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앞에서
글. 오진숙(경기 안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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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오후, 우체국 창구 유리창에
햇살이 얇게 내려앉는다
우체국 안에는 김장김치 상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늙은 어머니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구겨진 주소 쪽지를 꺼낸다
글자마다 손등의 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나는 옆에서 상자를 잡아주며
테이프 붙이는 것을 돕는다
고춧물 스친 듯 붉은 실밥 같은 것이
테이프 사이에 오래 머문다
“잘 부탁해요”
그 한마디가 상자 테이프를
다시 한번 눌러 붙인다
잠시, 포기김치를 북북 찢어
내게 건네오던 손이 떠오른다
그 손의 온기만으로도
겨울은 이미 지나 있었다
어머니가 문을 나선다
뒷모습 위로
늦가을 햇살이 길게 따라간다
상자 겉면에 나은
마늘과 생강과 배추의 숨,
내 손끝에 아직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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