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인상여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나라 왕을 보좌하며 진(秦)나라로부터 귀중한 보물인‘화씨의 옥’을 지켜냈다.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골탕 먹이려 한 회견에서도 대단한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나라의 명예를 높이고, 두 나라간우호를 돈독히 하는 성과를 냈다. 조나라 왕은 귀국하는 즉시 인상여에게 그간의 공을 치하하며 상상(上相)이란 벼슬을 주어 정승인 염파보다 윗자리에 앉게 하였다.
염파가 분이 솟아 투덜거린다. “나는 전쟁에 나가서 생명을 걸고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반면에 인상여는 한갓 세 치 혀를 놀려 수고한 일밖에 없다. 그런데 인상여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내 반드시 그놈을 쳐 죽이리라!”
이러한 염파의 말이 인상여에게 전해졌다. 그 후로 인상여는 늘 병들었다는 핑계로 궁중조회에 나가지 않고 염파와 만나기를 무서워하는 듯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인상여는 염파의 행차를 보았다. 인상여는 정승 염파에게 들키지 않도록 피한 후에 염파가 지나간 후에야 큰길로 나왔다.
그 날 인상여의 부하들은 격분했다. 부하들은“겁 많은 대감을 창피해서 모시지 못하겠다.”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인상여가 부하들에게“염파 장군과 진왕(秦王) 중 어느쪽이 더 무섭소?”하고 묻자, 부하들은 모두“진왕이 더 무섭다.”고 대답한다. 인상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지금 천하에 진왕을 상대할 나라는 없소. 그런데 지난날 나는 진왕을 꾸짖고진나라 신하들을 모욕했소. 어찌 한낱 염파 장군을 두려워할 리 있으리오. 강대국인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우리 두 사람이 싸운다면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장이 날 것이오. 그러면 진나라가 즉시 우리 조나라를 칠 것이오.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오. 내게는 사사로운 원수보다 나라가 더 소중하오.”이 말을 듣고 인상여의 부하들이 탄복했음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난 염파 장군은 웃옷을 벗고는 등에 형장(刑杖)을 짊어지고 인상여의 부중으로 가“이 몸은 워낙 뜻이 좁아서 대감의 너그러운 도량을 몰랐습니다. 이제 죽어도 그 죄를 씻지 못 할줄아오.”라며 사죄했다. 인상여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염파를 부축해 일으키며“우리 두 사람은 다 같이 이 나라의 신하인데 이렇듯 사죄를 하시다니오.”하였다. 그러자 염파는“나는 이제부터 대감과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 되겠소. 비록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겠소.”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문경지교(刎頸之交)’는 이와 같은 인상여와 염파의 우정에서 비롯된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우선 생존을 위하여 의식주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친구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사전에는‘친하게 사귀는 벗’을‘친구’라고 적고 있다.
나이가 같으면, 직장이 같으면, 같은 학교를 졸업했으면 친구일까? 그보다는 인상여와 염파같이 서로를 진실로 이해할 때 진정한 친구관계가 성립될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치 않는 우정은 없더라도 외로울 때 함께하고, 동고동락할 수 있는 친구는 있어야 이 험난한세상을 살아가는 데 의지가 되지 않을까.
친구도 자주 만나야 우정이 지속될 수 있다. 소식이 뜸한 친구를 찾아보고, 어려운 친구는없는지 살펴보면서, 우정을 돈독히 하여 우리의 삶을 외롭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upload/post_content_logo[244].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