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건축의 화룡점정
![](/upload/h201111-1-4.jpg)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 양용호
남한산성 행궁(行宮) 복원작업현장에서 만난 단청장 양용호 선생에게서는 붉은 열정, 푸른 청춘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예순의 나이를 넘겼어도 청년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만 20세에 시작해 올해로 42년째 단청에만 매달려온 양용호 선생의 손을 거쳐 간 우리 전통 목조건축만 700여 채가 넘는다. 흥인지문, 창덕궁 인정전과 선정전, 경복궁 수정전, 광화문 비각 등의 궁궐복원, 조계사, 월정사 대법륜전, 법주사, 쌍계사 등 전국 유수의 사찰은 물론 현재 진행 중인 남한산성 행궁 단청 복원작업까지 그의 손끝에서 내놓으라 하는 우리 전통 목조건축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궐 전각을 비롯한 목조건축은 설계부터 완성까지를 총 지휘하는 도편수부터, 기둥과 창방, 소로, 가구등을 만드는 목수(소목장),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개와장 등의 수천 번 손길이 닿아야 비로소 목조건축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목조건축의 생명을 불어넣고 옷을 입혀 마감작업을 해 화룡점정을 하는 이는 단청장이다. 그렇기에 목조건축의 가장 마지막이 양용호 선생의 손에서 끝난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전남 영광의 농가 6남매의 장남이었던 그는 지역의 한 장인 공방에서 일하다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로 상경했다. 1969년 만 20세, 당시 불교미술, 단청, 한국화까지 명성이 높았던 이인호 선생을 만나면서부터 양용호 단청장은 본격적인 불교미술과 단청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집안 대대로 종교가 불교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체득했고 그러한 영향들이 자연스럽게 제가 단청이나 불화에 관심을 갖게 했던 것 같습니다. 스승님과 전각이나 사찰 한곳 한곳을 완성해 갈 때마다 엄청난 희열을 느꼈고, 단청이라는 것을 하면 할수록 그 오묘한 색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양용호 선생은 이후 이인호 선생에 이어 무형문화재 제48호였던 일섭 스님의 제자 박준주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단청, 도금을 전수받았고, 이형철 선생으로부터는 불상과 목재수지처리, 고색단청 등을 전수받으며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청장이 되었다.
![](/upload/h201111-1-7.jpg)
단청은 얼핏 보면 단순한 패턴의 반복 같지만, 황, 청, 백, 적, 흑의 5가지 오방색을 기본으로 서로다른 무늬에 음양오행의 철학을 담아 그린다. 위로부터 광화문 홍혜천정 서쪽 거북도, 동쪽 기린도, 중앙 봉황도.
![](/upload/h201111-1-6.jpg)
![](/upload/h201111-1-5.jpg)
단청에 담긴 오방색의 음양오행
“단청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붉고 푸른 것이 아무렇게나 그려진 것이 아니라 색 하나하나마다, 무늬마다 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단청장은 그러한 음양오행 철학에 따라, 궁궐에 사찰에 단청을 그려 넣는 것이지요.” 선생의 말대로 단청은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오방색의 음양오행의 철학이 담겨 있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에 해당하며 우주의 중심이라 하여 가장 고귀한 색으로 취급되었다. 청(靑)은 오행 가운데 목(木)에 해당하며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쓰였다. 백(白)은 오행 가운데 금(金)에 해당하며 결백과 진실 등을 뜻하고, 적(赤)은 오행 가운데 화(火)를 뜻하는 것으로 생성과 창조, 정열과 적극성을 내포하여 가장 강한 벽사의 빛깔로 쓰였다. 흑(黑)은 오행 가운데 수(水)로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단청은 이러한 오방색의 미묘한 조화로 연화, 국화, 모란 등의 자연무늬와 십장생과 십이지신상, 용봉, 천마 등의 동물무늬, 복을 기원하는 길상무늬가 어우러져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선과 악, 평화와 해방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푸른 바다에서 노란꽃이 피기도 하고 붉은 모래 위에 흰물고기가 헤엄도 치며 연꽃문양에서 부처가, 선비가 태어나기도 하는 등 우주만물의 원리와 해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upload/h201111-1-8.jpg)
천년만년 빛나는 단청
우리나라의 단청은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삼국사기> ‘옥사조’에 귀족의 등급에 따라 단청의 규범을 마련, 제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삼국시대 단청의 화려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또 고구려벽화고분에서 단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실례가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색조구사법은 단청의 미적 감각을 최고로 이끌었다. 바깥의 빛을 받는 기둥에는 붉은색을 칠해 힘과 능력을 강조했으며 추녀나 추마에는 청색으로 칠해 그늘진 곳을 밝게 했으며 같은 곳이라 해도 햇볕이 잘 드는 옆면에는 다양한 색을 넣어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늘진 곳에는 붉은색을 써 공간미를 살렸고 위쪽은 푸르고 붉게 칠해 목조건축에 입체감과 생명감을 살렸다. 이러한 기법은 조선시대로 이어져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단청기술의 원칙이기도 하다.
“일종의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단청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채색을 모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방색을 규칙성 있게 반복처리하면서도 각 공간에 맞도록 문양과 채색을 창의적으로 발현시켜야 하지요. 현대 시대와 천편일률적인 도안이 많이 보급되었는데요, 단청을 쉽게 접근한다는 데서 좋을지 모르지만 전통방식의 단청연구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해서 되도록 고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방식의 단청을 복원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현대에 어울리도록 색조, 율동, 공간미에 맞도록 창출해야 한다는 단청장 양용호 선생이다. 그의 손을 거친 문화재, 전통목조건축이 집요한 고증과 제대로 만들어진 우리 것을 창출하고자 하는 선생의 의지와 손끝에서 만들어졌음을 느낀다. 양 선생은 현재 남한산성 행궁 단청 복원작업 마무리 중이다. 선생은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우리 단청의 멋을 찾아 오랜 시간을 또 몰입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단청에는 세상사는 만물의 원리가 담길 것이며 그래왔던 것처럼 천년만년 고고한 색으로 빛날 것이다. ![](/upload/logo_r[670][558].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