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산업사회가 몰고온 인간성 말살은 전통적 윤리성만으로 가로막아 서기에는 균열의 폭이 너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주체적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현대적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힘은 소극적 • 자율적 계율만으로 안될 것 같다. 적극적 가치의식이 인간과 자연의 정감을 용솟음치게 할 수만 있다면, 일거에 인간소외의 극복과 인간복지의 이정표가 보일것 같다.
만약 “이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존경하느니?”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럿셀의 스승이었던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교수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세계의 명문인 캠브리지대학의 교수였다거나, 수학과 물리학의 세계적 대가였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계를 보는 많은 철학자들이 불안과 공포를, 부조리와 비합리성을, 염세와 허무를 대변하고 있을 때, 다시 말하면 부정적 가치관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그 한 사람만은 긍정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였기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여러분! 나무에 매달린 한개의 잎사귀까지도 아름다운 빛깔로 치장하고 있읍니다. 우주내의 모든 사물들은 상호 교감하는 가운데 정감을 지니고 삽니다. 따라서 우주는 미적인 가치가 들어가서 이루어진 유기체의 통일입니다. 자연은 살아 있는 우주이며, 미적 조화가 지배하는 가치의 세계입니다. 모든 생명들은 친절과 사랑과 미적만족을 위하여 생존하며, 아름다움이 바로 생존의 목적입니다.”
이상은 화이트헤드(1861~1947년) 교수의 말이다.
최소의 용지에 표현된 최대의 예술이라고 극찬하는 취미우표도 살아 있는 우주에서 미적 가치가 어떻게 조화있게 지배해가고 있는가를 각성하게 하며, 斷續的으로나마 친절과 사랑과 미적 만족을 위하여 살아가는 생명을 의식하게 할 것이다.
위대한 눈물과 아름다운 미소가, 무한한 욕망과 사랑이 샘솟는 그 미적 가치야말로 삶의 활력소가 아닐까? 미적 가치의 통일과 조화로운 진전 속에 각색함으로써 아름다운 정감으로 균열된 인간성을 회복해야만 된다.
여기에 접근하는 한 방법으로 취미우표를 수집 • 정리 • 연구하는 취미생활을 권장하고 싶다.
인생과 자연을 이야기하며 미적가치를 추구하고, 생활의 활력소를 찾아 가는 우취회원을 만나고 싶다.
내가 보는 우취가들은 긍정적가치관으로 꽉 차 있는 사람들이다. 아름다운 정감으로 미적가치를 주구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계급이나 연령이나 남녀의 구별없이 우취가로 성장하고 있으며, 국적까지도 가리지 않는 세계적 취미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것도 통일된 가치의식과 세계관이 그들을 초대하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이* 있는 영혼을 지키며, 힘과 애정을 가지고 미적 가치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연구해 나가는 가운데 생존의 목적을 각성해 가며, 친절과 사랑과 미적만족을 위하여 오늘을 의미있게 살아갈 것이다. 태양에 반짝이는 찬란한 생명을 축복하며 그들은 세월 속에 버려진 凍土의 땅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할 것이다.
회의가 몰아 닥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멍에가 놓아주지 않을 때마다, 갈등이나 좌절보다, 절망과 체념보다는 위대한 눈물과 아름다운 정감으로 자이를 승화시켜야 할 생존의 목적이 바로 당신 앞에서 벌써 손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