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눈물이 흐르듯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백마강
가볍게 걷기 좋은 부소산성길
백제는 위례성을 첫 도읍지로 정한 뒤 웅진성을 거쳐 사비성을 세 번째 도읍지로 건설했다. 사비성이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가 될 거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게다. 부여의 중심에 자리한 부소산은 106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산성이 축조될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백제 성왕이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면서 쌓은 토성과 통일신라 때 성을 에워싸고 연결해 다시 쌓은 토성이 남아 있다. 산 정상부에 오르면 백마강이 한눈에 펼쳐지고 부여 읍내를 발아래 둘만큼 조망이 좋다. 부소산 산책은 부소산문에서 출발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부소산은 맑은 공기와 시원한 풍경이 자랑인 곳으로, 인심 넉넉한 부여 사람의 모습을 빼닮은 듯 하다. 산책로를 따라 왼편으로 향하면 부여동헌과 부여객사가 있다. 과거 백제 땅에 조선인이 터를 잡았는데 5칸짜리 동헌이 큰형님 집에 더부살이하듯 조심스럽게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산성이라고 해서 산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유모차를 밀고 온 사람도 보이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도 있다. 그만큼 길이 수월하고 걷기 좋다. 영일루 터에는 원래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영일대가 있었다. 지금 것은 조선 고종 때 세운 관아문 ‘집홍정’으로 1964년에 이곳으로 옮긴 뒤 영일루라 부른다. 누각 안쪽에 걸린 ‘인빈출일(寅賓出日)’ 현판은 ‘삼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해를 맞는다’는 뜻이나 아쉽게도 주변에 잡목이 많아서 일출은 볼 수 없다. 영일루에서 몇 걸음 안 가 군창지가 보인다. 군대에서 쓸 식량을 비축해두었던 창고 터로 부소산성의 중심부에 해당하지만 소나무가 우거져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부소산은 백제 때 ‘솔뫼’라고 부를 정도로 소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오래된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지만 백제 시대의 나무는 아니다. 백제가 멸망할 때 부여는 칠일 동안 화염에 휩싸였다고 한다. 부소산의 소나무도 그때 모두 타버렸다가 이후 리기다소나무와 한국산 소나무를 심어 지금처럼 다시 울창해졌다.
부소산성
멸망한 왕국의 설움이 서려 있는 부소산성
부소산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흙더미가 길게 이어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토성의 흔적이다. 눈 덮인 구릉을 따라 수혈병영지와 반월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월루는 일출을 보던 영일루와 정반대 방향에 있다. 누각에 서면 부여읍내와 구들래 들판, 백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잡목에 가린 영일루의 풍경과 비교된다. 멸망한 왕국의 안타까움 때문일까. 빛과 생명의 상징인 일출보다 어둠의 이미지가 강한 달을 더 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낙화암 앞에 서면 누구나 의자왕과 삼천궁녀를 떠올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왕은 삼천궁녀와 놀아난 방탕한 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입장에서 정치적 논리에 의해 기술한 역사로 의자왕을 폄하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삼국사기」는 의자왕에 대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어 사람들이 해동의 증자라 일컬었다’고 기록되었다. 또 집권 초기 외교와 군사력을 안정시키고 권력 기반을 다져 민심을 얻었다고 한다.
삼천궁녀 역시 근거 없이 조작된 것이란 주장이 지배적이다. 나당연합군에게 패해 수도가 함락되자 적군에게 쫓긴 부여의 수많은 여인이 부소산 정상으로 도망쳐 지금의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낙화암을 찾는 중년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하고 노래 ‘백마강’을 흥얼거린다. 낙화암에는 1929년에 세운 백화정이 있다. 강물 소리를 따라 더 내려가면 고란사와 백제 임금이 고란초를 띄워 마셨다는 고란약수가 있다. 약수를 마시면 3년 젊어진다고 해서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두세 번은 족히 마신다. 발길을 돌려 부소산 서문으로 내려와 구드레나루터까지 다녀오면 부소산 산책이 마무리된다.
반월루
고즈넉한 겨울 궁남지
부여 궁궐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궁남지라고 부르는 이곳은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연못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고 포룡정을 세워놓아 운치를 더했다. 연못 주변에는 잎이 모두 떨어진 헐벗은 버드나무가 수변을 따라 심겨 스산한 겨울바람에 춤을 춘다. 연못 주변에 있는 크고 작은 늪지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연대가 패망한 백제의 모습을 닮은 듯하다. 궁남지 주변에 원래부터 연꽃이 있었던 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 심기 시작했다. 선화공주의 ‘선화’가 연꽃의 의미를 담고 있어 연꽃을 대단위로 심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궁남지가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 규모야 어찌되었든 인공 연못을 만들고 정원을 가꿀 수 있었던 백제의 문화가 대단하지 않은가. 부여시대의 백제문화는 가장 융성해서 일본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정원을 가꾸는 방법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본식 정원의 근간을 이뤘다고 한다. 궁남지는 한 바퀴 돌아보는데 약 30~40분이면 충분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생각하며 걸으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부활한 백제를 만나다
백제문화단지는 1,400여 년 전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복합문화단지다. 조성 기간만 17년이 걸렸으니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무궁무진한 것은 당연할 터. 매표소를 지나면 백제 사비궁의 정전인 천정전과 서궁, 동궁이 펼쳐진다. 천정전은 왕의 즉위의례, 신년 행사 등 굵직굵직한 국가의식을 거행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위엄이 넘친다. 지금껏 봐왔던 조선의 궁궐과 다르게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서궁의 무덕전에서는 백제 시대 복식을 체험해볼 수 있다. 왕이 입던 용포와 장군의 갑옷, 문관이 입던 옷 등 다양한 복식이 준비되어 있다. 사비궁 오른쪽에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백제 위덕왕 14년에 창건한 절이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오층목탑 등이 복원되어 있는데 목탑의 높이는 38m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백제인들의 실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사비궁을 지나 언덕 아래에 조성된 생활문화마을과 위례성마을이 대표적이다. 귀족 가옥은 황산별 전투로 잘 알려진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해 놓았다. 서민들 가옥에서는 염색, 목공, 압화 등 체험거리가 다양하다.
Information
● 대중교통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소산성까지 걸어서
10분 남짓 걸린다.
택시는 기본요금
● 자가용
내비게이션 검색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성
● 문의
부여군청 문화관광과(041-830-2010), 부소산성(041-830-2527)
● 맛집
연잎으로 유명한 부여에는 연잎밥을 전문으로 하는식당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인동초식당(041-836-0097)은 규모가 크고 궁남지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돌식당(041-835-3389)은 30년 넘은 곱돌백반 전문점으로 돼지불고기를 국물이 자작하게 끓여서 내놓는다. 사또식당(041-836-6800)은 소머리고기로 푹 끓인 해장국이 별미다.
● 코스