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터줏대감 김
김이 우리 가정의 식탁에 터줏대감으로 자리한지 오래다. 문헌기록만 살펴보더라도 1425년 편찬된 <경상도지리지>에 토산품으로, 1486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한국인의 식재료다. 불과 15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시장에서 사온 생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구운 조미김을 식탁에 올렸던 기억이 있다. 김 한 톳(100장)을 재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기름 바르던 붓이 달아 점점 짧아졌던 기억도 있다. 가정마다 김이 다르고 기름이 다르고 또 소금과 불이 달라서 집집이 김 맛도 달랐다. 하지만 요즘은 조미와 구이를 마친 조미구이김을 대부분의 가정에서 구입해 먹는다. 포장기술의 발달로 습기로부터 김을 보호하고 유통과정 중 기름에 젖는 것을 방지해 가정에서도 갓 구운 김 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미김 뿐이랴? 김은 아침식사를 거른 직장인들에게 사랑받는 천냥김밥을 통해서 만나기도 하고, 생김을 구워 간장에 찍어먹는 별미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해물찜이나 볶음 요리를 먹고 난후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을 때도 김가루가 없으면 허전하다. 김이 없는 밥상을 상상하니 왠지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자연산
김양식 김
오래전부터 우리조상 대대로 즐겨온 김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자연산 김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바위에서 붙어 자라는 자연산 김으로 식용 김을 만들지는 않고 현재 식탁에 오르는 모든 김은 양식으로 얻은 김 원초로 만든 것이다. 자연산 김은 생산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수요를 채울 수 없다. 과거에는 광양만에 많았고 요즘은 장흥, 군산, 서천, 대부도 등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서 김 양식을 한다. 김양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지주식과 부유식이다. 김 양식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곳이 좋다. 공기 중에 노출되어 햇볕과 바람을 맞는 것이 자연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얕은 바다에서는 지주식이 깊은 바다에서는 부유식이 알맞다. 먼저 지주식은 바다의 바닥에 기둥을 박고 그 기둥에 김발을 걸고 김포자를 김발에 붙여 키우는데 이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부유식은 지주가 없고 김발을 바다 위에 띄우고 그 김발에 김포자를 붙여 키우는 개량된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김양식은 대부분 지주식이며 장흥지역에서는 부유식 김양식을 하는 어가가 많다. 김맛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바다에 물이 빠지면 지주식이 김발이 물 밖으로 노출되면서 햇볕과 바람을 맞고 자연 상태에 가까운 조건을 형성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유식보다 김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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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 산의 비밀
때만 되면 김양식에 염산(무기산)을 뿌리다 적발되었다는 보도로 떠들썩해지곤 한다. 음식 갖고 장난치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도 있건만 도대체 김양식장에 무기산을 뿌리는 이유가 뭘까?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며 잡초와 병충해로부터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농약을 뿌리듯 김 양식에도 잡조류가 부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을 뿌려주는데 산은 김발에 잡조류가 붙는 것을 막고 증발해 없어지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부 몰지각한 업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염산을 쓰다 적발되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양식업자들은 유기산을 쓴다. 그런데 양식과정에서 산을 쓰지 않는 지역도 있다. 장흥지역 부유식 양식장은 산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무산김이라고도 하는데, 산을 뿌리는 대신 4일에 한번씩 김발을 뒤집어가며 공기 중에 노출시켜 잡조류의 부착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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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쇼핑
김의 전성기를
꽃피우다
김을 가공하는 업체가 초기 영세수준을 벗어나 연매출 100억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우체국쇼핑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거기에는 물론 조미구이김의 맛과 품질을 완성하기 위한 업체의 장인정신이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체국쇼핑이 우편주문판매라는 이름으로 첫 문을 연 1986년부터 김은 고객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상품이다. 1995년 조미구이김 품목을 입점시킨 이후에는 대표품목으로 품질과 맛을 인정받아 부동의 매출액 1위를 지키고 있다. 초기 입점 업체들의 품질관리와 맛에 대한 철학은 남달랐다. 1993년 입점 후 꾸준한 매출성장을 도모해온 현대수산의 유광호 사장은 좋은 등급의 원초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김양식장을 발로 뛰었고 최고 등급의 원초만을 수급하여 품질과 맛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했다. 김에 바르는 참기름은 직접 착유하고, 소금 또한 최상의 상품만 썼다. 그뿐 아니라 유통과정 중 변질되지 않도록 포장 중 공기의 유입을 최소화하면서도 김이 부서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 맛을 지켜냈다고 한다. 현재 우체국쇼핑 전체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는 대천김의 최민순 사장은 2대째 전통의 김맛을 지키며 선대의 노하우를 계승한 것으로 유명하다. 원초를 고르는 과정부터 구이김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선친의 장인정신과 체험으로 얻은 노하우를 물려받았다. 물려받은 노하우는 현대식 설비와 품질관리시스템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좋은 원료, 위생 가공’의 원칙을 지키며 ‘내 가족과 같이 먹는 제품’이라는 품질관리방침과 ‘대천김을 드시는 고객은 최고의 김을 먹는다’라는 자부심으로 제품생산에 임한다고 한다. 최고품질의 김을 공급할 수 있었던 데는 이와 같은 입점업체들의 노력과 함께 우체국쇼핑의 품질관리시스템도 큰 역할을 했다. 관능검사, 성분검사, 공급업체현지실사를 연중 실시하고 있으며 공급업체 품질관리 결의문을 채택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좋은 김 고르기
조미구이김에서 김 고유의 향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재래김에는 특유의 향이 살아있다. 조미구이김이 먹기에도 편하고 밥반찬으로 간편해서 누구나 선호하지만 가끔은 질 좋은 재래김을 구워먹거나 생김에 간장을 찍어먹는 방법도 권하고 싶다. 지역별로 김 제조 방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김 고유의 맛과 향을 지키면서도 품질을 높여 차별화 하려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지역별 재래김 맛의 차이를 느껴보는 재미도 있다. 좋은 김은 육안이나 향으로도 구별이 쉽겠지만 선별하는 몇 가지 알려진 방법이 있다. 김을 잘라서 물에 넣었을 때 자연스럽게 녹는 김이 좋은 김이다. 또 김을 넣었던 물이 맑을수록 좋다. 좋은 김은 광택이 나고 향이 많이 난다. 불에 구우면 선명하게 녹색으로 변하는 게 좋은 김이다. 김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냉동실에 보관할 것을 권한다. 비교적 오랫동안 김의 맛과 향을 보존할 수 있다. 혹시나 김이 눅눅해졌다면 전자레인지나 프라이팬을 이용해 열을 가해주면 다시 바삭한 식감의 김을 맛볼 수 있다.
김은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추운 겨울바람과 햇볕을 맞고 깊은 바다 맛을 담아 나온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바다와 공기를 맞대며 하루하루 맛의 깊이를 더해온 것이다. 식탁에 올라온 김을 먹으며 맛의 깊이를 느꼈다면 그것은 어쩌면 겨울바다의 깊은 맛일지도 모르겠다. ![](/upload/logo_r[670][38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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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랄의 보고
김으로 지키는
겨울 건강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반찬이 아무리 없어도 우리집 밥상을 지키고 있는 녀석이 있다. 바로 ‘김’이다. 반찬이 많아도 김이 빠지면 허전하고, 반찬이 없어도 김만 있으면 밥이 쉽게 넘어간다. 맛있는 김의 건강 정보를 소개한다.
TIP
자연이 주는 선물, 영양의 보고 ‘김’
김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일컬을 만큼 단백질과 비타민을 가득 담고 있는 식품이다. 가공된 마른 김 100g당 단백질이 30~40g이나 들어 있다. 또한 면역력을 높여 주고 눈 건강을 돕는 비타민A가 풍부하다. 김 한 장의 비타민A 함량은 달걀 두 개와 맞먹는다. 유해산소를 없애 노화와 암을 예방하는 비타민C도 풍부하다. 100g당 함량이 93mg. 귤에 들어있는 비타민C가 100g당 48mg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양이다. 김은 칼슘·철분·칼륨 등 미네랄의 보고이기도 하다. 특히 칼슘 함량은 100g당 325mg으로 우유의 세 배 이상이다. 또 김의 주성분인 포르피오신은 위궤양 및 십이지장궤양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아연도 상당량 함유돼 있어 스태미나 식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간의 해독작용을 돕는 타우린 성분도 많아 소량의 김을 자주 먹으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김은 이렇게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으면서도 열량은 거의 없다. 식이섬유 함량도 말린 김 100g당 37g으로 높다. 그런데 김에는 지방이 단 1%도 들어있지 않다. 김을 기름에 발라 굽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과 기름을 함께 섭취하면 영양가 면에서 서로 보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름을 바른 김은 공기와 햇빛에 산화되기 쉽다. 들기름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들기름 자체가 더 쉽게 산패(Rancidity, 酸敗)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꺼번에 기름을 발라 굽는 것보다 먹기 직전에 구워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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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김’
김은 아주 간단하게 식탁에 올리는 반찬이지만 생산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청정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대표적인 해조류다. 김 양식은 쉽지 않다. 잡태, 균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쉽게 끝내기 위해 염산이나 유기산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쉬운 방법을 등지고 손품을 팔아 생산해낸 무산 김이 주목 받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김은 너무 친숙하지만 서양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희귀한 식품이다. 김은 위도 34~37도 해안에서만 생산된다. 또 같은 위도라도 수온에 따라 맛이나 성분이 달라진다. 김에 가장 좋은 수온은 섭씨 5~8도. 4도 이하로 내려가면 성장이 안 되고 15도 이상 올라가면 뿌리가 녹아버린다.
조류, 수온, 염분 3박자가 맞아야 맛있는 김이 생산된다. 또 적당량의 일조량이 필요하며, 적당한 민물과 섞여야 맛이 더 좋다. 오염된 물에서는 생산이 잘 안 되고, 생산된다 하더라도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한·중·일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서 김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 김의 고품질이 알려지면서 해외 수출이 급증하여 수요가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김’이라는 자원을 보호해야 하는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다. 생산조건은 까다롭지만 맛 좋고 건강에 좋은 김, 겨울철 건강식품으로 좋다.
김연수 / 의학전문기자 출신으로 음식으로 건강을 다스리는 ‘푸드테라피스트’란 직업군을 창설한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