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가지 자연 재료가 만들어낸 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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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활을 잘 다루는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중국에 창, 일본에 칼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활’이 있었던 것. 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로, 삼국시대부터 백성에게 궁술을 익히도록 했으며 이 궁술을 인재 등용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고구려 시조 주몽, 조선 태조 이성계, 조선 명장 이순신은 뛰어난 명궁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활은 ‘각궁’이라 하여 서양의 활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서양의 활이 단일한 소재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각궁은 대나무, 뽕나무, 물소뿔, 소힘줄, 화피(벚나무껍질) 등 복합적인 재료에 민어부레라는 천연 접착제로 조합해 만든 합성궁. 이 합성궁은 시위를 풀었을 때 활이 굽는 것이 특징으로 이렇게 굽어지는 활을 만곡궁(C자형)이라고도 한다. 보통 서양의 활이 2m 이상인 반면 우리나라의 각궁은 1.2~1.3m로 길이가 짧아 탄력과 복원력이 뛰어나고 사거리가 길다. 때문에 달리는 말 위에서 활쏘기가 매우 용이했다. 이러한 각궁의 우수성을 안 중국 청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우리나라에 조공으로 각궁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전국에 이 각궁을 올리는 인구는 1만 명 정도. 탄력과 사거리가 긴만큼 다루기가 어려워 최근에는 각궁의 특징을 살려 개량한 개량궁이 대중화되어 있다. 국궁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임금은 물론 문무백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행해지던 호국무예였다. 곳곳에 활터들이 생겨났고 임금과 문무백관은 활터에서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갑오경장 이후 무과제도가 폐지되고 현대식 무기인 총이 등장하면서 국궁은 쇠퇴했다. 국궁을 다시 살려낸 인물이 바로 고종황제. 고종황제는 경희궁에 황학정을 세우고 무기로서가 아닌 백성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스포츠의 일환으로 국궁을 계승 발전시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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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살에는 지역마다 생산되는 고유이름과 고유번호가 붙기도 한다.
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화살이다.
2. 각궁은 습도에 민감하다. 천으로 감아 일정 습도가 유지되는 보관함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3. 각지. 각지는 쇠뿔로 만들며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낀다.
엄지손가락이 저마다이기에 깎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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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은 무엇보다 예의가 중요하다.
한 사람의 화살이 과녁에 떨어졌을때 다음 사람이 활을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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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궁을 올리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활의 균형, 활을 올리는 마음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제기(反求諸己)
황학정 사두 신동술 선생도 처음 국궁 입문 때부터 지금까지 32년 동안 각궁을 올려 왔다. 각궁은 날씨와 기온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활시위를 당기기까지 많은 과정을 필요로 하는 예민한 활이다. 각궁은 활을 잘못 올리면 금방 튕겨져나가고, 제대로 활을 올렸다 하더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제힘을 받지 못해 날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여기에 궁자의 마음마저 어긋나 있다면 활은 순식간에 손에서 사라지고 만다. “활을 잡는 순간부터 활시위를 당기기까지 온통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려면 성실해야 하는데 이는 활을 잡는 데 있어 가장 기본입니다. <맹자>, <중용>에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제기(反求諸己)’라 하였습니다. 국궁의 가르침이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쏘아 올린 화살이 명중하지 않은 것은 활과 화살의 탓도 아니요, 바람의 탓도 아니니 그 원인을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늘 손끝에서 화살을 떠나보내며 발이부중 반구제기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신동술 사두가 반구의 의미를 담아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욕심을 냈고 그래서 몇 번 활을 부러트렸다. 그때마다 선배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온전히 활에만 집중하라고.” 각궁을 처음 올리기까지 그는 무술(武術)이아닌 무예(武藝)와 무도(武道)를 연마했던 것. 그래서일까, 32년 국궁을 연마해온 그의 삶은 언제나 낮은 자세로스스로를 살피고 반성하는 일의 반복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욕심이 없어지더라고.
“처음 활을 잡았을 때, ‘어디, 활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마디로 활에 좀 덤볐죠. 그때마다 번번이 화살은 날아오르지 못하고 제 앞에서 떨어졌습니다. 더 욕심을 냈죠. 마음에는 백발백중 하겠다는 욕심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활과 씨름을 했을까요? 어느 날 마음이 ‘탁’하고 풀어지면서 제 자신을 보게 되더군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처음 온전하게 제 모습을 보았다고 할까요?”
소리 없이 강한 전율
두 다리로 서서 활시위만 당기는 것이 무슨 무술이고 무도이고 무예일까 싶었다. 일상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생각한다면 운동이 되기나 할까. 신동술 사두의 도움을 받아 활시위를 당겨본다. 생각 밖으로 몸에 반응이 나타난다. 사두의 가르침대로 몸의 떨림을 없애려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되는데 전신운동이 따로 없다. 또, 활시위를 당기고 놓는 동안에는 복식호흡을 해야 하니 배에 힘이 들어가고 이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뱃심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온몸에 괜찮은 전율이 느껴진다. 이렇게 반복해서 활시위를 당기다 보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소화기관도 건강해진다고. ‘이 때문에 그토록 활시위를 당겼던 것일까?’ 국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다. 국궁은 전통무예일 뿐만 아니라 일백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 스포츠로 발전해왔다. 한때 무기로 사용되던 무술이 오늘날의 스포츠로 변한 예는 많다. 펜싱이 그러하고 사격이 그러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국궁보다 양궁을 더 많이 안다. 그동안 소외당했던 국궁은 당당함과 넉넉함을 추구해왔던 선조들의 풍류가 담긴 역사이자, 호국정신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가 지켜야할 충분한 가치가 깃든 전통이다. 한발의 화살에 깨달음 얻고 스스로를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궁. 활을 잡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흔의 백발 신사가 인왕산골 꽃샘추위를 이겨내며 활시위를 당긴다. 이젠 힘이 쇠해 활시위를 잡은 팔이 부들부들 떨리기는 해도 꼿꼿한 허리 하며 맑은 정신은 청춘 못지않다. “골프도 하고 다 해봤어. 국궁만큼 좋은 게 없지. 잡생각 안 하고 그저 날아가는 화살만 봐. 정신이 맑아져.” 굳이 과녁을 명중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아흔의 백발 신사는 조금이라도 활시위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끝까지 활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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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 일제시대에 터를 옮겨야 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여전히 황학정은 국궁 일번지로 통한다.
금발의 그녀, 국궁의 매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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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펫쳐. 새벽녘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요즘 그녀의 즐거운 일상이다.
독일에서 온 가브리엘 펫쳐(Gabriele Fecher)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황학정에 찾아올 만큼 국궁 사랑에 빠져 있다. 외국인이 우리의 전통 무예를 즐긴다는 것이 낯설지만 이곳에서 그녀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국궁으로 아침을 맞이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인왕산을 등에 지고 아침 해가 세상을 밝히며 뜨는 모습을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죠. 그래서 늘 아침에 이곳을 찾습니다.” 2년 전 대학교수로 근무하게 된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가브리엘. 현재 한 디자인스쿨의 교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활쏘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꼭 배워보고 싶었지만 독일에는 마땅한 장소도, 교육 프로그램도 찾을 수 없었죠. 그런데 한국에 와서 오랜 숙원을 이뤘어요.” 양궁 강국으로 세계대회를 휩쓸고는 한국이기에 쉽게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그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뜻은 통한다고 했던가.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친구와 함께 인왕산 산책로를 오르던 중 황학정을 발견한 것. “반가운 마음과 함께 걱정도 됐어요. 외국인으로서 한국 전통무예를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녀의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회원들의 도움으로 국궁에 대한 흥미는 나날이 더해 갔다. 국궁을 시작한 지 벌써 1년하고도 반. 멀리 있는 과녁을 빠르게 관통하는 양궁이 서양의 정서를 닮았다면, 활을 당기고 조준하는 과정은 물론 화살이 과녁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집중해야 하는 국궁은 한국의 정신을 닮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국궁은 단순한 표적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죠.” 흔히 국궁은 남성적이고 강한 무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바라보는 국궁은 아름다움의 무예이다. 자연 속에 자신을 맡기고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의 아름다운 변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겉으로는 강하지만 안으로 섬세해지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까지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는 고국인 독일로 돌아갈 것이다. 방학 동안에도 국궁을 할 수 없어 안타까웠던 그녀로서는 앞으로의 일이 큰 고민이다. “독일에는 한국처럼 국궁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없거든요. 기회가 되면 고향에 국궁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가브리엘. 그녀의 모습에서 마음에 집중하는 삶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우리의 전통 무예 국궁의 미학을 읽어 본다.
한때 국궁은 양궁에 밀려 양궁 사람들에게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전통, 역사 속의 그 무엇이 되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국궁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었다. 전국 300여 곳에 활터가 활발하게 운영 중이고 4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활을 잡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른 몸과 마음을 세우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의 전통 각궁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황학정 신동술 사두는 국궁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다. 국궁 문화가 더 활발해지고 우리 삶 가까이로 더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소리 없이 강한 백년의 힘, 그것은 국궁이었다. ![](/upload/logo_r[670][604].png)
(자료참조 : <재조명 되어야 할 국궁문화> 김기훈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