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가족들의 따스한 손길이야기
합천적중우체국
강병창
시골의 조그만 우체국에 근무한지 24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모두 우체국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고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지역사회 고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가끔씩 우체국을 이용하는 외국인 주부와 손짓 몸짓으로 대화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들을 위해 한글을 가르쳐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자리에 모아 놓으니 서로 끼리끼리 고향나라 말을 하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막상 한글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전문지식이 없는 내가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할머니들은 말은 알아듣지만 공부를 한 적이 없어 ‘ㄱ’ ‘ㄴ’ 조차 알지 못했고, 외국인 주부들의 경우는 한국에 시집온 지 어느 정도 지나 한글을 아는 주부도 있고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주부도 있어 수준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인근 초등학교, 유치원을 찾아가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하고, 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그림카드, 색칠공부 등 도움이 될만한 자료도 구해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정말 소원대로 할머니들은 자기 이름 석자를 알게 되고,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가 무엇인지 몰라 이장님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정도에 이르렀다.
동네 어르신들이 뭘 물어보면 “몰라” “알아요” 밖에 말 할 줄 모르던 주부들이 낮에는 힘든 농사일, 밤에는 한글공부와 부산체신청에서 기증받은 사랑의 PC 10대로 컴퓨터 공부를 해 한글도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 고향나라 노래와 소식도 접했다.
처음에는 황당사건도 많았다. 그림카드로 단어를 익혀 나가는데 고구마 그림을 보며 외국인 주부들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자, 할머니들이 경상도 사투리로 “고매도 모르나? 고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림 밑에는 ‘고구마’라고 적혀 있어 주부들이 더 헷갈려 했다. 또 연수생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누구누구, 인마 책 한번 읽어봐”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인마가 무슨 존칭인줄 알고 “선생님 인마 몰라” 하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봉사라는 게 때로는 귀찮고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방에서 학생들을 기다린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정작 난 아직도 외국말 한마디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upload/post_content_logo[30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