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금란 모여라, 금란 모여라아~!”
얼핏 이런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창경원의 온갖 신기한 것들은 유혹을 계속합니다. 살아있는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대한 상어·거북이 껍질과 조류 박제에까지 정신이 팔렸지요.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말로만 듣던 콜라를 한병 사들고1인용 전기자동차를 탔는데,‘ 운전미숙’으로 된통 부딪치는 바람에 그만 콜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그 끈적하고 들척지근한 느낌이라니…. 1970년 봄 초등학교 수학여행 중 창경원에서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수십 명이 선생님을 따라 단체로 줄을 서서 관람했는데, 어느새 곁에는 아무도 없고 친구 하나만 있을뿐입니다.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둘은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쯤 가니 아이들이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금란 모여라”를 외치다가 우릴 보고“저기 온다, 찾았다!”하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났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달려오시더니 냅다 따귀를 한 대씩 올려 부치십니다. 그리고는 둘을 꼭 끌어안으십니다.
그렇게 창경원 구경은 끝이 났습니다. 지금도 몇몇 초등학교 동창들은 우리를“창경원에서 잃어버린 아이들”로 기억합니다. 창경궁으로 복원되면서 없어진‘일제 잔재’가 무에 그리도 아쉬운지“너희 두 놈 때문에 창경원 구경
도 제대로 못했다.”고 구박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얼마 전 수학여행 자체가‘일제 잔재’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결국 일제 잔재인 수학여행을 통해 일제 잔재인 창경원을 관람한 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학여행은 우물 안 개구리에게 안목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창경원, 남산, 창덕궁과 함께 광화문우체국에서의 우편물 일부인 찍는 모습과 인쇄전신기(텔레타이프)가 인상적으로 기억됩니다. 중학교 때는 부여와 속리산으로 갔는데, 김포의 낮은 구릉을‘산’으로 알고 살아온 제게 속리산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간 설악산과 동해바다, 그리고 영동고속도로도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충격이 큰 만큼 지금까지도 모두 기억에 생생합니다.
보고 들을 기회가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수학여행은 그저 영악스런 일탈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은 심정을 이해한다면 ‘일제 잔재’가 그리 대수겠습니까? 창경원 미아발생사건도 지나고 나니 이리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을요. ![](/upload/post_content_logo[76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