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한 매력의 전통 목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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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엇이든 우리의 옛것은 기교가 넘치고 화려하기보다는 자연을 추구함과 동시에 자연을 닮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옛 전통 가구가 그렇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낸 그것은 간결하고 절제된 선과 면에서 선인들 특유의 멋을 느끼게 한다. 장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사랑방에서 안방에서 부엌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삶을 사니, 가구라지만 그것은 흡사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나무와도 같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구는 전체적으로는 간결하고 단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지만 어느 곳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을 나타냈다. 자연환경에 따른 낮은 집과 온돌주거, 자연친화적 생활, 유교사상에 의한 남녀유별 생활방식 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좁고 낮은 방을 통과하고 이동이 쉽도록 너비와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가구가 만들어졌는데, 대체로 3~4층의 장, 책장, 찬장 등이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 가구의 처음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때로 토기에 곡식이나 연장 등을 보관해 사용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며 함, 상자, 탁자, 소반, 의자, 평상, 농 등으로 확대되어 만들어 내려 왔으며 조선시대 이르러 사대부문화가 꽃피면서 가구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특히, 유교사상이 근간이 되었던 조선시대는 남녀가 유별하여 안방, 사랑방으로 구분하여 생활하였는데, 이 때문에 안방가구와 사랑방 가구에 차이가 생겨났다.
여성들이 거처했던 안방 가구가 비교적 색이 곱고 밝고 화사하다면 남성들이 거처했던 사랑방은 단순한 구조의 간결한 선을 지닌 가구가 만들어졌다. 사대부의 곧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 특히 조선 중기에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문방(文房)생활의 영향을 받아 사대부가 기거하던 사랑방에는 서안, 경상, 문갑, 책장, 사방탁자 등을 놓아 사용했다. 학문을 연마하고 서실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방을 꾸몄던 것. 따라서 가구마다 선비들의 기품이 깃들어 있었다. 박명배 선생은 이런 사대부들의 곧은 정신과 격조 높은 생활문화가 깃들여진 사랑방 가구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해서 박 선생이 만드는 가구에서는 간결하면서도 선인들의 격조 높은 생활문화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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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세월 끝에 태어나는 목가구
전통방식의 목가구 하나가 태어나기까지는 족히 200~3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수령 200~300년의 나무를 찾아 그것을 자르고 켜고 손질하며 날씨에 따라 수축팽창 하기를 7년. 적어도 그 세월이 지나야 가구로써 만들어질 조건을 갖추게 된다. 이후 미리 구상해놓은 가구의 디자인을 도면으로 옮겨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만들어질 가구에 적합한 나무를 찾아 작업착수. 그렇게 박명배 장인의 손에서 태어나는 가구는 1년에 2~3점에 지나지 않는다. 일일이 그의 눈과 손을 거쳐야 하는, 스스로 엄격한 기초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용인시 영산공방 작업실의 나무는 7년 이상을 그와 함께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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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반 하나도 물론이요, 경상, 반닫이를 만드는 데에도 족히 300년의 세월을 한 나무라야 우리 목가구로서의 자격을 갖춘다. 어떤 인위적인 장식없이 오로지 나뭇결을 살려 장인의 손에서 태어난 우리 전통 목가구. 세월이 지날수록 그 은은한 멋을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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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배 소목장의 작업실 곳곳에 놓인 작업도구들과 디자인 도면. 밤낮없이 생각나는 대로 스케치하고,
나무를 다듬으며 전통방식 그대로의 우리 목가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그의 삶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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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 ›
“자연에서 나고 자란 나무를 그대로 살려내어 가구로 만드는 것이 옳지요. 옛날에는 산에서 나무를 구해 뗏목으로 옮겼으니 자연히 나무가 물을 먹어 팽창되었을 거고 며칠씩 운반하는 과정에서 건조되고 마르기가 자연스럽게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자연 상태에서 팽창수축 건조작업을 거치면 가장 좋은 가구가 될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오늘날은 그런 과정이 거의 사라졌지요. 해서 금방 구해온 나무는 일부러 작업실 밖에 쌓아둡니다. 저절로 비를 맞고 햇볕에 건조되게 하기 위해서죠.” 그렇게 나무들이 공방 안팎에서 보내는 세월이 7년이라니 작은 소반 하나도 허투루 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테다.
박명배 소목장이 나무 다음으로 집중해 작업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 도면이다. 지금까지 옛 전통 가구의 디자인을 살펴볼 도면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 선생의 이야기. 목가구라는 특성상 불에 타고나면 그만이라 전해져오는 선인들의 가구도 적지만, 그 가구들을 만들었던 도면은 더 찾아볼 수 없다고. 해서 박 선생은 생각나는 대로 스케치해두고 또 본 작업에 들어갈 때면 반드시 1:1사이즈로 도면을 그리고 여러 차례 수정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완성된 도면은 선생의 이수자들의 중요한 공부 자료가 된다.
“우리의 전승공예라는 게 목가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문서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아마도 장인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자료는 남겨 두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게 기술적이든 예술적이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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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닮은 아름다움
우리 전통 가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최고로 했다. 자연과 집이 어우러졌고, 집과 가구, 또 사람이 한데 어우러졌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탓에 우리나라의 나무는 1,000여 종이 넘는 나무마다 독특한 차이를 내며 선명한 나뭇결을 자랑한다. 그 나무 그대로의 결을 살려 만든 가구는 그 자체로 빛이 났고 기름걸레로 매일같이 닦아낸 할머니, 어머니의 마음이 더해져 특유의 깊은 맛과 멋을 더했었다.
무엇이든 풍족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저런 소재의 가구도 넘쳐난다. 하지만 긴 세월, 자연에서 태어나 선인들의 지혜와 곧은 정신이 깃든 가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수작업에 따른 가격도 가격이지만 디자인이나 기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도 한몫. 하지만 우리 전통 가구는 단아한 멋은 물론이요, 공간에 따른 기능도 최고라 할 수 있다. 박명배 선생이 자나 깨나 몰입하며 나무 고르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또, 도면 그리기에 집중하는 것도 바로 전통이라는 것에 디자인적 아름다움을 더해 기능적으로 우수한 우리 목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다. 시대가 변했고 사는 방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옛것을 가까이 두려하는 것은 그것이 자연으로부터 왔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바라며 선인들의 지혜 닮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한 멋과 기품이 깃든 우리 목가구의 멋, 오래도록 이어지길. ![](/upload/logo_r[670][579].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