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공연예술의 원류, 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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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탈춤의 역사는 굿에서 극으로, 주술에서 오락과 예술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를 주술로써 풀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혹은 사회문제를 예술적으로 풀어가고자 했던 것에서 시작한다. 탈춤의 기원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선사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조개탈(貝面), 삼국시대 호우총의 목심칠면(木心漆面),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의 시 ‘향악잡영’의 월전·대면·속독·산예와 황창무·처용무 등에 관한 문헌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원을 가진 전래의 탈춤, 즉 민속예능(民俗藝能)은 흔히 민속놀이, 민속오락, 민속예술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 내용이 오락적, 예술적 요소 등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농악이나 강강술래, 탈춤, 무당춤 등 대부분의 연희가 음악, 연극, 무용 등의 예술적 요소와 여기에 오락적 요소가 수반되는 총체성(總體性)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탈춤은 민중적 기반에서 자라왔기에 남에게 보인다는 공연 형태적, 예술적 욕구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발산하고 ‘푼다’ 하여 스스로 예술적 감흥을 얻고자 하는데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탈춤은 그 바탕이 한(恨)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거기서 머물지 않고 자유(自由)와 환희(歡喜)로 승화되는 낙천적(樂天的)인 춤이라 할 수 있다.
춤과 노래, 연극적 요소와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우리 탈춤은 엄밀히 말하면 가면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70년대에 대학가에서 가면극보다는 탈춤이라는 이름으로 연희되면서 ‘가면극’보다는 ‘탈춤’이 익숙한 용어로 이어지고 있다. 춤, 노래, 풍자 등의 단 하나의 장르가 아닌 여러 장르가 더해져 하나의 마당을 꾸미고 무대를 꾸몄던 탈춤은 공연예술의 원류로 조선 후기의 민중예술을 대표하는 우리 고유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탈춤은 지역마다 기후·지형·사회환경·역사·의식주·생업노동·종교의식·세시풍습·민중의식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지역별 탈춤의 연희적 특징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하회춤은 마을굿이나 서낭굿을 할 때 추던 춤으로 이 춤은 전문적인 춤꾼들이 아니라 마을의 주민들이 추던 것. 또, 마을굿과는 관계없이 시장 같은 데에서 연희되던 탈춤도 있다. 서북 황해도의 봉산탈춤, 중부지방의 양주별산대놀이, 경상도지방의 고성오광대, 부산 동래야류(野遊)와 같은 탈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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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은 민중의 한을 흥으로 승화한 공연예술이다. 한바탕 신명나게 놀고 나면 서글픔, 애환 등이 해소되고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흥겨운 에너지가 되곤 했었다. 지금 우리의 서글픔, 애환을 풀어줄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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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적, 해학적 유쾌함
탈춤은 탈이 갖는 은폐성, 상징성, 표현성에 덧붙여서 일반 서민들의 삶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다. 파계승과 몰락한 양반과 무당, 사당패, 거사와 기타 서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호색과 현실폭로, 풍자와 웃음 등을 보여준다. 그 주제는 파계승놀이와 양반놀이, 서민생활을 나타내는 벽사놀이, 무제, 파계승에 대한 풍자 등 조선시대 유교사상에 치우친 도덕의 추악함과 특정 지배계층의 비리를 풍자, 폭로하면서 민중, 즉 서민 스스로의 삶의 소중함, 애욕까지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이유는 본래 궁중에서 유래된 탈춤이 유교사상에 맞지 않는다 하여 궁궐 밖으로 몰리면서 광대들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 생계를 위해 연희하게 되었기 때문. 따라서 탈춤에서 극적 핵심은 양반들을 바보로 만들고 양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에 있다. 대표적으로 고성오광대의 ‘오광대놀이’, 가산오광대의 ‘양반과장’, 통영오광대의 ‘말뚝이마당’에 하인 말뚝이가 양반을 희롱하며 풍자하는 대목이 나오고 봉산, 은율, 강령탈춤의 ‘양반춤마당’ 역시 말뚝이의 양반층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북청사자놀음의 ‘애원성마당’과 남사당 덧배기의 ‘말뚝이마당’에서도 양반을 희롱하고 골탕먹이는 놀이가 나온다.
또한, 탈춤은 제의적 의미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릉단오가면놀이의 ‘시시딱딱이마당’에 벽사적 축귀무가 나오고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대내림마당’, ‘당제마당’에도 신맞이가 나오며, 가산오광대의 ‘오방신장무과장’에서 축귀의례, 송파산대놀이 및 양주별산대놀이와 은율, 봉산, 강령 등의 해서지방 탈춤의 ‘상좌춤마당’에서도 벽사적인 신맞이 의례가 나온다. 고성, 통영오광대의 ‘제밀지마당’과 가산오광대의 ‘할미영감과장’에서는 송신의례인 상여놀이가 나오고 동래와 수영야류의 마지막 마당인 ‘할미마당’에서도 송신의례로서의 상여놀이가 나온다.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탈춤은 양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양반을 공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불만의 표출이나 공격은 일상생활에서와는 달리 서민이 우월한 입장에서 진행되며 양반은 마치 재판이라도 받는 것처럼 취급되지만 탈춤은 재판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양반의 비리나 비판 등을 풍자적으로 엮어가면서 그 속에 준엄한 재판이 중심이 되고 있다. 희극적 탈놀이의 진가는 정상과 비정상의 갈등으로 전개되는 놀이와 춤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관중과 서민역할이 정상이 되고 양반역할은 비정상이 된다. 그리하여 비춰지는 여러 가지 갈등을 연극과 춤으로 표현함으로써 결국은 양반들을 우스꽝스러운 바보로 만들어 계층 간에 생긴 갈등을 풀고 새로운 활력을 얻으며 한편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는 대동춤판이 되는 것이다.
다시 신명나게 한바탕 놀아볼 때
우리는 탈놀이를 일컬어 연희문화(演戱文化) 혹은 공연문화(公演文化)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 흐르는 한국문화의 전통성은 무상한 역사적 환경이나 정치풍토 속에서도 용케 뿌리를 잃지 않고, 언제나 역경에 처할 때마다 인고의 저력을 보이며 강인한 민족혼을 담아내었다. 그리하여 다사다난한 근대 환경 속에서도 우리 탈춤의 맥락은 단절되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탈놀이의 춤은 조형예술 중 그 기원이 가장 오래된 춤이다. 또한, 탈놀이는 한국민속춤 중에서 농악 다음으로 전국성을 띠면서 향토적 특성을 가장 많이 지닌 민속연희로 세계적으로도 문화적 중요성과 더불어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분야이다. 자극적이고 테크닉적인 것, 즉 외적인 것을 지향하여 민족문화의 전승이 모호해진 시대다. 전통에 대한 관심과 수용으로 전통탈춤이 세계적으로 힘차게 비상하도록 우리 자신의 확고한 전통의식이 필요한 때이다. ![](/upload/logo_r[670][564].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