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앞에서
글. 오서진(경기도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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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 6녀의 막내 딸인 나에게는 열한 명의 친정 조카가 있다. 둘째 언니의 딸 조카 지원이의 결혼식은 친정 조카 결혼식으로는 다섯 번째다. 파도같이 밀려왔던 코로나의 시대를 지내고 아주 오랜만에 맞이한 결혼식 참석이다. 지원이의 아빠, 나에게는 둘째 형부가 돌아가신 후 두 번째 해를 맞이한 때였다. 특수학교 교사인 지원이는 예쁜 인형 같은 외모와 달리 말없는 남자 같은 성격이었다. 지원이는 엄마에게 ‘나 이날 여기서 결혼식이야’라고 통보하듯 말했다. 둘째 언니는 딸이 정한 대로 따랐다. 지원이는 그날 자신의 신부 화장과 드레스는 간단하고 수수하게 하고 엄마의 화장과 한복을 가장 최고급으로 맞추었다. 예식은 레스토랑의 야외 결혼식이었다. 3월의 말, 봄 이른 날씨를 우려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날 대구의 날씨가 맑고 화창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벚꽃이 만발했다. 레스토랑의 잔디를 둘러싼 벚꽃은 따로 꽃장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화사함을 뽐냈다. 신랑 부모님의 좌석과는 달리 둘째 언니는 홀로 앉아있었다. 예쁘게 꾸며진 모습이 벚꽃과 잘 어울렸다. 초긍정적인 성격의 둘째 언니는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하늘도 둘째 형부의 얼굴처럼 맑고 밝았다. 문득 내 결혼식이 떠올랐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셨지만, 친정언니들과 형부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었다. 특히 긍정적인 성격의 둘째 언니와 둘째 형부는 더욱 그랬다. 장모님과 친정식구들에게 풍요로운 추억을 많이 안겨주었던 둘째 형부가 하객들을 위해 이날 벚꽃을 선사해 준 것만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정식구들은 카페에 모였다. 넓은 장소의 카페임에도 2층 한 층이 친지들로 가득 찼다. 근 4년 만이다. 큰오빠의 아들 큰 조카 민석이가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모여 북적북적한 모습을 보니 친정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코로나 시대 이후 고물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인식도 급격히 변하는 쉽지 않은 때에 청년기를 묵묵히 살아가는 친정 조카들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길가에 주욱 이어져 핀 벚꽃이 배웅을 나온 듯했다. 웬만한 의장대나 환영단이 부럽지 않았다. ‘벚꽃...참 감사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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