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아빠의 사업 실패, 엄마의 교통사고가 한꺼번에 겹쳐 한동안 우울했다.내가 깊은 시름에 잠겨있자 어느 날 친구가“새벽시장에 가지 않을래?”라고 물어왔다. 친구는“그냥 맘 편히 사람 사는 모습들이나 보자.”라고 할뿐…. 말과 행동에 국화꽃 향기가 묻어나는 친구라 느꼈다.
우리는 새벽 1시쯤 재래시장에 도착했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다른 많은무리의 사람들. 각자의 삶의 방식도 다르고, 얼굴에 담겨진 표정과 마음속 깊은 생각도 각자인 사람들 틈에 끼여 우리는 한동안 걸었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생경했다. 그들은 이것저것 구경하며 만져보고 냄새 맡고 웃고 떠들며, 때로 가격을 깎느라 상점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둘, 셋씩 짝을 이뤄 선술집에서 사발로 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걷다가 우리는 예쁜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좌판 앞에서 멈춰 섰다. 한 장에 6,000원. 너무 쌌다. 석장을 고른나는 값을 더 깎아보자고 주인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인 끝에 2천원을 깎을 수 있었다. “아가씨, 예뻐서 깎아준 거야.”라는 옷장수 아저씨의 걸쭉한 농담이 싫지않았다. 이게 재래시장의 맛이었다. 그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잔뜩 우울해 있던 나는 값을 흥정하는 동안어느새 기운이 났다.
“얘, 2,000원 굳었네. 닭똥집에 소주 한잔 할까?”나의 꼬드김에 친구는“그것뿐이겠냐. 내가 붕장어 안주쏠게”라며 흔쾌히 동의한다. 우리는 포장마차로 갔다.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새벽시장 선술집의 행렬…. “무슨 사람들이 잠도 안자고 이렇게 돌아다닐까? ”라며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친구는“응, 모두 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야. 저기서 옷 떼다가 전국을 돌며세일하는 거잖아. 술집 오는 사람들은 일마치고 기분푸는 거지.”친구는 아는 것도 많다.
“기분 좀 풀렸니? 네가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사람 구경 한번 시켜주고 싶었는데. 재래시장에와보면 정말 진솔하게 모두 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모습이 보이거든.”하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언니 같은.
새벽 3시쯤 우리는 오뎅 국물에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먹고 시장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난 설핏 꿈을 꾸었다. 솜털같이 안락한 침대에 누워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느꼈다. “행복보험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 그것이 넘칠 때 미리넣어 두었다가 기분이 우울하고 마음이 아플 때 보험을 찾아서 치료할 수 있게 말이지. 호호호~”내 어깨를 토닥이며 맑게 웃어주는 친구의 말 속에는 재래시장의 진한 인간 내음이 물씬 묻어나왔다. ![](/upload/post_content_logo[167].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