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에세이
전체글 1231Essay여수 연등천 포장마차
여수는 맛의 고장이다. 남도 어디든 맛있는 동네가 적겠느냐만, 여수는 각별한 맛의 별천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나는 이 도시로 깃들어서 며칠을 묵곤 했다. 아아, 혀에 착착 붙는 장어탕과 달착지근한 군평서니구이는 어쩔 것이냐. 계절마다 다른 별미가 나오고, 사람들의 혀는 행복하였다. 여수에는 맛집도 많을뿐 아니라 사람들의 입맛도 예민하다. 속설에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랐다고 하지만, 나는 맛자랑으로 바꾸고 싶다.
Essay그 골목의 풍경
어느 좁은 골목,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은 전봇대에 몸을 붙이고 말뚝박기를 하다,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돌을 주워 비석치기를 하다, 누군가 가지고 나온 기다란 고무줄을 폴짝폴짝 뛰어넘다가, 바닥에 사각형을 그려놓고 땅따먹기를 한다.
Essay시원(始原)의 파동
동심은 어른들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마음의 무지개다. 아이들은 제 마음의 무지개를 따라가지만 어른들은 제 욕망을 따라간다. 그 결과는 사뭇 다르다. 무지개를 따라간 아이들은 기쁨과 만족이라는 기적에 닿지만, 욕망을 따라간 어른들은 씁쓸한 허무와 권태에 닿는다.
Essay다은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가을 안개가 자욱한 아침, 교문에 들어섰습니다. 용민이, 현수, 한빈이, 강수, 은희가 안갯속에서 놀다가 나를 보더니 일제히 얼굴을 돌리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꼭 고마리① 꽃송이들 같습니다. 교실에 들어서니 희창이란 놈이 혼자 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습니다. 들여다보았더니 어제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Essay웃음에 대한 여름 기억
결혼을 하고 아이들 어려서 해마다 여름휴가 때면 부모님 댁을 찾았다. 농사일도 도와드리고 모처럼 손녀손자 재롱을 곁에서 보시며 즐거우시라고 일부러 부모님 댁을 찾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뙤약볕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고 시원한 곳으로 우리 식구만 휴가 떠나기가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였다.
Essay그 여름, 그 마당을 담고 싶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달아오를 때면 나는 게으르게 마루에 누워 마당을 내다보다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마루에서 내다본 마당엔 하늘을 가득 메울 듯 울창한 대추나무가 서 있었다. 특이하게도 어린시절 우리집은 마당과 꽃밭이 대문 반대쪽, 그러니까 가옥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집 마당과 화단은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Essay어느 노부부의 여름을 보다
스무 살 가을 무렵,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 좁은 자취방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앞날이 아득하게만 느껴져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노년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Essay내게 주는 최고의 선물 여행
영국의 철학자 브하그완 슈리 라즈니시는 ‘여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여행은 그대에게 세 가지의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는 집에 대한 그리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곳에 대한 지식이며, 나머지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Essay순라길에서 받은 따뜻한 달걀 한 알
나는 여행작가다. 여행을 다니며 그곳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 제철 먹을거리를 즐기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으로 글을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 뒤쪽의 순라길을 걷고 있었다. 순라길은 조선시대 궁궐을 호위하던 순라군들이 한밤중에 있을지도 모를 도적을 막고 화재가 날까 염려해 딱딱이를 치며 밤새 순라(巡邏)를 돌던 길이다.
Essay여행, 말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여행’ 말만 들어도 가슴이 절로 콩닥거린다. 지치고 힘든 세상사를 잠시 내려놓고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여행이니 어찌 마음이 설레지 않겠는가.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등산여행일 때도 있고, 음식여행, 낚시여행, 무전무상(無錢無想) 여행일 때도 있다.
Essay그리 많은 수식이 필요치 않은 말
아버지는 생일을 이틀 남기고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버티시던 아버지한테 그 이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공원묘지 상석에 적힌 생몰일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말을 채 맺지 못하시곤 한다.
Essay일 년에 단 하루 특별한 날
아이가 유치원과 학교로 진학하여 본격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전에 없었던 소소한 골칫거리가 하나둘씩 늘어 간다. 요즘 엄마들의 중대한 걱정 중 하나는 바로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아이의 생일이다.
Essay생일에 갖는 자유여행
창틈으로 파고들어선 눈부신 아침 햇살 한줄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벌떡 일어나 어제까지 나를 존재하게 했던 휴대폰과 수많은 세상의 인연들을 상자에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텅 빈 가방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그 언젠가 찜해 놓았던 작은 숲과 계곡이 있는 나지막한 산까지 30분가량 걸었을 성 싶었다.
Essay내가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는 뜻은
내가 집안의 행사 가운데 잊지 않고 꼭 챙기는 것 몇 가지가 있다. 연말이 되어 매년 달력이 들어오면 우선 집안의 제삿날을 전년도 달력에서 새 달력에 옮겨 적는다. 그 다음 아버지 어머니의 생신과 형제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Essay20년의 시간을 돌리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떠오르는 선생님이 계셨다. ‘진짜 정의’에 대해 알려주신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연락이 닿았었는데, 그 이후로 회사에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느라 선생님을 찾아뵐 겨를이 없었다. 자연히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얼마 전, SNS를 통해서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Essay빛바랜 편지
봄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였다. 무거운 옷을 밀어 넣고 산뜻한 봄옷으로 자리를 바꾸는데 깊숙한 곳에서 낯선 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청홍으로 테를 두른 항공봉투 뭉치. 신혼시절, 해외에 근무하던 남편과 주고받은 편지 꾸러미였다.
Essay아버지의 편지
누구든 추억이란 걸 간직하고 살아간다. 묘하게 추억은 어릴 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는다. 순수하고 가슴 설레는 이유다. 갓난아이의 해맑은 눈동자가 주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 게 나에게도 남아있다. 아버지의 편지다. 교편생활을 한 아버지는 편지쓰기를 참 좋아했다.
Essay당신과 내가 편지에 담아 보낸 것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본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냈던 기억도 까마득하네요.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고 말았죠. 그 역시 세상의 수많은 어쩔 수 없는 일들 중 하나겠지만,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네요. 언젠가 내게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던 당신, 언젠가 내가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던 당신. 지나온 삶의 누구라도 될 수 있는 당신.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듯 안부를 물어요.
Essay옥탑방 거짓말
그곳은 월세 20만원짜리 옥탑방이었다. 4층까지 걸어 올라간 뒤 다시 거의 90도에 가까운 계단을 타야만 하는 곳이었다. 옥탑방답게 옹색하기 짝이 없었고, 바람은 극성스러울 정도로 불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곳에 내 회사를 꾸렸다.
Essay후회하지 않는 거짓말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입학 축하 선물로 어머니가 파커 만년필을 사주셨다. 그 시절 파커 만년필은 귀한 물건이었다. 처음 써보는 만년필의 촉감은 마치 매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