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보다, 느끼다, 깨닫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승무를 보아주시는 것이 오히려 승무를 더 나아가 우리의 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통은 재미없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춤에는 서양의 것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창조성과 역동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승무도 마찬가지죠.” 2007년부터 올해까지 ‘승무이야기’ ‘백일 간의 승무 이야기’ ‘천년승무 이야기’ 등으로 승무의 소극장 공연을 올려온 한국예술춤센터의 이철진 대표가 당부한다. 심리학에 초두효과라는 것이 있다. 대부분은 가장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은 정보보다 더욱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첫인상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전통에 대한 이미지는 초두효과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슬픈 일이지만 현대에 살면서 우리가 전통무용을 직접 감상할 일은 거의 없다. 중고교 시절 배웠던 조지훈의 시 ‘승무’가 우리가 가진 인상과 느낌의 전부일 것이다. 허나, 시에서 느껴지는 곱고 비장하며 섬세한 여인의 아름다움도 잠시 잊고 승무를 보아 달라고 이철진 대표는 말한다. “시에서는 ‘파르라니 깎은 머리’라는 표현으로 춤꾼이 비구니임을 은유하지만 실제로 승무는 비구니나 여성만이 추는 춤이 아니에요. 또한 승무는 여성적인 섬세함만 있지 않아요. 승무가 이렇게 남성적인 면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가끔 관객들이 제 춤을 보고 깜짝 놀라세요.”
승무는 대표적으로 한영숙류와 이매방류로 분류된다. 이철진 대표가 전수받은 한영숙류는 구한말 한성준 옹이 오늘날의 독무 형식의 승무로 양식화해 1935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던 것. 이후 손녀인 한영숙에게 전승된 그의 승무는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는데 ‘대나무처럼 곧고, 짙은 획을 그리듯 선명한 장삼 자락의 힘과 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춤’으로 유명하다. 이매방류는 이대조 옹에 의하여 발전된 호남지방의 기방류 승무로 여성적인 색채가 강하다. 한영숙류 승무 이수자인 이철진 대표의 승무는 그래서 호방하고, 남성적이다. 하지만 그는 일체의 편견 없이 춤을 보면 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두운 무대, 북을 향해 엎드린 춤꾼이 염불장단에 따라 몸을 천천히 일으키는 첫 동작을 보는 순간 승무의 역사나 이론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몸짓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춤꾼이 만들어내는 무대와 그것을 보는 맑은 눈과 마음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허공에 흩뿌려진 장삼자락의 미학
한국 전통춤을 볼 때 마음으로 먼저 느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우리의 춤은 발레나 무용극과 달리 거의 서사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대신 몸의 다양한 변화와 분위기, 춤사위의 아름다움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특히 승무는 한국 전통춤 중에서도 형식미의 백미로 꼽히는데 이는 승무의 무복에서부터 드러난다.
승무는 치마(바지), 저고리 위에 키보다 더 긴 소매를 가진 장삼과 홍가사를 두르고 머리에는 하얀 고깔을 쓴다. 고깔은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는데 그나마 언뜻 보이는 얼굴마저 시선을 아래로 향해 춤꾼의 표정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장삼 소매로 감춰진 두 손으로 북채를 들어 팔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는 장삼자락은 우리 전통춤이 갖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장삼을 감고, 풀고, 뿌리는 사위는 장단의 변화에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이고, 다소곳하면서도 호방하며 담백하지만 격정을 내포하고 있다.
승무의 구성도 눈여겨 볼만하다. 한영숙류는 장단의 변화에 따라 다섯 과장으로 이뤄지는데 춤꾼이 무대바닥에 두 팔을 펼친 채 엎드린 자세로 춤이 느리게 시작되는 염불장단과 자진 염불장단의 제1과장, 호방함을 느낄 수 있는 타령장단과 자진타령장단의 제2과장, 원숙미를 느낄 수 있는 굿거리장단과 자진굿거리의 제3과장, 역동적인 북장단을 느낄 수 있는 제4과장, 가장 빠른 장단으로 승무가 마지막 꽃을 만개했다 굿거리장단으로 마무리하는 제5과장으로 구성된다.
“승무를 하면 할수록 춤이 인생같이 느껴져요. 인생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가 모두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거 같죠.” 승무는 전통춤 중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철진 대표의 승무 완판 시간은 40분. 무대에서 홀로 춤 하나로 40분을 채우는 것은 춤과 무대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가 없는 승무를 40분 동안 한자리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도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춤과 장단 안에 녹아 있는 흐름과 춤꾼의 춤사위에 관객들은 이내 춤에 몰입한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들릴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느리게 시작하는 염불장단에서부터 시작해 타령장단에서 슬슬 흥이 오르고 빠르게 북을 연타하는 북장단의 절정에 이르면 관객과 춤꾼은 하나의 호흡이 된다.
‘고귀한 자의 춤, 승무’
승무의 ‘승’은 스님을 뜻하는 글자이다. 사실 승무가 불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승무의 면면에서 느껴진다. 승복인 장삼과 가사를 무복으로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승무의 첫 과장인 염불장단은 물론 북을 치는 북장단에서는 불교의식 춤인 법고춤이 절로 생각난다. 어린 동자들이 스승이 안 계실 때 평소 스승이 하는 모습을 흉내 낸 것이라든가 파계승이 번민하는 모습을 무용화했다는 설, ‘구운몽’에서 제자 성진이 길을 가던 8선녀가 노는 모습을 보다가 인간의 괴로운 연정을 불법에 귀의함으로써 잊으려 했던 것을 춤으로 표현했다는 등 승무의 유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것이 정설이라 말할 수 없지만 승무가 불교에 영향을 받았음은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승무는 춤이 주는 감동 이상의 철학적 울림이 있다. 이철진 대표 역시 승무를 과거 연습하던 중 일기에 ‘이것은 보통사람의 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가리는 고깔과 가사 그리고 장삼, 장단의 분위기와 춤의 분위기로 보아 이것은 고귀한 자의 춤’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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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방하고 담백하지만 격정적인 춤꾼의 장삼자락은 사람의 감정을 몰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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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몸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표출하는 것. 춤꾼은 땀과 노력, 고민이 담긴 수련의 결과물을 오늘도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다. 춤을 본다는 것은 승무를 느낀다는 것은 춤꾼이 품은 삶과 예술의 결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승무를 춤의 정신적인 측면만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춤이란 공연예술이고 공연예술은 관객과 소통이 이뤄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2007년부터 소극장 무대에서 꾸준히 장기공연을 펼치는 것은 박제화된 전통춤 ‘승무’가 아니라 동시대성을 갖는 우리의 혼이 담긴 ‘승무’를 대중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대 위의 춤사위에는 춤꾼의 땀과 노력, 고민이 담긴 단련과 수련의 결과물이다. 이철진 대표의 말처럼 ‘춤은 몸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춤을 본다는 것은, 승무를 느낀다는 것은 춤꾼이 품은 삶과 예술의 결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전통예술의 화두 ‘창조적 계승’은 대중과의 만남 속에 있다고 이철진 대표는 생각한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전통춤에도 그 안에 창조적 계승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짧은 대답에는 많은 함의가 깃들어 있다. 승무가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부터, 한성준 옹이 승무를 독무로 양식화하기 이전부터, 전국에는 승무를 추던 춤꾼들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의 승무를 완성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리라. 전통은 ‘옛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쌓여 온 우리의 혼과 정신에서 건져 올린 ‘예술’ 그 자체이다.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주변에서 무모하다는 만류 속에서도 이철진 대표가 소극장에서 승무 장기공연을 통해 2007년부터 꾸준히 대중들과 만나 오고 있는 까닭은.
이철진 대표의 승무 무대의 관객석에는 종종 외국인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공연하는 내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 한마디 없는 승무의 무대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 외국인은 눈물을 흘렸을까? 승무의 음악이나, 과장구성, 유래, 몸짓의 의미를 몰라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울컥하게 만든 그 무엇이 존재했으리라. 그것을 승무의 숭고미, 비장미, 곡선미 등 여러 미사여구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무에 담긴 깊은 맛과 멋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장엄한 고요와 화려한 열기, 호방한 기상을 담은 웅숭깊은 승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당장 자리에서 일어서 무대로 향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upload/logo_r[670][563].png)
Mini Interview
한국춤예술센터 이철진 대표
춤으로 먹고 살고픈
이 시대의 춤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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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선 스님이 되고 싶었고, 철이 들 무렵엔 철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승무를 추는 춤꾼이 되어 있었으니 그야말로 ‘팔자’인 것 같다. 혈기 방정한 20대의 나이엔 서양의 춤을 추는 이들을 보며 남모를 고민과 번뇌도 많았지만 이철진 대표는 이제 승무를 추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승무를 추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길고 지난했던 시간을 지나 춤 안에서 편안함을 찾은 스스로가 대견한 것이다. 그리고 숨소리마저 소통할 수 있는 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자신의 승무로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을 통해 그는 춤꾼으로서의 길을 확신한다. ‘춤으로 먹고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이자 꿈이라 말하는 이철진 대표. 소극장 연극을 보며 관객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2007년, 15일 장기공연을 시작해 그 이듬해엔 30일, 2009년엔 100일 그리고 2011년에는 ‘천년승무 이야기’로 시즌 공연을 기획해 봄 공연을 마감하고 가을 시즌 공연을 지난 9월 20일부터 화요상설무대로 성균관 소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춤으로 먹고살겠다는 말에는 이 시대 춤꾼으로서의 자존심이 담겨있는 것이다.
공연 문의 02-747-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