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최광성(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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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모처럼 마음을 다잡아먹고 길을 떠났다. 앙상한 나목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고요속을 가르며 시골의 간이역을 지나는 마음은 어느덧 낯선 풍광에 설레는 소년이 된다.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그리움이 수없이 교차하는 애환이 서린 시골 역은 왠지 가슴에 찡한 울림으로 다가오곤 한다. 늘 익숙해진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이 가져다주는 묘한 해방감 속에서 얼마를 지났을까, 하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유리창에 낀 성에를 닦아내자 백야의 설경이 이방인을 반긴다. 창밖을바라보면 아득한 추억의 조각들이 필름처럼 스쳐간다.
지루한 상념에 겨워 새우잠을 청하면서 도착한 곳은 어부들이 새벽의 바다를 환히 밝히는 작은 항구다. 밤새 조업한 배에서는 싱싱한 물고기와 해산물들이 경매장으로 옮겨지고 있고, 억척스런 아줌마들은 투박한 사투리로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꾸밈없는 아줌마들이 권하는 고기 몇 마리가 놀랐는지 푸드덕 물을 치고 솟아오르니 눈가에 머물던 졸음이 저만치 달아난다.
동이 터오는 새벽의 바다는 생명의 젖줄이다. 포말을 일으키며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와 코끝을 자극하는 바다 내음, 먼 수평선을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허기를 면하고서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렀다. 아기자기한 소품에 주인의 정성이 느껴지는 전망좋은 카페에 앉아 마시는 향 좋은 커피 맛이라니…. 가까이 또는 저 멀리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위로 눈부신 날갯짓으로 울어대는 갈매기들의 자태가 곱다. 아늑한 섬에는 해풍에 흔들리며 서로 기대어 속살거리는 소나무 군락이 정겹다.
어찌 보면 바다는 때로 인간에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험난한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돌아가고픈 마음의 고향이며 어떤 외로움도 달래주는 넉넉한 가슴이기도 하다. 늘 가까운 듯하면서 한없이 두려워지는 그 끝과 깊이의 변화를 알 수 없는 존재다. 그 중에서도 겨울바다는 모래톱을 할퀴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는 생의 본능에 가장 충일한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파도와 칼바람 속에서 나는 번잡한 내면의 부스러기들과 나약해지는 스스로의 의지를 한 점 남김없이 날려버린다. 바다는아주 간결하면서도 망설임 없는 단호한 삶의 의지를 내면 깊은 곳에서 일깨워 낸다. 삶의 호사스런 권태와 알량한 자만심이 모래위의 성(城)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고요한 밤바다 위 보석처럼 찬란한 별빛들이 내 좁은 가슴으로 쏟아져 내리고, 찬연하고 정숙한 밤의 향연에 나는 은빛 찬란한 다랑어가 되어 망망대해를 누비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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