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을 펼친다.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나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대견한 게 있다면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빠져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요즘 매일 책을 10권씩 읽는다. 아이가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진짜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고, 또 하나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독서록 쓰기 덕분이다. 독서록은 매일 읽는 책 제목과 간략한 느낌을 쓰는 것인데 선생님이 내준 과제이기도 하다. 아이는 과제를 하면서 성취감을 알아가는 것 같다. 평소에도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하는 아이라 독서록 쓰기도 반에서 1등이라고 한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게 더 좋다. 나 또한 책 읽기를 좋아하고 독서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특히 어렸을 적 읽은 책은 솜에 물이 스며들 듯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세상의 때가 쌓이게 되면 순수함도 그만큼 빛을 잃게 마련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책이 주는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책을 골라서 읽는다. 게다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도 더없이 좋다. 예전과 비교하면 책이 넘쳐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책은 부잣집 아이나 살 수 있는 부러운 물건 중 하나였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기도 힘들었던 때, 책을 사서 본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책이 많은 아이들이 부러웠고, 어릴 때부터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을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다. 친구에게 책을 빌려보기 위해 친구가 시키는 일도 마다치 않았던 예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책이 고프다. 그래서 내가 갖게 된 책의 표지가 너덜너덜해지고,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도 버리지 못했다.
친구에게 새로운 책이 생기면 그것을 빌려보기 위해 친구 옆에서 서성거렸던 일도 많았다. 새 책을 펼쳤을 때의 그 느낌이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시골 아이에게 책은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통로였다.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요즘은 책이 없어서 못 보는 게 아니라, 삶이 바빠 시간내기가 힘들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 그래도 책을 항상 곁에 두고 산다. 짬짬이 펼쳐보기 위해서다.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도 환경과 무관하진 않을 듯싶다. 말로만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강요했더라면 도리어 거부감을 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 하는 내 모습이 은연중 아이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의 독서하는 습관을 지속되게 하기 위해 더 많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