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가족들의 가을의 편지이야기
전남체신청 우정사업국장
정순영
내가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아버님은 나에게 우체국 직원이 되라고 늘 당부하셨다. “순영아, 너는 꼭 우체국에 들어가거라. 6.25전쟁 중에도 우체국 사람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거야. 내 고단한 삶이 너희들한테까지 되풀이되면 안 돼.”
35년 전,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던 때도 나는 우체국 직원이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우체국 직원이 되자 아버지는 나에게 고향의 우체국장이 되기를 또 되뇌셨다. “순영아, 장평우체국장님 얼마나 점잖고 훌륭하시더냐? 너도 꼭 이 다음에 고향 우체국장이 한번 되어 봐?”
고향마을 개천가에 판자로 외벽을 두른 장평우체국에는 아버지께서 늘 칭찬하시던 키 큰 국장님이 계셨다.
초등학생시절 학생저금이나 서울 형들께 편지를 부치러 그곳에 가면 국장님의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이 어린 내가 봐도 무척 좋아 보였다.
우체국에서 연륜이 쌓여 승진할 때마다 나는 멀리 옮겨 다녔다. 강화, 가평, 여수, 동해우체국을 에둘러 올해 4월, 전남체신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33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소망대로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생전의 어머니께서는 내가 지방우체국으로 자리를 옮기면 관사의 묵은 때와 텃밭을 정갈하게 손질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순영아, 너무 멀리 왔다고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잘 있다 오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북과 만주를 오가면서도 그쪽 사람들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으셨다. 떠나실 땐 모두가 아쉬워 하셨어. 부디 몸을 잘 보존하고 많이 베풀어라.”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지혜와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어서 타지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는데 큰 버팀목이 되었다.
우체국에 들어온 지 어언 34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 아름다운 여정이다.
나는 이러한 궤적과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아름다운 기별>이라는 책을 펴내려 한다. 이 책에서 꿈과 사랑의 메신저인 집배원들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한 사연을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동해국장과 여수국장 때 있었던 직원들과의 소담스런 일상을 담으려 한다. 사랑스런 분들에게 띄운 편지와 외부에 기고한 글들도 ‘우체국 뒤안길’로 묶을 것이다.유년의 아스라한 기억과 지구촌의 풍물과 아버지에 대한 회고도 빠질 수 없다. 아버지의 권유가 있긴 했지만 우체국은 내 삶의 소중한 꿈을 키워준 보금자리다. 34년 동안 우체국에서 생활했던 아련한 추억을 이제야 <아름다운 기별>에 담아 아버지께 소식을 전한다. ![](/upload/post_content_logo[300].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