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화장(化粧)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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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벽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짙은 눈썹에 붉은입술, 연지 찍은 모습은 물론 귀걸이 팔찌 목걸이까지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선사시대 유물에서도 화장과 관련한 도구들이 나타났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의 화장(化粧)문화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속에 나타난 연지와 눈썹화장을 한 여인들의 모습, 옛 문헌에 기록된 일본으로 전한 백제의 화장기술, 토기가 주를 이룬 신라의 화장용기들에서 뛰어난 삼국시대 화장문화의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삼국시대의 화장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엷은 화장을 했으며 청정, 청결이 강조되었다. 고려시대는 불교와 청자의 발달로 더욱 화려하고 견고한 화장용구를 제작하여 널리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에는 금, 은, 청동 등 금속제 외에 청자로 대량 제조된 화려하고 견고한 화장품 그릇이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화장합인 청자상자모합(靑瓷象瓷母盒)은 신라의 토기 화장합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청자, 백자 등의 용기는 어떤 재질의 용기보다 화장품을 보관하기 적합한 것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기생을 중심으로 하얗게 분을 바르는 분대화장과 여염집 여성들의 엷은 화장인 담장으로 구분이 되는 등 화장술과 화장품의 발달이 도구에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유교윤리에 따라 사치스러운 화장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검소하고 실리를 강조한 화장문화가 생겨났다. 조선시대의 남성들은 며느리나 아내로는 건강하고 성격이 원만한 깨끗한 얼굴의 여성을 부덕(婦德)으로 여겼으며 소실이나 기생으로는 흰 피부, 가는 눈썹에 빨간 입술, 가는 허리 등을 선호하였다. 사대부 여성들은 특별한 날에만 복숭아빛의 옅은 화장을 해 흰분을 발랐던 기생들과 차이를 두었다. 이때부터 여염집 여인과 기생, 궁녀, 소실 등의 화장법에 명확한 차이가 생겼다. 이러한 변화는 삼국시대에 생성된 영육일치 사상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내면의 미와 외면의 미가 동일하다는 지(智) 덕(德) 체(體) 합일 사상을 추구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안정복이 번역한 소설 <여용국전(女容國傳)>에 등장하는 화장품과 화장도구는 경대, 거울, 연지, 곤지, 분, 향, 면분, 밀기름, 비녀, 참기름, 모시실, 족집게, 얼레빗, 참빗, 양칫대, 비누, 세숫물, 휘건, 수건 등 그 종류만 20여 종이 넘는다. 또, 사대부가의 가정백과인 <규합총서>에는 여러 가지 두발 형태와 눈썹 그리는 법, 입술연지 바르는 법은물론 남성의 신분이나 지위를 상징하는 남성화장법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조선시대의 화장술과 화장도구는 상당히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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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제국은제이화문분합 19세기 후반에 대한제국 황실용으로 만든 은제분합이다. 뚜껑 중앙에는 대한제국 황실문장인 오얏꽃을 양각하였고 그 주변으로 복을 의미하는 박쥐문을 파란으로 장식하였다.
2 빗접 19세기 것으로 경대와 모양이 거의 같고 기능도 흡사하나 거울이 없어 빗접이라고 한다. 각종 화장품, 빗, 비녀 등을 보관하였다.
3 영락비녀 19세기 것으로 옥으로 된 몸통에 다양한 보석과 떨철로 봉황을 달았다. 화려하게 꾸민 영락비녀는 상류층에서 경사스러운 날에 사용했다.
자연에서 얻은 화장품·화장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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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용국전(女容國傳)>에 등장하듯 조선시대에는 20여 가지가 넘는 화장도구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경대. 경대는 조선 후기 유리 거울이 유입되면서 빗접에 거울을 부착한 것으로 화장함과 거울의 기능이 합쳐진 것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접어두었다. 여성용은 화각, 나전 칠 등 색채가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을 많이 썼다. 남성들도 상투를 틀거나 의관을 바로잡을 때 경대를 사용하였는데 서랍이 하나 달린 소박한 멋이 있었다. 거울은 유리거울이 등장하기 전에 구리와 주석, 아연 등을 합금한 동경이 주로 사용되었다. 동판을 매끄럽게 다듬어 얼굴을 비추었으며 반대쪽은 중앙에 꼭지가 있어 식물문, 동물문, 인물문, 문자문 등을 새겨 장식하였다. 빗은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선인들은 단정한 차림을 중시하여 매일 아침의 첫 일과를 빗질로 시작하였다. 머리카락을 정리할 때는 성근 얼레빗으로 엉킨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한 뒤에는 빗살이 촘촘한 참빗으로 마무리하였다.
분화장으로는 쌀, 서속(黍粟), 분꽃씨 등으로 만든 미분(米紛)과 납성분이 포함되어 백분에 비해 점성이 뛰어난 연분(鉛紛)을 썼다. 백분은 부착력과 퍼짐성이 약해서 얼굴의 솜털을 제거한 후 분을 물에 풀어 세수를 하고 분첩에 분을 묻혀 토닥거렸다. 분첩은 풀솜으로 동그랗게 뭉치고 누에고치로 거죽을 싸서 만들었다. 풀솜은 실을 켤 수 없는 허드레고치를 삶아서 늘여 일정한 두께로 겹쳐서 만든 솜을 말한다. 연지는 주사(朱砂)와 홍화(紅花)로 만든 색조 화장품으로 도장형태나 연지첩 또는 서민들은 새끼손가락을 이용하여 찍었다. 평상시에는 볼과 입술에만 연지화장을 하고 혼례 때는 이마연지(곤지)도 같이 찍었다.
화장품의 재료는 대부분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로 백분은 분꽃시를 맷돌에 갈아 체로 걸러 분합에 넣어 보관하였다가 사용하고 입술화장은 홍화와 주사가루를 사용하였다. 눈썹화장 미묵의 재료는 꽃잎을 태운 재, 아궁이 혹은 굴뚝의 그을음 등이 이용되었고 분을 바르기 전에 밑 화장으로 사용한 화장수는 수박, 오이, 수세미 등의 줄기를 잘라서 나오는 수분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여성들은 향낭을 지니고 다니기도 했는데 난의 꽃이나 향나무, 사향을 향낭에 넣어 사용하거나 도자기에 기름과 함께 재어 두었다가 손끝에 찍어 사용하기도 했다. 화장품 제조에는 기름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수유, 동백, 아주까리기름은 그 자체로 머릿기름이 되었고 참깨, 살구씨, 목화씨, 쌀, 보리의 기름은 화장품 원료로 쓰였다. 기름병은 머리 기름용, 향유용, 화장수용 등으로 구별되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도자기기 만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화장그릇과 도구들이 만들어졌다. 고려시대는 청자로 만든 기름병, 분합, 분접시 등이 있었다면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나 백자, 백자청화로 만든 화장그릇이 매우 유행하였다. 특히 백자청화 화장그릇에는 여러 가지 무늬들이 그려졌는데 대부분 복을 기원하는 무늬, 동식물의 자연무늬 등으로 그려 넣어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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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경 17세기 것으로 손잡이가 달린 거울로 뒷면에 수복 문자무늬와 학, 거북 등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장생문이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2 황비창천팔능형경 고려시대 동경으로 유리 거울이 등장하기 전에는 동판을 매끄럽게 하여 거울로 사용하였다.
3 보석삼작노리개 19세기 것으로 원삼이나 당의, 저고리 고름에 주로 찼다. 노리개가 한 벌이면 단작, 세벌이면 삼작노리개라 하였으며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으로 구분하였다.
내외적 아름다움의 조화미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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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장신구는 상류층 여인들에게만 허용되었고 일반서민은 혼례 때를 제외하고 금지되었다. 그러나 기녀들은 제약을 받지 않았다. 상고시대부터 즐겨 사용했던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은 유교를 중요하게 여기는 조선시대에는 사용이 금지되어 발달하지 못하였다. 대신 노리개나 머리장식이 널리 애용되고 발전되어 조선시대에 장신구의 특성을 이루었다. 노리개는 여러 가지 문양, 덕담의 문자를 새겨 장수와 복을 빌거나 액을 피하는 것으로, 어떤 염원을 위해 차기도 했고 향갑, 향낭, 침낭, 장도와 같이 실용적인 면에서 찬 것도 있었다. 침낭은 바늘을 꽂아 두던 바늘집으로 부녀자들이 늘 사용하는 바늘을 손쉽게 찾아 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일반 부녀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노리개 중 하나였으며 장도는 부녀자의 절개를 상징하며 혼신용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남녀가 함께 차기도 했다.머리장신구로는 쪽찐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쪽머리에 꽂던 비녀가 대표적인데 영·정조시대 가체금지령 이후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보편화되었다. 이후 점차 장식성이 강조되어 신분, 용도, 계절에 맞춰 사용하였는데 은파란비녀, 옥비녀, 영락비녀, 죽비녀, 용비녀 등으로 다양했다. 가르마를 탈 때 사용하였던 빗치개는 비녀와 함께 쪽찐 머리에 덧꽂는 머리장신구로도 애용되었으며 같은 용도의 뒤꽂이도 매화, 국화, 나비 등의 모양이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아름답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 우리의 화장문화는 그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왔다. 고대유물이나 기록에서 발견되는 화장문화를 살펴보면 우리 여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내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는지 알 수 있다. 신윤복, 김홍도의 작품에서도 우리 여인들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1922년 ‘박가분’을 시작으로 신식 화장품이 보편화되면서 우리 여인들은 더 적극적으로 화장하고 치장하기 시작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극대화 되었을지언정 우리가 정말 가꾸어야할 내면의 아름다움은 어떠한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옛 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외면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우리나라 여성들만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부각되길, 온갖화려한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기대해본다. ![](/upload/logo_r[670][592].png)
자료사진제공. 코리아나화장박물관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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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화장박물관化粧博物館은 한국 옛 여인의 화장 문화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고자 설립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문 화장박물관이다. 코리아나 화장품의 창업자인 유상옥 회장이 지난 40년간 소중하게 모아온 5,300여 점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한 화장박물관은 서울 서초동 본사와 신사동 스페이스 씨, 천안 송파기술연구소 내 총 세 개 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은 남녀 화장도구를 비롯하여 화장용기, 장신구 및 생활문화에 관련된 유물 300여 점을 전시하여 한국 화장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전통천연화장재료와 제조도구를 함께 전시하여 선인들의 지혜와 미감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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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명절 휴관 / 일반 : 3000원, 학생 : 2000원, 10인 이상 단체 : 1000원 할인, 무료 : 65세 이상, 장애우, 3세 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