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장래 희망은‘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아이가‘고려장’에 대한 책을 잃고 난 뒤“효자가 뭐냐?”고 묻길래“효자는 부모님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 날부터 아이는 꼭 커서 효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효자가 되려는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 분 동안 하루일과를 모두 보고하는 아이가 어제“엄마, 나 오늘 굉장히 슬펐어요.”하는 것이다. 누구한테 맞았나, 아니면 선생님한테 혼이라도 났나 싶어서“왜?”라고 물었다.
아이에게서 슬퍼진 이유란 것을 다 듣고 난 나는 웃음이 났다. 그 이유란 것은 다름 아닌 효도 때문이었다. 점심 급식으로 비빔밥과 무국과 레몬주스가 나왔던 모양이다. 한입 맛본 레몬주스가 아이 입에도 너무너무 맛있었고, 그 순간‘엄마에게도 맛을 보여드려야지.’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밥과 국을 다 먹고, 주스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막 급식실 밖으로 나왔을 때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주스를 가져가면 안 된다고 아이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나는 꼭 엄마도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는데…”아이의 마지막 말에 가슴 안에 장작불이라도 지펴놓은 듯 따스함이 번져왔다.
“그래서 효자가 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안 된다고 했어요. 많이 슬펐어요.”
아이가 이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파인애플주스가 나왔을 때에도, 급식으로 꼬마 돈가스가 나왔을 때에도 아이는 집에 와서 항상 엄마에게 못 가져다 드린 것을 아쉬워하고 죄송해했다.
“건아, 엄마는 레몬주스랑 꼬마 돈가스 안 먹어도 너무너무 행복해!”“왜요?”“엄마 생각하는 건이 마음에 감동해서 엄마는 지금 마음이 너무너무 행복하거든.”“정말요?”“응, 정말로. 니가 진짜 효자야. 그러니까 다음에는 급식으로 맛있는 거 나오면 니가 다 먹고 와서 엄마한테 얘기해줘. 그러면 엄마는 상상하면서 또 행복해할 수 있으니까. 알았지?”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아이는 그제서야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자는 아이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오징어, 은행, 사과, 감, 배즙을 꺼내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담아본다. 늙으신 아버지는 틀림없이“너나 먹지, 뭣 하러 보냈냐?”하시겠지만, 나 또한 효자이고 싶은 그 마음을 이제라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