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주인의 격을 말하다
플라스틱 부챗살에 시원한 바다와 커다란 광고카피를 화려하게 수놓은 부채를 흔들고 있는 옆 사람에게 시원하냐고 묻자, 시원한데 힘들다며 부채질을 대신 해달라고 주문한다. 그 부채는 주인을 잘 만나서 책상 한자리를 3년째 꿰차고 있었고 주인과 꽤나 잘 어울렸다. 부채가 주인의 격과 함수관계에 놓인 것은 아니지만 왠지 부채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옆에 있던 선풍기라도 깨끗이 닦아야 할 것 같아 이내 선풍기를 닦기 시작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전통 합죽선 전수자 엄재수 선생은 부채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흔히 볼 수 있는 홍보용 부채처럼 접히지 않는 부채를 단선이라 하고 접히는 부채를 접선이라 한다. 단선은 만드는 공정이 적어 비교적 쉽게 만들지만, 접선은 공정이 많고 만들기도 쉽지가 않다. 합죽선은 대나무 살을 발라내고 껍질을양쪽으로 맞붙여 만든 접선으로 공정이 까다로운 우리의 명품 부채다. 조선시대에는 보통 180도로 펼쳐지는 접선의 부챗살이 몇 개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따라 신분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합죽선의 부챗살이 50개 이상이면 앞뒤로 맞붙은 대나무살이 총 100개인 ‘오십살 백접선’이 되어 왕족들이 쓰는 부채가 되었다. 부챗살이 40개면 양반들이 쓰는 부채, 부챗살이 28개에서 32개까지는 중인들이 쓰는 부채였고, 그 밑으로는 대나무껍질을 양쪽으로 붙이지 않은 부챗살을 이용해 만든 민선이라는 부채를 썼다. 어떤 부채를 지녔느냐에 따라 신분의 구분이 가능했다는 것은 부채가 생활 속 필수품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합죽 오십살 백접선’이 탐나는 순간이다.
합죽선 전수자 엄재수 선생
부채, 생활을 넘어 삶이 되다
어린 시절 엄재수 선생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커다란 자전거에 부챗살을 업고 지고 산을 넘기도 했다. 불평하진 않았어도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인내를 요했던 시간들이었다. 특히나 낮 동안 아버지가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든 부챗살을 저녁이 되면 일흔여섯 개씩 묶는 작업을 했었는데, 한참 만화영화를 할 시간에 작업을 해야 했던 터라 부채가 한없이 귀찮은 존재였다고 했다. 기초 작업이 끝난 부채는 큰 자전거에 싣고 육방을 돌았다. 그곳에서 각 공정을 거친 부채를 다시 들고 공방으로 돌아와 마무리작업을 해야 하는 아버지를 돕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으로 이어받으라는 요구를 받지는 않았지만 부채가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어린 재수는 무던히도 그 일을 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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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에 어떤 칠을 했느냐에 따라 부채의 이름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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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는 기능성과 예술성이 함께 녹여진 작품이다
“아버지께서는 부채를 업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어요. 너무 힘든 일이라 아들에게까지 주고 싶지 않으셨겠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커왔던 저로서도 부채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저 아버지의 삶이니까 곁에서 돕는 정도가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요.” 그렇게 엄재수 선생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사회생활도 했었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 도리요, 이미 삶의 커다란 일부분이 되어버린 부채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부채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부채의 예술이 부활을 꿈꾼다
엄재수 선생이 전수하고 있는 부채는 합죽선이다. 합죽선은 변죽에 어떤 칠을 했느냐에 따라 부채의 이름도 바뀐다. 옻칠을 하면 합죽옻칠선 황칠을 하면 합죽황칠선, 거북이 등껍질로 치장을 하면 합죽대모선이 된다. 다양한 소재로 만드는 만큼 작업의 난이도 또한 높아진다. 변죽을 장식하는 재료의 종류에 따른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채의 예술적 완성도가 가장 높았던 때는 조선시대 문화부흥기였던 영·정조 때로 상아, 대모, 소뿔 등 지금은 금지된 재료들이 예술적으로 부채에 녹아들어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 부채의 제조기술 중 대부분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모두 끊어졌고 유일하게 합죽선이 복원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 들어온 일본부채는 당시 우리부채 가격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생활 속에 자리 잡았던 부채가 일본부채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장인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고급기술도 함께 사라졌다. 엄재수 선생의 부친인 무형문화재 선자장 엄주원 선생은 부챗살의 곡선을 복원해 내었다. 우리 부챗살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 부드러운 곡선이어서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이 편안하다. 엄주원 선생에 의해 복원된 머리 부분과 사라졌던 재료들을 이어받은 엄재수 선생은 이후 대부분의 합죽선을 복원해 내었다. 하지만 아직도 복원하지 못한 합죽선이 화각선이다. “황우뿔을 얇게 가공하면 투명각질이 만들어지는데 그것들을 부챗살에 붙였어요. 본래 장을 만들 때 화각을 이용해 화각장을 만들었는데 그 기법을 부채에 적용한 것이 화각선이죠. 부챗살에 적용하면 투명각질 안쪽으로 그림을 그려 붙이는데 은은하게 그림이 비춰줘 멋스러움이 신비로운 경지에요. 둥근 각대에 붙이는 작업이란 그림의 왜곡을 가져오기도 하고, 화각을 들뜨게 하기도 해서 완성하는 기술은 아직도 복원해내지 못했습니다.” 화각선은 엄재수 선생에게 아직 풀지 못한 숙제이자 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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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나전칠선
나전의 화려함을 합죽선에 접목한 작품으로 속살에 옻칠을 하고, 옻칠한 변죽위에 나전으로 ‘壽福多男子’라는 글자를 나전끊음기법으로 장식한 유물을 복원하였다. 그림과 글자를 넣어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미는 기법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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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서화선
예로부터 쥘부채의 선면은 많은 예술가들이 즐겨찾는 표현공간이었다. 특히 선비들은 자신의 이상이나 생활 속에 지켜야할 덕목, 시흥(詩興)에 나오는 글이나 그림을 선면에 담아 항시 보면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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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대륜칠선
합죽선의 일종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보다는 현재의 양산, 햇볕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 부채. 고관대작의 부인이나 왕실에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조에 나와 있는 기록과 유물로 남아있는 19세기 작품들로 보아 상당기간 제작된 부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현된 작품은 대나무에 옻칠을 하였고 종이에는 황칠을 하였는데 황칠의 효능 중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 완벽한 양산으로 사용되어진다(파평 윤씨 무덤 출토 유물복원).
부챗살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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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형태에 따라 바람의 세기나 시원함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죽선을 펼쳐놓고 세워서 보면 그 모양이 마치 부채춤 군무에서 봄직한 부드러운 S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볼 수다. 합죽선의 이런 모양 때문에 합죽선이 만드는 바람은 더 시원하다. 합죽선은 긴 부챗살과 짧은 살을 마주 붙여 유연하게 만들어 내는데, 휘어진 모양처럼 흔드는 힘만큼 부드럽게 휘어지며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여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킨다. 중국산 오죽선이나 단선의 바람과는 큰 차이이기도 하거니와 손에 감겨 편안하게 쥘 수 있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도 많은 바람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합죽선의 형태적인 특징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만들어진 전통의 시간과 옛 장인의 혼이 설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람이 없다면 지구가 망할까? 부채를 살피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큼직한 대나무에 살을 붙이고 한지로 고정한 큼지막한 단선을 집어 들고 천천히 부채질을 하자 머리카락이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자루에 바람을 가둘 수 있다고 하던데 그 자루가 없더라도 엄재수 선생의 합죽선은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아이올로스의 자루가 열린 듯 순풍은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었다. 무릇 합죽선은 바람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을 감추고 습격을 막고 또 장단을 맞출 때에도 충신처럼 함께한 존재였으니 한없이 착하고 이로운 그 모습을 바람신이 꼭 닮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 삶을 바치는 엄재수 선생의 올곧은 모습이 바람을 만드는 자의 자세임을 알고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도 배우고 따르길 바란다. 그럼 세상은 날마다 풍년 된 마음으로 행복할 텐데 말이다. ![](/upload/logo_r[670][58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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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챗살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엄재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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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방이지만 엄재수 선생 삶의 바람이 만들어지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