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이름 자체가 ‘바로 그곳’이다. 아직도 가보고 싶고 가서 살고 싶어지고 사랑해 마지않을 꿈속의 여인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 고향 같으면서도 고향 이상의 상상 속의 어여쁜 도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란 시를 쓴 유안진 시인은 춘천이라는 도시를 두고 ‘사랑해 마지않을 꿈속의 여인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춘천은 그럴 것 같다. 춘천에 가면 몇 해 동안 내내 그리워했던 누군가를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문득 만나게 될 것만 같고, 안개 가득한 호숫가 찻집에서 그 사람과 말없이 차 한잔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켠에 켜켜이 쌓인 상처가 말끔히 치유될 것만 같다. 춘천에 가면 정말로 그럴 것 같다. 그래서, 2월 어느 날 춘천엘 갔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길을 나섰다. 자동차의 온도계는 영하 1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춘천. 그곳에 가면
몇 해 동안
내내 그리워했던
누군가를 춘천
어디쯤에서 만나게
될 것만 같다.
안갯속 자리한 몽환(夢幻)의 도시
춘천은 참 가까웠다. 한때 경춘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낭만을 상징하던 그 길을 따라 열차를 타고 가야만, 아니면 경춘가도라는 구불거리는 국도를 한참이나 따라가야만 당도할 수 있었던 도시 춘천. 언젠가 서울과 이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가 생겨났고, 정체시간을 피하면 1시간도 걸리지 않고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도시가 됐다. 그래도 춘천은 춘천이다. 물리적 거리가 줄었다고 그리움의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춘천의 좌표는 그리움과 추억,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춘천은 서울에서 100km 남짓 떨어진 도시가 아니라 5년, 10년, 혹은 20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것이다.
춘천IC에 들어서자 동이 터 왔다. 핸들을 돌려 곧장 소양호로 향했다. 날씨가 차니 해 뜰 무렵이면 호수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로 가득할 것이었다. 첫사랑처럼 아련하고, 희미한, 애틋한 물안개, 그 물안개가 보고 싶었다. 춘천은 ‘안개 도시’다. 연중 250일 이상 안개가 핀다. 새벽녘이면 소양호와 의암호, 춘천호에서 쏟아져 나온 안개가 도시로 밀려든다. 안개는 길을 지우고 사람을 지우고 키 큰 포플러나무를 지운다. 1970~80년대 청춘을 보낸 중년들이 춘천을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로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춘천의 안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춘천역에 내린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몽환 같은 안갯속으로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으리라. 지금이야 단지 물을 가두는 댐으로만 알려졌지만 한때 소양호에는 양구와 인제까지 다니던 배가 있었다. 겨울 속초나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내설악의 코앞까지 다가서곤 했다.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일들일 뿐이다. 지금 소양호를 다니는 배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고작 10분 내외의 청평사까지 가는 유람선뿐이다.
어쨌든, 소양호의 거대한 담수량이 만들어내는 겨울 안개는 두텁다. 일교차가 큰 가을 무렵이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같은 겨울철은 차가운 수면을 어지럽히는 물안개가 핀다. 분분이 피어오르는 안갯속으로 물오리가 떼를 지어 유영하고 수초는 희디흰 서리꽃을 덮어쓴다. 이런 꿈결 같은 풍경은 오직 춘천에서만 볼 수 있다. 물안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소양5교다. 전망대도 만들어져 있다.
가슴 아픈 사랑이 깃든
청평사를 향해 걷노라면 이내
마음이 절절해진다. 춘천은
어디를 가도 사랑의 기억이,
또는 새로운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만 같다.
지독한 사랑이야기가 남은 청평사
오전 7시. 호수 옆 비포장도로는 이미 사진작가들의 차들이 늘어서 있다. 2월 무렵이면 상고대를 찍으려는 작가들로 소양호의 아침이 분주하다. 숨을 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아침 햇살이 수면 위로 사금파리처럼 뿌려지고 우윳빛 안개가 피어오른다. 햇살과 안개가 뒤섞여 호수는 어지럽고 어렴풋하다. 어쩌면 우리 기억 속의 첫사랑이 이런 모습일지도. 오직 잔상으로만 남아있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안개 같은 풍경.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추억 때문인지 잠시 콧등이 시큰하다. 운치 가득한 소양호 뱃길은 사라져 버렸지만, 소양호의 물줄기를 따라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남아있다. 오봉산 자락의 배후령을 타고 넘어가는 호안도로가 바로 그 길이다. 이 길을 구불거리며 따라가면 청평사에 닿는다.
고려 때인 973년에 세워진 이 천년고찰은 젊은 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사로 유명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절까지 약 2km.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절도 절이지만 절까지 이르는 이 숲길이 여간 운치 있고 좋은 것이 아니다. 청평사를 찾는 연인들은 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제법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셈이겠다. 게다가 이 절에는 당나라 태종의 어여쁜 공주와 가난한 평민이었던 어느 한 청년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마저 깃들어 있으니, 연애의 감정을 북돋우는데도 더없이 좋겠다.
가난했던 그 시절 그 골목
춘천에 망대골목이라는 곳이 있다. 약사리 고개 즈음에 자리 잡고 있다. 망대골목은 일제강점기 시절, 야산 위에 세운 망대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요즘도 망대에선 민방위 사이렌이 울린다. 화가 박수근(1914~1965)도 망대골목 주위에서 막노동을 하며 첫 개인전을 열고,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역시 춘천고보 시절 5년간을 망대골목 주변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골목에 한걸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풍경은 순식간에 바뀐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훌쩍 돌아간 것만 같다. 70년대의 장면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길 양편으로 시멘트 담장이 높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는 녹슨 철조망이 걸려 있다. 담 안에는 낡은 기와를 얹은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붙어 있다.
골목을 걷다 요즘 보기 드문 문고리를 만났다. 사자머리 문고리. 학창시절 첫사랑도 이런 대문을 가진 근사한 집에서 살았다. 골목을 서성이다 애꿎은 문고리를 두어 번 울리고 냅다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혹시나 그녀(혹은 그)가 창문으로 얼굴이라도 내밀까 싶어 모퉁이에서 숨죽여 훔쳐봤던 것도 같다. 문고리를 잡고 서 있어 본다. 이 대문이 세워진 지도 어느덧 내 나이만큼이나 된 것 같다. 초록색 칠은 벗겨지고 붉은 녹이 가득 슬었다. 세월은 참 많이도 흘렀다. 문고리가 따뜻해질 때까지 꼭 쥐고 서 있는다. 이러다 보면, 어쩌면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을런지.
낭만과 사랑을 이야기하던 곳, 명동
망대골목을 내려오면 명동이다. 한때는 가난한 대학생 연인들이 닭갈비를 먹으며 낭만과 사랑을 이야기하던 곳. 이제는 춘천 제일의 번화가로 변한데다 번듯한 닭갈비 골목도 만들어져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그 옆은 중앙시장이다. 소머리국밥이나 강원도식 메밀전병을 부쳐내는 집이 있고, 닭전이며 순대집들도 있다. 춘천에서 가장 큰 시장이지만 구색이 조촐하다. 중앙시장을 찾는 여행자들 대부분은 ‘명동 명물 떡볶이집’으로 간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배용준이 라면을 먹었던 분식집이다. 일본인, 중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모듬접시를 시키면 떡볶이, 순대, 만두, 튀김, 도너츠, 김밥, 어묵 등을 한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준다. 분식집의 옛날식 꽈배기와 설탕 뿌린 도넛도 맛있다.
춘천의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들은 공지천의 에티오피아 참전비 옆에 들어선 ‘이디오피아의 집’을 기억하리라.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 옆에 들어선 이 카페에서는 당시만 해도 흔히 맛볼 수 없는 원두커피를 냈다. 1968년 개업이래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 풍경이 영 을씨년스럽다. 찾는 이 별로 없는 카페 안은 한산하기만 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공지천으로 간다. 의암호는 두텁게 얼었다. 오리배는 오도가도 못한 채 호숫가에 정박해 있다. 시간도 얼어붙어 호수 속에 박제된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춘천의 이름은 봄내다. 봄 춘(春), 내 천(川). ‘봄이 오는 시내’란 예쁜 이름이다. 머지않아 봄이 당도하겠지. 물안개 말고 봄 아지랑이가 이 도시 곳곳에서 어지럽게 피어오르겠지. 그때쯤 다시 와야겠다. 소양호나 망대골목 어디쯤에서 혹은 명동 어디쯤에서 우연인 듯 첫사랑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최갑수 / 여행하기 좋아하고 여행에서 사진 찍기를 더 좋아하는 풍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남자다.
춘천댐에서 의암댐까지
호반도로를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새로이
시작하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안성맞춤.
드라이브 끝길에서
연인과 마시는 커피는
더없이 향기롭다.
춘천 여행 백미, 호반드라이브
춘천은 언제나 활기차고 춘천은 언제나 젊다. 사랑의 기억이 남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설렘이 있는 곳, 춘천. 서울 춘천 간 고속도로가 새로이 놓이면서 가는 길이 더 쉬워졌다. 당일치기 여행도 충분하다. 호반드라이브 여행을 권해본다.
춘천댐에서 의암댐까지의 호반드라이브코스
의암호 호반길은 춘천 의암댐에서 춘천댐에 이르는 의암호의 서쪽길 18.9km 구간을 말한다. 초입인 삼악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는 길은 깎아지른 벼랑이 병풍처럼 이어지는데 긴장감이 괜찮다. 벼랑길을 벗어나는 길에는 횟집들이 들어서 쉬어가기를 권한다. 호수 건너편 중도와 춘천시가를 바라보며 7.2km를 이어 오르면 벼랑길이 완전히 열리며 작은 하천을 가로지른 현암교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접어 2.8km 정도 들어가면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묘역에 이른다. 아름드리 노송이 군락을 이룬 묘역과 황금잔디가 절경을 이뤄낸다. 묘역을 나와 다시 이어 오르는 강변길은 군데군데 쉴만한 카페들이 들어서 경관을 장식하고 있다. 길의 끝자락인 춘천댐 바로 아랫마을은 춘천에서 내력이 가장 오래고 규모가 큰 오월리 횟집촌이다. 수 십 곳의 내력 있는 횟집들이 회와 매운탕맛을 자랑한다. 댐을 건너 강 건너편길을 타면 소양교를 건너 공지천과 중도유원지 앞을 거쳐 다시 의암댐에 도달하는 멋진 일주도로가 엮어진다.
그 외 가볼만한 곳
김유정문학촌 / 한국 단편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인 실레마을에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건립, 마을 전체를 ‘김유정문학촌’이라는 문학공간으로 탄생시켰다. 춘천시 신동면 실레길 25. 033-261-4650
남이섬 / 연인들은 사랑의 추억을, 가족과 직장인들은 따사로운 정을 듬뿍 담아가는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춘천시 남이섬길1. 031-580-8114
막국수체험박물관 / 춘천막국수 박물관은 메밀전시관과 막국수관이 있다. 메밀전시관에는 메밀의 유래와 분포와 메밀의 효과 메밀의 역사 그리고 메밀과 관련된 전문자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춘천시 신북읍 산천리 347-1. 033-244-7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