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현 칠기명장, 운명처럼 만난 나전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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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현 장인에게 나전칠기는 운명이었다. 14살 무렵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 근처의 무역회사를 드나들며 잔심부름을 하던 소년의 마음에 무지갯빛 나전칠기가 들어왔던 것. 망설임도 없이 그는 그것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40년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는 연구와 작업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공부하는 만큼, 노력하는 만큼 아름다운 빛을 내는 나전(螺鈿)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어렵게 나전칠기 명장 故민종태 선생의 공방에 들어가고 또 민 선생에게 인정받고 수제자가 되기까지 10년. 그는 단 한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한번이라도 하나라도 직접 만져보고 붙여보고 싶었을 뿐, 그래서 선배들이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에 앉아 선배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한번씩 작업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승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평생을 같이한 손대현 장인은 스승에게 우리의 혼과 문화를 배우고 무엇보다 나전칠기에 대한 자긍심을 배웠다.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손 선생의 작품 활동에 가장 중요한 가치다.
“언젠가 한번은 일본인이 일본의 전통 문양을 가지고 와 그것을 넣어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어요. 스승께서는 거절하시면서 우리 문양을 넣어 만들어도 괜찮다면 하겠다고 하셨죠. 일본인은 믿고 맡겨보겠다고 했고 얼마 후 작품을 받으러 온 일본인은 우리의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 나전칠기를 받아보고 큰 감동을 했습니다.” 손대현 장인은 그의 스승처럼 우리 것을 올곧게 지켜내어 알리고 싶은 바람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가 열정을 갖고 새롭게 시도하는 여러 작업들도 전통방식 그대로의 나전칠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문 당시 국가 기념품으로 제작했던 전자앨범 나전장식, 대기업의 최고급 TV 프레임 장식에 이어 최근 독일 유명 차의 내부 장식까지 그의 손에서 나전칠기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열매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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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당초문대모염주함
고려시대의 것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으로 염주를 보관하던 함이다.
무지갯빛의 완만한 곡선미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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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당초문서류함
검정 바탕의 나비 여러 마리가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표현.
어둠 속에서 보면 풀숲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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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당초문이층농
주로 옷 등을 보관했던 농으로 정교한 나전 기법이 손대현 장인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붉은색의 옻칠로 화려함을 더했다.
나무, 조개껍질, 바람, 습도의 예술
이미 고려시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나전칠기는 고려 문종시대(11세기)에 요나라에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동국문헌비고>에 남아 있다. 또 1272년 고려 원종 13년에는 ‘전함조성도감’이라는 기관을 설치하여 불경을 담기 위한 나전칠기함을 만들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국외로 흩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고려의 나전칠기 유물은 몇 점 안 되지만 지금도 발견되는 다양한 유물들에서 나전칠기를 적용한 부분은 파편일지언정 그 상태가 거의 온전하다는 것이 손대현 장인의 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에서도 나전칠기는 많이 만들어졌었다. 중국은 옻칠을 두껍게 하여 무늬를 조각하는 조칠기로 발전하였고, 일본은 칠화기법에서 발전된 금은가루나 색옻칠의 가루를 뿌려 무늬를 표현하는 마끼에칠기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만이 전통방식 그대로 자개무늬장식으로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나전칠기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30가지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다. 최초의 백골과정에 이어 생옻칠 그 후 다시 나무를 고르고 삼베나 모시 등의 천을 바른다. 바로 이 과정이 우리나라의 나전칠기가 천년이 흘러도 뒤틀림이 없도록 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또 황토와 생옻칠을 3회 이상 반복하고 드디어 자개를 붙인다. 그리고 또 토분작업, 생옻칠, 숯돌작업, 초칠, 중칠, 상칠 순서의 마감작업까지. 수도 없이 반복되는 과정에 만드는 이의 마음과 자연의 바람, 습도가 더해져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어떤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는 오로지 장인의 손과 자연의 섭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개를 붙이고 문양을 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다듬고 옻칠을 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허투루 하면 겉으로는 보기 좋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탈이 나고 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민 선생님의 가르침이기도 하셨습니다.” 손대현 장인은 현재 강의 중인 한국문화의집, 서울대학교 공예과 학생들에게도 옻칠을 입히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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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재료인 나전의 빛깔은 천년이 아니라 천만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영롱한 오색빛깔을 낸다. 소라, 전복, 조개는 시간이 흐르면서 두꺼워진 껍데기 안쪽의 진주층이 빛을 받으면 그 층 속에서 간섭현상이 생겨 오색영롱한 빛을 내게 되는 것. 이는 비눗방울이나 물에 뜬 얇은 기름막에 아롱진 빛깔이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무지개에는 없는 자줏빛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오색빛깔이 먹색, 흙색, 암적색을 내는 칠기와 어우러져 최고의 나전칠기로 태어나는 것. “천년 전에도 지금도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소재, 디자인, 작품면에서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외국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작품을 보고 매우 감동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전통문화가 그렇겠지만 홍보만 체계적으로 된다면 세계 최고의 문화가 될 터인데 그런 부족한 점들이 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가 작품 활동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강의를 하는 것도 나전칠기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직도 한단계 한단계 작업 과정이 넘어갈 때마다 그저 신기할 뿐이라는 손대현 장인. 조개껍데기에서 옻나무에서 만들어진 색은 물론이고 우리 흙이며 풀이며 자연 그 자체가 예술이요, 보석이란다. 천년의 시간동안 제 빛을 지키며 전해져 온 나전칠기, 앞으로 천만년은 더 빛나길. ![](/upload/logo_r[670][589].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