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에세이
전체글 1231손끝에세이아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대학교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니고 여름방학을 보내던 막내아들이 갑자기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 아빠 하는 일이 어려우니 휴학을 하면서 군대에 가겠다는 것이다.
손끝에세이달력이, 또 한 장 넘어 간다
살아가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한참을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어떤 영상, 혹은 메시지들. 나에겐 십여 년 전 받았던 어느 편지가 그랬다.어느 날 군대에서 온 편지.
손끝에세이체면 세워준 적금통장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다. 결혼을 앞둔 나는 고민에 빠졌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며 지내다 보니 수중에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손끝에세이세월은 적금이 안 되나요?
아버지의 일흔 번째 생신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 정말 칠순 잔치 안 하실거예요?”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해. 멀쩡한 자식이 세 명씩이나 있으면 뭐하누. 한 놈도 결혼을 안 했는데. 사위도 며느리도 없는 칠순잔치는 안 하련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강경하게 거절하셨다.
손끝에세이은사님께 드리는 마음의 카네이션
해마다 5월이 되고, 길가 꽃집마다 카네이션꽃다발과 화분 등을 화려하게 장식해 내놓으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은사님 한 분이 계신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은사님께 마음으로나마 카네이션을 전해드리며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본다.
손끝에세이효석이의 카네이션 두 송이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파란 하늘이 있다. 항상 천진하고 순수한 호수 같은 눈이지만 때론 그 맑은 눈빛이 상대방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손끝에세이삼세번 만에 딴 운전면허증
오래전 일이다. 세 자매 중에 언니가 먼저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다. 이어서 막내가 1종 면허를 땄다. 둘 다 필기시험과 기능시험에 한번에 붙었다.
손끝에세이운전면허증이 일깨워준 겸손함
30대이던 90년대 초반, 자가용 바람이 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던 것 같다. 자가용은 언감생심이고 운전면허증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 시작한 운전면허 따기 프로젝트. 시작은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손끝에세이그깟 오백원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혹은 특정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어떤 일을 빨리 처리해 주십사 독촉을 받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손끝에세이등록금 고지서 세 장 그리고 엄마
안방 천장 등은 꺼졌는데, 방 한 귀퉁이에 스탠드만 켜놓고 부모님이 속삭이고 계셨다. 방바닥에 널린 영수증과 그 사이에 놓인 등록금고지서. 세 장이다.
손끝에세이지키지 못한 약속, 새로운 출발의 이정표
대학 2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고, 졸지에 회사도 집도 모두 잃고 말았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등록금고지서가 날아왔지만,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혼자 고민에 빠져 들었다.
손끝에세이소소한 일상에도 행복의 꽃은 피고 고마워, 아들
어제 저녁을 먹고 아내와 같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우편수취함에 우편물이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분명 수취함을 확인하였는데 웬 편지지?” 나의 물음에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이 조금 전에 나갔다가 오더니 넣은 거 같다고 말했다.
Essay겨울, 따뜻해서 좋은
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겨울이었는데 어머니 심부름으로 작은 오빠와 밤길을 나섰다. 어깨를 웅크리고 길을 걷는데 허술한 포장마차가 하나 나타났다. 오빠는 나를 포장마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멍게와 해삼을 조금씩 사주었다. 어머니에게 좀체 용돈 달라는 소릴 하지 않던 오빠에게 어떻게 군것질할 돈이 있었을까 의아했다.
Essay내 생애 가장 춥고, 가장 뜨거웠던 겨울
2010년 12월 25일, 나는 영하 18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산중에 있었다. 경상북도 김천의 우두령에서부터 충청북도 영동군 괘방령까지 백두대간 종주 20차 산행에 나선 길이었다. 영하 30도면 대략 캐나다의 준 북극 마을 처칠, 러시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몽골의 울란바토르 등에 해당하는 기온이다.
Essay첫눈과 ‘첫눈 조심’ 표지판
나는 대관령 아래 눈 고장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도시 사람들에게는 마치 눈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해마다 가을에 단풍이 들기 시작해 절정을 이룰 때쯤이면 어김없이 눈이 내린다.
Essay엘튼 존의 유어 송
10년 단위의 시간의 경계는 단지 편의적인 구분에 불과한 것일까. 대중음악에서만은 결코 그렇지 않다. 팝과 록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1960년~1980년대까지 음악의 내용물은 신기하리만치 10년 단위로 급변한다. 로큰롤이 불꽃처럼 타오른 시기가 60년대였다. 히피 공동체가 문명을 거부했고 저항의 록, 항의의 포크가 시대를 노래했다.
Essay음악은 추억 속 사진첩이다
누군가와 행복하거나 평화로웠던 시간들, 혹은 반대로 너무나 쓸쓸하고 슬퍼서 제 인생에서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각인된 그때 그 시간에 우연하게 음악이 함께 했었다면 그 음악은 기억의 보존제가 될 것이다.
Essay마지막 정거장에서 함께 들은 노래
누군가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말기암으로 호스피스병동에 누워있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닷새 전에 보고 왔는데 그 사이 죽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악화됐다니 믿기지 않았다. 친구는 나를 보자 헤프게 웃었다. 눈자위와 볼이 움푹 꺼져서 크게 웃을수록 슬퍼 보였다. 우리는 내일도 만나고 모레도 만날 것처럼 하릴없이 날씨 얘기를 했다.
Essay엄마의 배추토장국
나는 찬바람이 부는 아침이면 구수한 된장 냄새에 잠을 깨곤 했다. “킁킁, 배추토장국이군” 학교 가기 전 자동적으로 알람이 되는 엄마의 배추토장국 냄새…. 어릴 때부터 인스턴트나 과자를 좋아하기보다는 김치,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 우리 토속음식을 즐겨 먹었다.
Essay안토니오의 파스타
나의 직업은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 나는 요리하는 것이 즐거워 음식을 테이블에 세팅해서 마무리하는 것에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초대한 사람들을 어떡하면 감동시킬지 고민하며 요리를 하고 세팅을 한다. 손님을 맞이하는 설렘이 내 손맛이 된 게 아닐까 한다. 바쁜 와중에도 나는 지인들을 불러 모아 함께 요리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