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함께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도 거닐고 등대에서 사진도 찍고 섬 일주도로를 따라 자전거도 탄다. 육지가 아닌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어떤 낭만스러움과 특별함이 느껴진다. 오래도록 함께 머물고 싶은 붉은 달이 걸린 섬, 자월도.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을 가면 닿는다.
그리움이란 이름의 섬
배는 인천대교 아래를 지나 먼바다를 향해 가고 있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가 뱃전에 후드득 떨어진다. 여객선터미널에서 가져온 지도를 펼쳐본다. 자월도는 옹진군에 있는 섬이다.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35km, 영흥도에서 서쪽 7km 정도 떨어져 있다. 지도를 보면 대부도, 선재도, 특도, 영흥도를 차례로 지나야 닿는다. 선미도와 덕적도, 소야도, 소이작도, 대이작도, 승봉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바다, 그러니까 서해중부 해상 부근에 가로로 길게 펼쳐진 모습으로 떠 있다. 섬이 생긴 모양은 누운 눈썹달 같기도 하고, 빙긋이 웃는 입술 모양 같기도 하다.
자월도라… 참 예쁜 이름이다. 紫, 月, 島. 한자를 풀어보니 붉은 달이 걸린 섬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예쁜 이름이 붙은 사정은 오히려 애달프다. 자월도는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배에 실어 서해를 따라 올라오다 잠시 쉬어갔던 섬이었다고 한다. 곡식 운반을 맡은 아전들이 폭풍우 때문에 이 섬에서 자주 발이 묶이곤 했는데,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초조한 마음에 밤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검붉은 달만 무심히 빛나고 있었으니, 그래서 붙은 이름이 자월도라고 한다. 자월도라는 이름에는 애당초 그리움이 내장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월도 여행의 들머리는 달바위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자월도를 오가는 모든 배가 들고 난다. 배가 닿는 시간 선착장은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트럭이며 승용차, 보따리를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며 낚시가방을 들쳐 맨 낚시꾼들이 뒤섞여 어수선하다. 그리고 그들을 내려놓고 배가 떠나고 모두들 제 갈 길을 가고 나면 선착장은 다시 고요에 젖어든다. 수평선 너머에서 밀려드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이다. 자월도는 작은 섬이다. 300여 가구가 살아간다. 마을은 1리와 2리, 3리 세곳으로 모두 바람이 덜한 자월도 남쪽 해변에 들어서 있다. 북쪽은 갯바위가 많아 낚시꾼들이 주로 찾는다. 그래도 학교와 면사무소, 소방서, 농협, 민박집이며 펜션, 식당, 중국집 등 있을 만한 건 다 들어서 있다.
붉은 달이 걸린
섬, 자월도. 섬이
생긴 모양은 누운
눈썹달 같기도
하고 빙긋이 웃는
입술 모양 같기도
하다. 겨우내
조용한 자월도에
봄이 닿으면 이내
섬은 낚시꾼들로
가득해지고,
자월도 주민들도
다시금 바다에
나가 새로운
새계절의 삶을
일군다.
자월도는 작정하고 돌아보자면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해변 3곳과 섬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인 국사봉이 전부인데,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장골해수욕장이다. 달바위 선착장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큰말로 가는 길목에 있다. 길이가 약 1km, 폭 40m에 달한다.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은 반달처럼 휘어져 있고 해변 뒤편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 여름이면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다. 장골은 조곡을 실은 배가 자월도에 잠시 기착했을 때 반짝 장이 서던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변에 서면 덕적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등이 선명하게 보인다.
4월의 철 이른
해변은 바닷물은
멀리까지 나가 있고
그저 썰렁하고
스산하다. 그래도
곧 봄이 깊게 들면
사람들도 물고기들도
이 섬을 찾아
들것이다.
국사봉에서 내려다보는 섬
장골해수욕장을 찾은 때는 때마침 썰물이었다. 4월의 철 이른 해변은 썰렁하다. 바닷물은 한참 멀리까지 밀려 나가 있다. 검은 갯벌을 드러낸 해변은 스산하기까지 하다. 드넓은 개펄에는 개불을 캐는 어부와 그를 따라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전부다.
“아직 좀 이르죠. 4월 중순이나 되어야 사람들이 찾아와요. 그때면 바지락도 많이 나요. 칠게며 달랑게도 잡을 수 있죠. 주말이면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해요. 지금이야 뭐, 개불이나 조금 잡을까.”
마을에 스무 척 남짓 있는 고기잡이배들도 거의 바다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4월 중순이 지나야 슬슬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한다. 자월도 주변에서 많이 잡히는 봄 생선은 광어, 우럭, 놀래미, 간자미 등이다.
“아이고, 봄 되면 물 반 고기 반이죠. 낚시꾼들과 관광객들로 섬이 시끌벅적해요.”
장골해수욕장에서 나와 국사봉(166m)으로 향한다. 자월도 한가운데 솟아있는 봉우리다. 선착장 삼거리에서 왼쪽의 비탈길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면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길은 부드럽다. 야트막한 야산이라고 생각했지만 등산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제법 무성하다. 길을 30분쯤 가면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국사봉을 7부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든 순환 임도다. 이 길을 가로지르면 국사봉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약 10분 정도 걸리는데 길은 산책로처럼 잘 갖춰져 있다.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본 조망이 무척이나 시원스럽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자월도 해변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승봉도와 대이작도, 소이작도, 덕적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봄 햇빛 내려앉는 다정한 해변
국사봉에서 내려와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장골해수욕장 말고도 자월도에는 해수욕장이 더 있다. 면사무소 앞의 큰말해수욕장은 장골해수욕장에 비해 아담하다. 이곳 역시 갯벌체험과 해수욕을 즐기기 좋다. 모래사장도 곱고 깨끗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이곳에서도 썰물 때면 소라, 고동, 참게 등을 주울 수 있다. 큰말에서 언덕을 넘으면 자월3리다. 이곳에는 별난금해변이 있다. 모래해변이 아닌 둥근 돌이 깔린 몽돌해변이다. 마을사람들이 굴 양식을 주로 하는데, 이곳에서 해안을 따라 바위 모퉁이를 돌면 진모래해변이 나온다. 갯바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큰말해변 반대편으로 가면 분무골, 어릿골과 자월 2리가 나온다.
다시 장골해수욕장으로 돌아와 해변으로 내려선다. 머지않아 5월이면 바닷가 모래밭에는 해당화가 가득 필 것이다. 해당화가 지면 곧 여름이 찾아올 것이고 이 한적한 해변에도 알록달록한 천막이며 파라솔로 어지러울 것이다. 그 빛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섬마을 사람들은 괜히 마음이 설레곤 할 것이다.
바닷물이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한다. 귓전에
물결 소리가
찰랑거린다.
파도의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바닷가에 둥지
트는 새까만
바닷새의 처량한
울음소리들.
바닷가 산책은
이런 소리들
때문에 아무런
동행 없이 혼자
유유히 걸음을
옮겨 다녀도
심심하지 않다.
어느덧 밀물이다. 바닷물이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한다. 귓전에 물결 소리가 찰랑거린다. 파도의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바닷가에 둥지를 트는 새까만 바닷새의 처량한 울음소리들. 바닷가 산책은 이런 소리들 때문에 아무런 동행 없이 혼자 유유히 걸음을 옮겨 다녀도 심심하지 않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서쪽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간다. 장골해수욕장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오른편에 독바위라는 작은 바위섬이 있는데 4월이면 무성한 숲을 이고 있는 이 섬 뒤편으로 해가 넘어가는 풍경이 볼만하다. 수평선 너머에서 번지기 시작한 노을은 삽시간에 섬을 덮친다. 섬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맹렬한 기세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황홀한 일몰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햇빛으로 넘쳐나는 다정한 섬, 자월도. 지금은 혼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꼭 데려오고 싶다. 붉은 달이 걸린 이 섬에.
자월도 여행 팁
★ 자월도 가는 배는 인천항 여객선터미널과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우리고속훼리(www.urief.co.kr, ☏ 032-887-2891)와 대부해운(www.daebuhw.com, ☏ 032-886-7813)이 운항한다. 인천에서는 쾌속선과 카페리호가, 방아머리에서는 카페리호가 다닌다. 차를 가지고 가려면 인천에서 오전 8:00 출발하는 ‘대부고속훼리5호’를 타야 한다. 대인 편도 11,000원, 차도선 편도 38,000원. 인천항에서 차를 배에 실을 때는 항만노조비 9,000원을 따로 현금으로 내야 한다. 자월도에서 인천항으로 나오는 배는 오후 3시 20분에 있다. 주말이면 차를 못 실을 수도 있으니 미리 선착장에 가야 한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할 것. 자월매표소(☏ 032-832-9002)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 장골해변과 큰말해변 주위에 장골회집(☏ 031-831-3785), 달바위식당(☏ 031-831-6151), 자월반점(☏ 031-832-0333) 등 식당이 몇 곳 있다. 생선회와 매운탕 등을 먹을 수 있다.
★ 펜션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숙소에서 낚시 정보와 관광지 정보 등을 구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옹진군 문화관광홈페이지(www.ongjin.go.kr/tou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