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佛紀) 2545년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옵니다.
백여덟 가지라는 번뇌를 법당에 꾹꾹 가둬 놓고,
저 스님의 독경 소리는 쉬는 날이 없을 것 같습니다.
꽃과 잎이 서로 마주 보지 못한다는
상사화(相思花) 피어 지고, 피어 지고,
앞으로도 삼천갑자(三千甲子)를 더 들릴 것 같습니다.
억만 겁(劫)을 천지개벽하여도 들릴 것 같습니다.
하찮은 일에도 상처받고 있는 우리들의 삶,
그 속세의 오욕칠정(五欲七情)을 사그라뜨리려고,
대웅전에 울리는 저 카랑한 목소리.
가비라성 성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보리수 밑에서 큰 깨달음을 하셨다는
석가세존의 깊은 뜻을 감히 제가 알 수 없지만,
비록 제가 불가에서 설파하는
생사유천(生死流轉)과 열반(涅樂)을 전혀 모르지만,
태어나서 늙어, 병들고 죽는다는 중생들
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해탈을 모르지만,
전생(前生)의 인연이 삼계(三界)를 흐른다는
인과응보의 업보를 모르지만,
무진장(無盡藏) 많고 또 어려운 경전을 모르지만,
번뇌의 근원인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저 스님의
맑은 목탁 소리는 들립니다.
백팔 개라는 염주가 가사(穀錢) 자락 아래서 보입니다.
풍진(風塵)에 울고 있는 대웅전 처마 끝의
풍경(風) 소리도 들립니다.
본존불상과 수많은 부처,
산신령과 용왕님의 탱화도 보입니다.
맑고 고운 이 산사(山寺)에 오신 분들께
과일과 산나물을 건네시는 보살님도 보입니다.
저는 향불 피운 대웅전 안에서
속세의 백 팔 가지 번뇌를 잊을 수만 있다면,
삼 천 배의 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은 왜 인간에게 사이 간(間)자를 주시어
서로 부대끼며 인연을 맺게 해 놓으시고,
가련하고 죄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고자 합니까 부처님,
자비로우신 부처님, 자비로우신 부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