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늦가을이었다.
아직 겨울이라 부르기엔 한낮의 태양이 따스했지만,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이 왔음을 실감했다.
지하철 노선도는 여전히 낯설었고, 버스는 그보다 더 어려운 존재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바람이 차서 손이 곱았다. 강남 한복판에서 안암동으로 가야 했는데
손에 쥔 휴대전화가 갑자기 꺼져버렸다.
순식간에 세상이 조용해졌다. 지도를 볼 수도 없고, 검색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다들 바쁜 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많던 불빛 속에서 나는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추위보다 더 서늘했던 건 마음 한가운데 올라온 막막함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다가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조용히 물으셨다. “학생, 어디 가요? 얼굴이 하얗네.”
그분은 자기 장갑 한 짝을 내 손에 쥐여주시더니 근처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가 주셨다.
그리고 작은 종이에 버스 번호와 갈아탈 곳을 천천히 적어주셨다.
삐뚤빼뚤한 글씨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그날 집에 도착해 장갑을 벗었을 때 손끝보다 마음이 먼저 녹아내렸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도시의 불빛 속에서 그 아주머니의 손길은 유난히 따뜻했다.
“서울에선 눈 뜨면 코 베어 간다”.라는 말을 듣고 잔뜩 긴장해 살던 나에게 아주머니는
“서울도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안도감을 심어주셨다.
이제는 나도 낯선 사람이 길을 묻는 모습을 보면 그날의 나처럼 서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자연스레 먼저 묻게 된다. “어디 가세요?” 그렇게 누군가의 계절 속에서 작은 온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