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꽃처럼 세상이 활짝 피어나는 듯 계절은 어느새 오월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흡족해지지만 그러나 사람 꽃인 우리 어린이들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어린이가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즐겁고 순수해지고 맑아진다.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아볼 연중 최고의 계절이 바로 오월이라, 이 달은 어린이의 달이다. 어린이에게는 온 세상이 놀이터요, 보이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련만 그러나 어른들의 생각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요즘 세상에서 안심할 만한 놀이와 장난감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놀이의 창고 속에 보물처럼 숨겨진 동심(童心)의 놀이를 함께 찾아보자.
궁리로 만든 장난감, 온 세상이 놀이터!
유아 발달을 연구하는 학자나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완성된 장난감들의 대부분은 오히려 아이들의 창의력을 훼손한다고 한다. 골똘히 궁리해서 직접 만들어 내는 우리 전래의 놀이들이야말로 아이들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무한히 키워주는 최고의 놀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놀이를 살펴보면 대개의 놀잇감들은 별다른것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이나 사물을 그대로 쓰거나 손으로 만든것이었다. 공기, 자치기, 팽이, 연, 고누, 칠교 등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놀잇감 재료가 자연물이어서 자연과의 친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계절에 따른 재료가 있어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도 있다. 우리 어렸을 적만 해도 대여섯 살 넘은 사내아이들은 겨울이면 할아버지를 졸라서 방패연이며 팽이·썰매를 만들어 놀았고, 조금 더 자라면 아이들 스스로 놀잇감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만들어 놀았던 전통놀이는 아마도 제기차기와 딱지치기일 것이다.
요즈음도 명절이면 고궁 같은 곳에서 플라스틱 제기를 차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구멍 뚫린 엽전이나 쇠붙이를 얻어서는 어린이들이 손수 만들어 놀았다. 제기차기는 아이들의 정신집중력을 길러주며 몸 운동도 함께 된다. 한 번이라도 더 차 올려야 이기게 되므로 무슨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또한 제기차기는 약삭빠른 눈속임이나 어떤 편법이 통하지 않는 실력 위주의 놀이이기도 하다. 제기차기가 언제 어떻게 하여 비롯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고안된 축국(蹴翹) 놀이에서 연유되었다고도 하며, 그시기를 중국의 전설적인 왕 황제(BC 2700년경) 때로 보는 견해가
있다.
축국의 놀이기구인 국(翹, 鞠)은 가죽 주머니 속에 털 또는 헝겊같은 부드러운 물건을 채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옛 시절의 놀이방법은 마당 양편에 세운 몇 길 높이의 대나무 위에 그물을 얹어놓고 7∼8명씩 편을 지어 서로 공을 그물 위에 차올리는데, 많이 차 올린 편이 이겼다고 한다. 옛 시절 우리나라에서 놀아졌던 축국의 자취를 문헌의 기록을 통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당서(舊唐書)>에 고구려의 풍속을 들어‘인능축국(人能蹴鞠)’이라 하였다. 이를 미루어 당시의 고구려 사람들 사이에 축국이 성행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구려뿐만이 아니다. 신라 사람들은 축국을‘농주지희(弄珠之戱)’(공놀리기놀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또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백제조(百濟條)를 보면‘농주(弄珠)’(축국) 등의 놀이가 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이미 축국이 놀아졌음을 알 수 있다. 제기차기와 함께 아이들의 인기 있는 전통놀이로 딱지치기가 있다. 소년들은 나무껍질이나 종이로 딱지를 접어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의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뒤집기로 상대방의 딱지를 따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딱지를 어떤 재료로 어떻게 접느냐는 것인데,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딱지라서 상대가 누구이건 넘길 수 있는 무적의 딱지는 그야말로 소년들에게 보물 1호였다. 그러니 아이들은 저마다 꾀를 내어서 풀을 먹이기도 하고 안에다 두꺼운 마분지를 넣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창의력의 발현인 셈이 아닌가. 글을 깨치기도 전인 아이들도 형들과 함께 딱지의 수를 세면서 산수 공부도 되었으니 일석이조였다. 딱지치기는 지방마다 놀이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어디서건 딱지치기를 잘해서 많은 딱지를 딴 소년은 그 동네의 골목대장 격이었다. 연과 팽이·썰매·딱지치기처럼 도구를 만들어 노는 놀이들은 주로 겨울철에 성행했고, 봄이 되어서 산과 들에 놀거리가 많아지면 놀이의 종류도 달라졌다. 엿치기, 호미치기, 그네뛰기, 호드기불기, 어깨동무놀이, 죽마타기, 수건돌리기, 뱀잡기, 각시놀음, 소꿉장난, 풀이름맞추기놀이, 풀공차기도 이즈음부터는 신나는 놀이였다.
어깨동무하고 가자, 앞으로 가자!
요즘 아이들이야 바쁜 학원 일정에다 시간이 남아도 컴퓨터 앞에 앉기가 일쑤이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친구와 함께 나가서 노는게 최고였다. 봄날, 학교가 파하면 책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어깨동무 내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옆집 아이와 뒷집 아이, 앞집 아이 모두 불러서 함께 어깨동무하고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아이들을 모았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이면 또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어도 놀거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술래잡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얼음땡’,앉은뱅이, 여우놀이, 꽃찾기놀이, 오징어놀이, 고누… 어떤 동요에도 나오지 않는가?“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다.”그렇게 하루가 너무나 짧도록 느껴지게 하는 그 재미와 열정을 요즘 아이들이 몰라서 안타깝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역시 숨바꼭질, 혹은 술래잡기이다. 술래가 숨어있는 다른 아이들을 잡으러 쫓아다니는 이 놀이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숨바꼭질의 형태가 나중에는‘앉은뱅이’‘얼음땡’‘색깔찾기’같은 놀이로도 발전되었다. 숨바꼭질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래놀이에는 유난히 술래가 많이 등장한다. 원래 술래는 과거 경비를 위해 순찰을 서던‘순라(巡)’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순찰을 서던 순라와, 놀이에서 술래의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에‘술래’라는 말이 더 보편화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술래의 역할은 어느 때는 엄마처럼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같은 놀이에서는 감시자의 노릇도 한다. 술래의 역할과 책임을 잘하면 금세벗어날 수도 있고, 누구든지 술래가 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 전통놀이를 놀면서 역할을 바꾸고 세상을 배운다. 우리 전래놀이의 대부분은 눈을 맞추고, 밀고 당기고, 치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뒹굴며 온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처럼 격렬한 놀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말과 규칙을 배우고 협동심과 어울리는 방법을 체득한다는 것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독자(獨子)가 많아진데다가, 요즘 아이들은 시간이 생겨도 동무와 함께 어울려 놀 시간은 없다. 그래서 소중한 우리의 어린이들이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놀이는 최고의 배움이다
일찍이 루소나 페스탈로치 등 교육 사상가들도 교육에 있어서 어린이의 자연 발생적 흥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놀이’는 성장 발달과 학습 활동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이 곧 그 아이의 미래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봄날이면‘소꿉놀이’를 했다. 햇볕 쨍쨍한 마당 한가운데에 조개껍질로 살림 차려 놓고, 풀잎으로 김치를 담그며 꽃잎으로 반찬을 만들었다. 나는 엄마, 너는 아빠, 너는 아기! 그역할을 할 때마다 그 사람이 되는 흉내를 내었고, 그렇게 어른의
책임과 의무를 조금씩 배웠다. 이렇게 놀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최고의 배움이었다. 우리 예쁜 어린이들에게 차가운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가슴으로 배울 수 있는 전통의 놀이를 선물하고 싶다. 새들이 날고, 냇물이 달리는 푸르른 오월, 우리의 뜰에서 들려오는 소꿉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