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두시. 북촌에 자리한 고즈넉한 고택인 북촌문화센터에 전통염색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다. 사랑방에 앉아 듣는 우리 색에 관한 강의는 공간의 정서와 어우러져 봄날 주말 오후의 풍경으로는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봄볕이 나른하게 내리쬐고 마당에 길게 늘어진 빨랫줄에 걸린 자연색 천들이 바람에 하늘거릴 때는 가슴이 설레었다. 홍루까 선생은 주말이면 북촌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면서 전통염색기법을 가르치고 주중에는 전국을 누빈다. 어떤 이는 연예인스케줄이라고 한단다. 강의, 수업, 세미나와 컨퍼런스까지 소화하지만 그저 즐겁기만 하다.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전통염색은 홍루까 선생에게 일이면서 놀이이기도 하다.
그의 염색작품을 보면 단순히 자연재료를 통해 천을 염색하는 것뿐만 아니라 색깔과 염색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색을 통해서 표현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 속에는 겹겹이 산등성이 위로 새가 날고, 전통문양이 꽃을 피우고 있다. 염색그림 뿐 아니라 천의 재질을 살려 만든 작품 속에서는 장대한 역사가 느껴지기도 한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전통 쪽염색의 명맥을 잇는다는 명분 외에 창발적인 작품을 통해 현대문화에 녹여내고 있는 그이기에 단순히 전통염색을 즐긴다는 표현이 조금 모자라게 느껴지는 바도 없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어나 문화재가 된다는 것
장인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걸까? 자격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이 있다면 좋겠지만 관심이 많고 잘한다고 해서 장인이란 이름을 주지는 않는다. 염색장을 꿈꾸는 홍루까 선생이 장인이 되기 위해서 하고 있는 노력을 본다면 그 조건을 간음할 수 있을까? 쪽염색을 이야기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홍루까를 빼놓을 수 없지만 그는 아직 인간문화재가 아니다. 쪽염색을 사랑하고 온 맘으로 연구하고 또 부지런히 결과를 내지만 그저 염색에 대한 기술만을 가진 인간문화재는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공부와 연구를 놓지 않고 있다. 현재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그는 적어도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전통 기법의 전승이라는 부분 외에도 색의 역사와 색이 발현되는 과정과 색에 스며 있는 정서와 문화까지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의를 통해 알리는 만큼 공부도 많이 한다. 그런 그이지만 처음부터 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건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일이었고 누이의 일이었기에 도울 일일 뿐이었다. 염색은 그저 그런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염색장인의 꿈을 꾸었던 건 순전히 쪽빛 때문이라 했다. 단순히 일로 보던 쪽빛이 어느 날 하늘빛과 어울려 눈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왔고 쪽빛을 갖고 싶다 생각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이 된 것이다. 설레었고 맥박이 빨라지는 흥분을 느낀 순간이었다. 20년이나 어머니를 도와 해오고 보아왔던 천연의 염색천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쪽빛과 하늘이 겹치는 찰나였는데 그날 이후 제 인생이 선명해졌어요.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해서 전통염색이 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이 일이, 이 길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운명처럼 홍루까는 쪽빛과 함께 무형문화재의 꿈을 향해 몸을 틀었다.
![](/upload/kr201106-2-4.jpg)
홍루까 선생이 북촌문화센터 뒤뜰에서 쪽염색한 천을 널고 있다. 우리 땅에서 나는 풀 중 유일하게 푸른빛이 나는 쪽풀은 1960년대 말 화학염료에 밀려 사라지기도 했었다. 은은한 빛이 하늘빛 같은 쪽염색. 그는 쪽빛 탐구생활이 무척이나 즐겁다고 했다.
![](/upload/kr201106-2-5.jpg)
손길이 정성스러워야 색이 난다
쪽염색 연구가 홍루까 선생은 염색의 시작은 정성스러운 손길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가 정성이라고 말할 때는 왠지 선조의 혼 같은 것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을 거쳐 만들어내는 천연염색의 과정은 농부의 벼농사와 닮았다. 씨앗을 뿌리고 모를 심고 피를 뽑고 마침내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듯이 염료가 되는 풀을 키우고 염료를 우리고 천을 말리고 염색물에 담고 널어 하늘을 하늘빛으로 물들이는 모양이 닮아 있는 것이다. 화학염색처럼 딱 떨어지는 색이 아니라서 인간적이고 모든 과정에 제 손길을 담아야 해서 더욱 인간적인 우리의 색, 자연의 색. 손길 한 번 관심 한 번 더 주면 더 아름다운 색이 난다는 홍루까 선생의 말은 간편하고 쉽게 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해도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은 변함없이 오래간다는 진리를 자꾸자꾸 곱씹게 했다.
왜 쪽빛인가
쪽빛은 쉽게 얻어지는 색이 아니었기 때문에 홍루까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국내에서 쪽풀이 사라졌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롭다. 그 사실이 주는 의미는 국내에서 천연염색으로 청색을 낼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쪽은 자연에서 유일하게 청색물을 들여 주는 식물이다. 화학염료가 들어온 60년대 말 쪽염색에 대한 관심이 줄었고 쪽풀도 멸실되고 말았다. 전통매듭을 연구하는 홍루까의 어머니 조수현 여사는 매듭실을 물들일 쪽풀을 찾았지만 쪽풀도 쪽염색을 하는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나주에서 쪽염색을 한다는 윤병윤 선생을 찾았지만 쪽풀이 없으니 쪽염색이 있을 리 만무했다. 조수현 여사는 지인을 통해 일본에서 한줌의 쪽씨를 구해와 나주의 윤병윤 선생에게 전해주었고 그렇게 쪽풀도 쪽염색도 재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뭇가지, 풀, 꽃잎 등 자연의 모든 것들이 천연염색의 재료가 돼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풀이나 꽃이 갖고 있는 색깔이 그대로 염색이 되지 않아요. 쉬운 예로 봉숭아물이 그렇죠. 봉숭아꽃의 초록잎사귀를 손톱에 물들이면 빨간 물이 들지요. 그런데 또 자연재료의 80% 이상은 염색을 하면 노란 빛을 내요. 청색을 내는 자연재료는 유일하게 쪽뿐입니다. 그래서 염색장인으로 유일하게 쪽 염색만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죠.” 그렇게 어머니로부터 운명처럼 이어진 쪽염색의 역사는 홍루까에게도 운명처럼 이어졌다. 쪽염색 장인, 인간문화재가 그의 꿈이긴 하지만 그 꿈으로 가는 길이 푸른 쪽빛으로 채워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홍루까는 쪽빛을 사랑하고 쪽빛을 전하고 다음 세대가 쪽빛을 우리의 전통색으로 물들여 계속해서 잇게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바람과는 상관없이 홍루까의 쪽빛탐구생활은 여전히 즐겁다. ![](/upload/logo_r[670][598].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