그녀가 격해지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함인지 말 끝을 잘랐다. 어투로 보아 그 잘린 말이 ‘놈’이 나 ‘새끼’나 ‘자식’ 중에 어느 하나일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이 축축해졌다. 강정길은 그러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민망하여 창밖으로 눈길을 옮겼다.
어느 샌가 바람은 갔으나 역시 꾸무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눈올 것 같죠!”
“그렇군요.”
“술을 사드릴 수도 있는데… 여자라는 것이 이럴 땐 참 불편해요. 여자 혼자 술집에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술집에 동행해 주실 수 없으세요? 무사하게 군대를 마치고 제대하신 걸 죽하도 해 드리고 싶고…”
“고맙습니다만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확답을 할 수가 없군요.'
“시간이 가기만 기다린다면서요?'
“정해진 시간에 볼 일을 봐야 하니까 그때가 되도록 시간가는 걸 기다린 겁니다. 이제 그 시간이 됐습니다.”
강정길은 손목시계를 보고 나서 퉁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도 따라서 일어났다.
강정길은 수업을 마친 교사가 분필가루를 털 듯이 손등으로 가볍게 옷을 털고는 카운터로 가 계산을 한 뒤 출입문을 밀었다. 열세통째 쓴 이력서를 내기 위해서.
[2]瑞雪
종합교양지「O」지의 주간실에서 강정길은 약식으로 입사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2백자 원고지 10매 분량으로 ‘자기 소개서’를 쓰는 시험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60분, 장소는 주간실의 웅접 소파였다. 그는 제 시간에 20매짜리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그 글 속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들어 있었다.
…… 1962년, 나는 코스모스 졸업(9월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등록금사건 때문이었다. 몰려 다니던 친구들이 다 졸업을 한 뒤 낙오병처럼 외톨이가 되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지만 나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취직이라는 것을 했다. 학점을 따야 할 과목이 모두 세과목뿐인데다 졸업학기일 경우, 취업증명서를 제출하면 출석은 눈감아 주는 게 통례였다. 그만치 취업의 문이 좁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수강신청을 해놓고 고향으로 내려가 지방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전에「ㅊ신보」라는 제호로 발행됐던 2면짜리 신문이었는데 자유당 말기에 李大統領의 ‘大’자가 개라는 뜻의 ‘犬’자로 오식되는 바람에 폐간되었다가 5 · 16 후 지방 유지들의 진정으로 복간케 되었으며 4면으로 증면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입사하여 문화 면을 창설하고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지방지인 데다 문화면이라는 취약성 때문에 광고를 게재하려는 업체들이 없어 매일 연재소설이 맨 밑바닥에 깔려야 했다. 그러니 그 광장 같은 지면을 문화면의 기사원이 뻔한 곳에서 무엇을 취재해다 채운단 말인가. 그것도 나 혼자서 취재해다 기사를 쓰고, 판을 내리고, 교정까지 봐야만 하니 혹 사도 그런 혹사가 없었다. 더구나 월급이 책정은 돼 있었으나 한번도 제대로 타본 적이 없었다.
찔끔찔끔 푼돈을 가불해 쓰고 친구들에게 꿔 쓰고 하는 판이었다. 그런데에서 그 엄청난 양의 일을 1년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용케도 견뎌냈다 싶을 지경이다. 결국은 손을 털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받은 퇴직금(실은 밀린 월급이지만)으로 신문사 옆 칼국수집에서 점심 먹고 막걸리 마신 외상값을 갚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불과 몇 푼에 지나지 않았다. …… 나는 그 겨울에 서울로 왔다.
서울은 춥고 그리고 사람들은 냉정했다. 학생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추위요 냉정이었다. …… 취직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동가식서가숙으로 그날그날을 지내던 중 하루는 신문 광고에서 대중오락지 편집기자 모집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으나 보기 좋게 미끌어지고 말았다. 병역을 필한 쟁쟁한 일꾼들이 줄을 섰다면 안양까지 이어질 정도로 이력서가 쌓였는데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애숭이 시인인 나를 쓸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군에 입대하지 못한 것은 그 「ㅊ일보」에서 계속 부려먹기 위해 병무청 출입기지를 시켜 자꾸만 연기시켰던 때문이었다.
어쨌든 서울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영장이 나올 때만을 기다릴까 하고 있는데 참으로 우연하고도 다행하게도 「ㅅ」잡지사에 임시직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고향 선배의 소개로 일하게 된 그곳에서 나는 레이아웃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일에 재미를 붙일 만하게 되니까 일이 터지고 말았다. 1964년 여름, 결국 영장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나는 뒤늦게 입대하여 삼복을 끼고 전 · 후반기 훈련을 다 받았으며 훈련복이 터져 배치되어 간 전방 예비사단에서까지 신병교육이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자기 소개서’를 읽어 나가던 주간은 소리내어 웃으며 힐끗 강정길을 바라보고 나서 계속해 읽어 나갔다. 그가 그런 웃음을 터뜨린 것은 ‘大’ 자를 ‘犬’자로 오식하여 신문이 폐간되었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강정길은 강정길대로 주간이 웃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20매짜리 원고를 읽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만은 결과가 초조한 강정길에겐 그야말로 일각여삼추였다. 아니, 주간이 다 읽은 원고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응접소파에 와 앉기까지의 그 몇초가 강정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여삼추였다.
이윽고 주간의 입이 열렸다.
“좋소. 문장력도 있고 철자법도 정확하고… 그런데…”
주간은 담배를 꺼내며 다시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뽑아 물고 나서 강정길에게도 권했다.
“왜, 담밸 안하시오?'
주간이 사양하는 강정길에게 물었다.
“피우긴 합니다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 · ”
“괜찮소.”
주간이 다시 담배를 권했다.
“아닙니다. 이따가 나가서 피우겠습니다.”
주간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담배갑을 응접탁자 위에 놓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로서는 강정길씨를 채용하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결정권은 사장님에게 있으니…”
강정길은 바짝 졸아들었던 심장이 일시에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장의 결재만 남았다는 얘기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지 채용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정길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허리를 직각으로 꺾어 인사를 했다.
“아니, 아직 그런 인사를 받기엔 이르오.”
주간은 벽시계를 흘끔 보고 나서 얘기를 이었다.
“사장님이 들어오셔야 되는데… 곧 오실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 어쨌든 좀 기다려야 될 것 같소.”
“그럼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이층에 다방이 있던데 거기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시오. 그게 좋겠소.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장님이 들어오시는 대로 연락을 하겠소.”
주간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리밟는 강정길의 가슴은 계속 콩닥콩닥 뛰었다. 드디어 실업자 신세를 면하게 되는구나 싶어 여간 흥분되는 게 아니었다.
3층 층계참 유리창으로 눈발이 희끗희끗 서고 있는 게 보였다.
“서설이다. 서설!”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실은 고함을 질러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2층으로 내려온 그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으로 도안된 다방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아직도 아까 그 손님들은 난로가에 죽치고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을 즐기고 있었고, 강정길에게 반숙을 얻어 먹은 아가씨는 출입문을 등지고 서서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었다. 강정길이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그녀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고는 눈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가 먼젓번 자리에 가 앉자 통화를 끝낸 아가씨가 와 아까처럼 마주 앉았다.
그녀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일은 다 끝나셨나요?'
“아직 좀 남았습니다.”
“그럼 또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러 오셨군요?'
“아니, 이번엔 소식을 기다리기 위해 왔습니다. 커피 한 잔 주십쇼.”
“또요? 그렇게 커필 많이 마셔도 괜찮아요? 벌써 우리 다방에서만 세 잔째잖아요. 자리값으로 드시는 거면 안드셔도 돼요”
“목도 마르고…”
“아까 그거 기대해도 되나요?'
“그거라니?'
“술집에 동행해 주는 거 말예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첨 뵙는데 그런 부탁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아참, 저 미쓰 윤이에요”
“욕은 왜 합니까. 미쓰 윤 같은 미인과 함께라면 외려 내가 기쁘죠.”
강정길의 입에서 나온 ‘미인’이라는 말은 공연 한 말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얼굴값 하느라고 이런 데에 나와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기대해도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아니, 아직 그런 인사받기엔 이릅니다.”
강정길은 아까 주간이 했던 말을 자신도 모르게 흉내낸 것을 깨닫고 실소했다.
“왜 웃으세요?'
“미인에게 술을 얻어 먹게 될 것 같아 기뻐서 그럽니다. 실은 눈도 오고 해서 나도 술 한 잔 하고 싶었습니다.”
강정길은 미스 윤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한 40분쯤 그렇게 앉아 있자니 미스 윤이 송수화기를 아령처럼 들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강정길씨 계세요? '
그의 이름을 모르는 그녀는 난로가에 모여 앉은 손님 쪽만 둘러보고 있었다.
“나요, 나! ”
강정길은 그녀가 서둘러 전화를 끊을까봐 걱정 되어 다급하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잰걸음질로 다가서자 미스 윤이 송수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는 나직하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한솥밥을 먹는 시어머니 성도 모른다더니만 · · · 알고 보니 잡지사에 볼일이 있어 왔군요”
강정길은 소리없는 웃음으로 미스 윤을 따라 웃으며 그녀가 건네주는 송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잠시 기다리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끊긴 뒤 얼 마쯤 지난 뒤 주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의 결재가 났으니 올라와서 인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내려 놓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미스 윤이 물었다.
“기다리던 소식인가요?'
강정길은 고개만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겠죠?'
“물론입니다.”
“다녀오세요.”
미스 윤의 인사가 귓등에 와 닿았다.
「o」 잡지사로 올라간 그는 사장을 비롯하여 편집부장 그리고 앞으로 동료가 될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친 강정길은 다시 주간실로 들어가 여러가지 얘기를 들었다. 이제 한 식구가 됐으니 성실하게 근무해 달라는 주문을 비롯해 신입사원이 알고 있어야 할 자질구레한 사항들에 이르기까지.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일요일까지 푹 쉬고 월요일부터 출근하시오. 그럴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정길은 다시 한번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그가 잡지사에서 나와 시간을 보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는 올라올 때와는 달리 아주 천천히 계단을 내리밟았다.
이미 밖은 어둠에 싸여 숱한 네온들의 명멸을 한층 더 화려하게 했다.
그는 3층 층계참의 유리창 앞에 멈춰 서서 담배를 뽑아 물었다.
그는 취업의 기쁨을 안겨 준 선배의 얼굴을 떠 올렸다.
한달음에 달려가 감사의 뜻을 전해야 옳지만 선배는 지금 서울에 있지 않았다.
'선배님. 덕분에 실업자 신세를 면하게 됐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즉시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강정길은 2층으로 내려와 커피잔의 도안이 올라 있는 다방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계속>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한 해로만 따져도 서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참변들이 곳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깨지고 무너지는 굉음들은 삐걱거리는 소리의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엉성하게 세운 목조 건물 처럼 이곳 저곳에서 계속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며, 그 소리들은 또 언제 어디서 깨지고 무너지는 굉음들로 발전하게 될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196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이미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으며, 그 소리와 맞서 살면서 건전한 사회를 지키기 위한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해온 주인공 강정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떤 위로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위로와 신뢰는 구원의 빛을 얻을 수 있는 기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이 시대의 삶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이 작가들의 막중한 책무라고 생각하며 이 소설은 씌어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기탄없는 질정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김문수
· 1939년 중북 정주 줄생.
·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異端復興」이 당선되어 등단.
·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 학상, 조연현문학상, 한국문 학작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
·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 한양여자전문대 문예창 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