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작고 예쁜 자전거 한 대가 도착했다. 얼마 전 TV 드라마 속에서 작은 오솔길을 멋진 연인과 함께 흑단 같은 긴 머리를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예쁜 소녀를 보고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내 자신이 그렇게 무능해 보일 수가 없어서, 남편을 졸라 자전거를 사 배우기로 했다.
나의 급한 성격은 자전거를 배우는 일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으니, 이튿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당장 그 밤중에 집 근처 운동장으로 향했다. 자전거에 오르는 연습부터가 두려움의 시작이더니, 페달에 한발 올라서 엉덩이를 안장에 대면 벌써 다른 발이 땅을 향해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모습 때문에 또 얼마나 창피하던지. 마침 그곳은 동네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러 오는 장소이기에 구경꾼이 많았다. '적당히 나이 든 여자가 작은 자전거에 올랐다 내렸다 하며 끙끙대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하니 얼굴도 달아오르고, 두려움과 창피함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애 아빠와 아이는 배꼽을 잡고 웃다가, 또 더딘 운동신경을 놀렸다가, 진짜 바보 아니냐는 말도 서슴없이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자전거에 올랐다 떨어 졌다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전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정도가 커진다는 것이었다.
착잡한 시간들이 흐르고 밤하늘은 깊어 져서 더욱 빛을 발하는 별들이 눈에 들어 왔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라니! 그 순간, 자전거를 배우는 일은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 나갔다. 여기서 그만두면 나이가 들수록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다시 페달을 밟고, 이제 자전거를 타려는 노력보다는 자전거와 함께 잘 쓰러지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자전거에 앉아 있게 되고, 자전거 바퀴의 움직임을 길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돌아오는 길. 실로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낯익지 않은 두려움과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익숙하지 않은 두려움을 내 것으로 만들 때라야 우리는 새로운 것을 익숙한 무엇으로 만들 수 있다.
내 나이 이제 서른일곱, 마흔이 가까워 온다. 아무리 자전거를 멋들어지게 타고 긴 머리를 출렁일지라도 세인의 눈에는 참으로 우스운 한 장면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내 기분은 마흔이 아니라 열일곱, 열여덟 순수했던 시절의 그 공간에 잠시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자전거를 배우는 일. 그건 아주 작은 시도였지만, 내겐 큰 기쁨과 가능성이라는 교훈을 주는 색다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