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산성이 많은 나라가 없다. 유난히 산이 많은 까닭도 있겠지만 외침이 잦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반도에는 3,000여 개의 산성이 남아있다고 한다. 산자락마다 가장 전망 좋은 곳에는 산성이 있다고 보면 된다. 산성이 가장 많은 곳은 중부 내륙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간의 치열한 영토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충청북도에만 수백 개가 있다. 청주 상당산성, 보은 삼년산성, 단양 온달산성, 충주 장미산성, 괴산 미륵산성, 제천 덕주산성 등은 현재 세계유산 잠재목록으로도 신청돼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한반도의 패권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단양을 차지해야했다.
하여 그 옛날 단양은 말발굽 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한다.
온달산성은 강과 마을, 산과 구름이 그림처럼 어울려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수백 년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깃든 온달산성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단양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팽팽히 맞서 세력다툼을 벌였던 곳이었다. 소백능선을 넘어 북을 넘보던 신라, 남하정책을 펼치던 고구려, 마한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먼저 차지한 백제. 이들은 한반도의 패권을 경영하기 위해 단양을 차지하려 했다. 삼국의 말발굽 소리로 단양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온달산성은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을 탈환하기 위해 단양군 영춘면의 성산(427m)에 쌓은 길이 972m의 반월형 석성.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온달산성에 가기 위해서는 단양군이 조성한 온달관광지를 지나야 한다. 단양시내에서 온달관광지로 가는 버스가 많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드라마 세트장인 궁궐을 지나야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산성까지는 약 30~40분 걸린다. 계단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여름의 울창한 숲이 그나마 위안이다. 오를수록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고 가파르다. 만만치 않은 등산로라는 말은 들었지만 찌는 듯한 날씨 탓에 심신은 더욱 고통스럽다. 묵묵히 땅만 쳐다보면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커다랗고 넓적한 돌을 포개 쌓은 성벽이 위용을 드러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탓인지 유난히 장대하게 느껴진다. 한강수를 발아래 두고 산 정상에 우뚝 선 산성은 스스로 천혜의 요새임을 당당히 드러낸다.온달산성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로 잘 알려진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따르면 평원왕의 사위였던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남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590년(영양왕 1년) ‘계립령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아단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목숨을 잃는다. 성은 납작하고 반듯한 돌을 수직으로 쌓아올렸다. 나무계단을 거쳐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 안은 텅 비어 있다. 아무 건물도 없다. 오직 풀과 꽃들만 가득하다. 그 옛날 전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성벽을 타고 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강과 마을, 산과 구름이 그림처럼 어울려 있다. 산성 밑으로 동강과 서강으로 나뉘었다가 단양에서 합쳐진 남한강이 꿈틀거리는 용 모양으로 굽이쳐 흐른다. 첩첩이 이어진 소백산맥 능선이 물결친다. 우리 산성 중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품은 곳이란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온달산성은 삼국시대의 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습은 마치 바다 위에 반쯤 몸을 드러낸 고래 같기도 하다. 지형을 따라 완만하게 휜 곡선 부분의 조형미도 뛰어나다. 온달산성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온달장군이 누이동생과 함께 하루 만에 지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축성시기도 그러하거니와 신라의 성인지, 고구려의 성인지도 불확실하다. 온달장군이 전사한 지역에 관해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비탈진 산을 오르면서 온달의 설화를 떠올리고 상상의 나래를 힘껏 펼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런 멋진 풍경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뭇 시인 묵객이 감탄한 그곳
단양팔경
단양에 가서 단양팔경 구경을 빼놓을 수 없는 일.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도담삼봉이다. 단양팔경 중 제1경으로 일컬어진다. 강 가운데 조각배처럼 떠있는 3개의 암봉 중 가운데 봉우리에 정자 하나가 걸터앉아 있다. 명산을 축소해놓은 미니어처(miniature)① 같기도 하고, 산이 물에 잠겨 봉우리만 남은 듯도 하다. 장군봉을 중심으로 처봉과 첩봉이 나란히 서 있다. 첩과 놀아나는 남편을 시샘하는 처봉이 멀찍이 떨어져 반대편으로 돌아앉아 있고, 첩봉은 아양을 떨며 주인에게 찰싹 붙어있다. 인근 식당에 걸려 있는 50년대의 도담삼봉 사진을 보면 강 건너 도담리 마을 앞 강섶이 모두 눈부신 모래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양과 도담삼봉을 유난히 좋아했던 이는 퇴계 이황이다. 퇴계는 1548년 단양군수로 부임한다. 이때 퇴계의 나이 48세. 권세 싸움에서 벗어나 한직에 내려와 있던 그는 단양의 매력에 빠져 시흥을 즐겼다. ‘산은 단풍으로 물들고 강은 모래벌로 빛나는데 / 삼봉은 석양을 이끌며 저녁노을을 드리우네 / 신선은 배를 대고 길게 뻗은 푸른 절벽에 올라 / 별빛 달빛으로 너울대는 금빛 물결 보러 기다리네’ 퇴계가 도담삼봉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싯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양팔경을 지정한 사람도 퇴계다. 단양군수로 발령받은 퇴계는 소백산맥과 남한강의 지류가 얽혀 기막히게 아름다운 절경을 연출한 단양에 푹 빠졌다. 비록 9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렀지만, 퇴계는 직접 단양의 여러 절경들을 둘러보며 8경을 하나씩 정했다.
도담삼봉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과 인연이 깊다. 외가가 단양이었던 정도전은 젊은 시절 도담삼봉을 자주 찾아 머리를 식혔다. 그의 호 ‘삼봉’도 도담삼봉에서 따 온 것이다. 정도전과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전한다. 강원도 정선 땅에 삼봉산이라고 있는데 큰 물난리로 세 봉우리가 떠내려와 도담삼봉이 됐다. 단양에서는 도담삼봉을 소유한 대가로 정선에 세금을 냈다. 어린 정도전은 어느 날 세금을 받으러 온 정선 관리에게 삼봉이 물길을 막아 단양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도담삼봉을 도로 가져가라 했다. 이후부터 단양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도담삼봉 관광지 왼쪽에는 팔각정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팔각정에서 등산로를 따라 200m 정도를 가면 웅장한 석문을 만날 수 있다.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산속의 육교’다. 오래전 석회 동굴 천장이 무너져 지금의 모습이 남았을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형태의 돌기둥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다. 가운데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마을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석문 역시 단양팔경의 하나다.
각주 / ① 실물과 같은 모양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모형. 순화어 소품
단양팔경의 제1경인 도담삼봉.
조각배처럼 떠 있는 3개의
암봉이 멀리서 보면 명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단양의 계곡은 물이 맑고
깊어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몰린다. 곳곳에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계곡이 많다.
옥순봉도 빼놓지말고 봐야할
단양팔경 중 하나다.
단양팔경 제5경인 사인암도 접근하기가 쉽다. 명경지수 위로 솟아오른 7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는 200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 위엄 그대로다.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불리는 단원 김홍도도 사인암을 화폭에 담으려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다고 한다. 사인암 앞 계곡은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즐기러 온 피서객들로 붐빈다. 옛사람들은 이 계곡을 일러 운선구곡 혹은 운암구곡이라고 했는데 깎아지른 듯한 바위 아래에서 즐기는 물놀이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충주호 유람선을 타면 단양팔경 중 구담봉과 옥순봉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유람선 탑승 시간은 왕복 약 1시간 30분 정도다. 퇴계는 구담봉을 두고 ‘구담을 지나는 새벽 달은 산에 걸려있어 / 그곳을 상상하니 뵐동말동 아득하이 / 주인은 이제 와서 다른 곳에 숨었으니 / 학과 잔나비 울고 구름만 한가하네’라고 읊었다. 제4경인 옥순봉은 희고 푸른빛을 띤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두향은 퇴계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는 청을 넣었다. 하지만 청풍부사가 거절하자 퇴계는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단양 구인사는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전국 140개의
절을 관장하고 있다.
산속의 육교,
단양 석문.
오래 전 석회동굴
천장이 무너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단양에서 즐기는 실속 여행
구인사는 천태종의 총본산.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는 대찰이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에 이곳에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지은 것이 시작이다. 구인사에 처음 들어선 여행객은 가람의 웅대함에 놀란다. 3~5층의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이 길 양편으로 늘어서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5층 대법당을 비롯해 설선당,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다. 1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규모다.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대명리조트의 대형 물놀이장이 최고다. 채광이 잘 되는 유리천장 아래 풀장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와 야자나무 장식들이 이국적이다. 실내 풀장에는 안전요원이 상주하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노천탕에 나가 있더라도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지하 750m 암반에서 끌어올리는 천연탄산수를 사용한다. 한 번 들어간 아이들은 물놀이하는 재미에 좀처럼 나올 줄 모른다. 시간이 난다면 동굴에도 가보자. 단양에는 온달, 노동, 천동, 고수 등 동굴이 많다. 천동동굴의 총 관람 소요시간은 20여 분. 길이 비좁고 때로는 오리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어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행정보
★ 교통편 동서울터미널에서 단양 가는 버스가 한 시간마다 출발한다.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가기 때문에 2시간 반이면 닿는다. 구인사까지도 직행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단양 시내에서 단성 방면 버스를 타면 사인암에 갈 수 있다.
★ 묵을 곳 단양읍내에 대명리조트(043-420-8311)와 청풍호 주변에 청풍리조트(043-640-7000) 등 특급호텔이 있다. 여관과 모텔도 많다.
★ 먹거리 장다리 식당(043-423-6660)은 단양의 특산물인 육쪽마을을 재료로 한 음식을 낸다. 흑미, 찹쌀, 마늘, 밤, 대추, 은행, 콩, 팥 고구마 등을 넣고 가마솥밥을 지어낸다.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난다. 솥밥 외에도 마늘튀김 등 마늘을 재료로 한 반찬 20가지가 오른다. 경주식당(043-423-0504)의 올갱이국도 맛있다. 올갱이를 삶아낸 푸르스름한 국물에 집에서 담근 된장을 풀고, 올갱이 속살과 함께 근대, 아욱, 배추 등을 넣고 푹 끓여낸다. 제천 묵마을(042-647-5090)의 묵도 유명하다. 박달재에서 자생하는 도토리로 만든다. 인기 메뉴는 채묵밥. 가늘게 채 썬 묵에 양념한 육수를 붓고 따끈한 밥을 말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